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의 축첩(창28:1-22)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창세기 28:8).
에서는 이미 가나안의 후손인 헷 족속의 딸들 중 두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이 자신의 장자권을 탈취한 동생 야곱을 축복하고 떠나보내면서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는 아내를 취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자 단순한 성격의 에서는 자신이 장자권을 박탈당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원인이 가나안 족속인 두 아내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스마엘의 딸을 세 번째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 같은 에서의 경솔한 결혼 행각은 과거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아넘긴 것처럼 자신이 언약의 후계자로서는 부적격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할 뿐이었습니다. 부친이삭이 고향의 친척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야곱에게 당부한 이유는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한 에서는 부친의 환심을 사서 자기도 복을 받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이미 언약에서 제외된 이스마엘의 후손을 새로운 아내로 맞아들이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에서의 이 결혼 사건은 과거 가나안 족속의 여인을 아내로 맞은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반성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거듭되는 결혼으로 인해 하나님이 세우신 일부일처의 결혼제도(창 2:24)를 경솔히 여기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뿐입니다. 사실 에서가 새로 택한 가문도 아브라함의 후예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가문에서는 이미 제외된 자들입니다. 결국 에서는 세상의 축복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자였습니다. 외형적인 형식에만 급급했던 그는 결국 구속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여러 종교들이 단지 기독교와 유사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이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서 유기된 자는 영적으로 어두워 질수밖에 없으며 결국 그가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악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죄로 눈이 어두워진 자는 결코 진리를 발견할 수도 없고 그 진리대로 행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언약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의지하는 한 길밖에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택하신 것처럼 구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획과 뜻에 따라 구원 하실 자를 택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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