독서..▥/회심

서론

예림의집 2018. 9. 22. 22:08

서론


오늘날 성도들에게 필요한 가장 큰 두 가지 은혜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과 회개입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로서 그들의 영적 생활을 보전해줍니다. 그중에서도 회개가 우선입니다. 우리가 가장 이대한 교부로 추앙하는 성 어거스틴은 침상에 누었을 때 시편 속의 회개의 글들을 눈물을 흘리며 읽으면서 음미하곤 했습니다. 회개는 결코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화가의 붓이나 군인의 무기처럼 무시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동안 회개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고 생각을 돌이켰습니다. 크리스토톰은 "회개는 죄를 정화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기를 두려워하거나 미루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죄에 대한 회개는 우리를 사망으로부터 건져줍니다. 그러므로 죄 속에 빠져 있던 자가 죄를 깨닫고 회개의 눈이 열린다면 그는 행복한 자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성령이 회개의 물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눈물은 죄를 말라붙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립니다. 결국 회개하는 자는 경건한 자요 하나님의 자비를 맛보는 자입니다. 처음 회심할 때 영적인 뉘우침과 괴로움을 더 많이 맛보는 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덜 뉘우치고 괴로움을 덜 느끼게 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세상일들에 대해서는 비분강개하면서도 죄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지 않습니까? 세상적인 눈물은 땅에 떨어지지만 회개의 눈물은 병에 담겨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시편 56:8). 이 거룩한 회개의 눈물을 부질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터툴리안은 자신의 삶의 목적은 회개하고 생각했습니다. 혹이라도 회개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훌륭한 일들은 다 수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금광에서 금을 캐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는 이유로 그 일을 그만 두시겠습니까? 어렵게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쉽게 지옥에 가는 것보다 더 유익하지 않습니까? 일단 지옥의 정죄를 받은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긍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뒤늦게 탄식하고 신음하며 많은 눈물로 홍수를 이룬다 해도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오늘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일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바로 회개하는 날이 되게 하십시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자신의 육욕을 희생시키면서 회개의 베옷을 입었던 옛 성도들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눈물로 세례를 받았으며, 저 경건한 파울라 부인은 극락조처럼 죄를 슬퍼하며 스스로를 겸비시켰습니다. 

우리 자신의 죄와 이 땅의 통탄스런 상태가 우리의 눈물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옛날의 명성과 명망을 많이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물론 우리에게도 열방 중에 공주로 앉아 있었고(예레미야 애가 1:1), 그리고 하나님이 다른 열국의 곡식단으로 우리 곡식단을 향해 절하게 하셨던(창세기 37:7) 때가 있었지만, 결국 우리의 영광은 새처럼 날아가 버리지 않았습니까?(호세아 9:11).

그 외에도 그 무슨 혹독한 운명이 앞으로도 우리를 덮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가득 차면 요란한 고통의 우렛소리가 뒤따를까 두려워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하고 우리 안에서 겸손의 영을 일깨우지 않겠습니까? 바람이 사방에 불어올 때 우리가 어떻게 돛대 위에서 편안히 잠잘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저술에 축복을 더하셔서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자리로 나오게 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토마스 와슨. 1668. 5. 2


-토마스 와슨의 「회심」 / 컴파스 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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