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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학교

예림의집 2018. 9. 8. 09:25

주님의 학교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모든 사람들에게 장밋빛을 선물한다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더욱이나 그리스도를 "배우리"라는 이 간단한 말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포함되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책임감 없는 자세로는 주님의 학교에 배우러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배워야 할 것이 많기도 하지만 버려야 할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품이 거의 다 망가지고 그 인격이 치명적으로 손상되기 전까지는 그 학교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 수학을 배우는 것은 여간 힘이 들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배우는 것은 더 힘듭니다. 온유해지고 낮아지는 것을 어린 시절에 배워보지 않은 사람이 어른이 되어 배우려 한다면 그때까지 그가 쌓아온 것들 중에 절반은 버려야 할지 모릅니다.

겸손을 배우기 위해서는 주님의 낮아짐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게 그것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안식이 있지만 해야 할 일 또한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우리는 종종 "고통의 은혜"라는 말을 쓰면서 고통이 유익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결과는 쓰라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재산상의 손해를 보게 되면 후회하고 한탄하고 분노하다가 그 원인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면서 종종 겸손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이 같은 겸손이 낳는 결과가 바로 안식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안식의 과정입니다.

이외에도 겸손해지고 안식을 얻는다는 방법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사회질서 안에서 겸손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일은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통해 자신을 더 낮출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유익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