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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34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8. 18. 11:44

예림의집 134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토기장이


한덩이의 진흙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 보세요.

진흙의 모양을 바꾸고 빚을 때마다

당신을 빚으시고 

당신이 성장하고 변회되어 가는

모습을 즐기시는

토기장이인 하나님과

대화해 보세요.

하나님이 아직도 당신의

책임, 성실, 규율을 

빚고 계심을 확신하나요?

당신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스케줄 짜기?

나쁜 습관 고치기?

자명종을 15분 일찍 맞춰 놓기?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이타심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비록 자기 것이라 해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사랑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권리조차도 포기하는 보다 고귀한 행동을 하기도합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우리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더 깊이 들어갑니다. 사랑은 우리의 권리를 추구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의 계산에서 인격적인 요소를 제거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어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짜 어려운 것은 우리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예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유익을 추구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내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예레미야 45:5)고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 가운데는 위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일이란 위대한 것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어떠한 것도 고통이 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멍에는 메기 쉬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멍에"란 주님이 사신 그대로 사는 것인데 그것이 다른 어떤 길보다 더 쉬운 길이며 보다 더 행복한 길임을 나는 믿습니다.

주님의 가르침 중에 가장 두드러진 교훈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차지하는 거싱 아니라 주는 것에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소유하거나 차지하는 것보다는 주는데 더 큰 행복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길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행복이란 소유하거나 차지하거나 또는 타인의 대접을 받는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가복음 10: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욱 축복받고 행복하데 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전도자의 영적 상태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7).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는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주는 시금석과 같습니다. 첫 목회지에 부임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주일 예배 후 축호전도를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일에 대부분의 교인은 예배가 끝난 후 점심도 먹지 않고 바로 가버렸습니다. 결혼식, 친척 방문, 몸이 아프다는 등의 이유로 일찍 집으로 간 것입니다. 결국 그 주일에는 전도를 하지 못하고 다음 주일로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도 교인들의 개인적인 바쁜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축호전도에 참여한 교우들은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에는 미리 조를 짜서 모든 직분자를 의무적으로 전도를 나가게 했습니다. 그날 예배 후에 한 교우가 제 방에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누가 길거리에서 어깨띠를 하고 전도지를 나누어 주거나, 집집마다 전도하러 다니는 것을 보면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싫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그렇게 하고 나가야 한다니 저는 정말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웃지 못할 이야기이지만 이와 같은 영적인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전도를 통하여 어떤 영적 상태를 점검할 수 있을까요?


1. 나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한복음 21:15-18).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고, 사랑한다 고백했더니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잃은 양을 찾아 먹이고 돌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양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오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관심을 갖고 그 일에 헌신하는 것이 단영한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잃은 양을 찾아 먹이지도 않으면서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우리가 주님을 이용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진단해 줍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이나 축복만을 받으려는 사람은 주님을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가 결국 주님을 배신한 이유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2. 나는 영적으로 떠돌아다니지 않는가?

시냇물에 종이배를 띄우면 그 배는 물결을 따라 떠돕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신앙생활에서는 종이배처럼 목표도 없이 떠돌아다닙니다. 죄를 짓거나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정도에 만족하며 1년, 5년, 10년을 지내면 결국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인으로 평신도 신학자이며 병증가였던 C. S. 루이스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결코 벼랑이 아니다. 그 길은 밋밋한 내리막길이다. 사람들은 그 길을 기분 좋게 걸어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생활에 아무런 목표와 열정도 없이 살아가는 것은 기분 좋게 내리막길을 걷는 거소가 같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를 가지 않아도, 기도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내리막길을 걷고 잇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으로 죽어가는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 영적인 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영적으로 떠돌고 있지는 않은가를 진단해 주는 표지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고 목표 의식이 없는 사람이 전도에 열정을 쏟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전도 훈련을 받으라고 권명했더니 이렇게 말햇습니다. "세상 살기도 힘든데 교회마저 힘들게 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지금 이것도 우리오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에요.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저는 말할 수 없이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친밀함이 부족하고 전도가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전도 훈련에 참가해야 합니다. 전도가 어렵다고 주저앉아 있는 것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훈련을 받겠다는 결단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 위에 성령 충만함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어떤 목표와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3.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 역할을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통로 역할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고 이스라엘이 깨닫지 못해 실패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영적 성장의 발판이 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어 버립니다. 은혜를 받으려고만 했지 흘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간단하게나마 전하면 그 은혜는 오래 간직되고 자기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더라도 그 은혜를 나누지 않으면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진단해 볼 수있습니다.

브루스 바턴이라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사란(The Man Knows)>이라는 책에서 갈릴리 바다와 사해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팔레스타인에는 두 개의 바다가 있다, 하나는 맑은 물에서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초록색 바닷물이 방파제에 부딪히며 아름다운 물보라를 일으킨다. 나무들은 그 위에 가지를 드리우고 목마른 뿌리를 뻗어 갈증을 풀어줄 물을 빨아들인다. 산골짜기로부터 흘러내리는 요단강 물이 이 바다를 더욱 빛나게 적셔준다. 햇빛을 받은 바다가 환하게 미소 짓는다. 사람들이 그 근처에 집을 짓고 살며 새들도 둥지를 틀고 산다. 그 바다가 있기에 모든 생명체는 더없이 행복하다. 

요단강은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른 바다를 만난다. 이 바다에는 물고기가 튀어 오르지도 않고, 나뭇잎의 펄럭임도, 새들의 지저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없다. 여행객들도 아주 급한 용무가 있지 않는 한 이곳을자나가지 않는다. 물 위로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고 있으며, 사람, 짐승, 새도 그 물을 마시지 않는다.

무엇이 인접해 있는 두 바다를 그토록 다르게 만들었을까? 요단강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요단강은 두 바다에 똑같이 좋은 물을 공급한다. 바닷속 토양 때문도 아니고, 주변 지역의 토양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차이는 다른 아닌 이것이다. 갈릴리 해는 요단강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가두어 두지 않는다. 한 방울의 물을 받아들이면 한 방울의 물을 흘려 보낸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언제나 똑같아진다.

다른 바다는 얌체처럼 욕심껏 받아들이기만 한다. 그리고 조금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흘러 들어오는 족족 가져 버린다. 갈릴리 해는 내어 주고 살아 있다. 다른 바다는 아무 것도 내어 놓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바다는 '사해(死海)'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여러분의 삶은 갈릴리 바다와 사해 중 어느 바다와 같습니까?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 보세요.


"아빠, 아버지. 나의 영적 상태가 사해가 아닌 갈릴리 바다와 같은 흘려보내는 상태이기 소망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이 제일 기뻐하실 전도를 하게 하시고, 나이 영적 상태를 점검하며 내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나의 마음에 전도할 수 있는 용기를 부어 주시고, 나의 입술의 모든 말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체워지게 하셔서 영혼을 살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침 영성 훈련|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 정수환 목사

죽으려고 뛰어간다!


샬롬! 8월 세 번째 주말인 오늘 하루도 내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실력이 막상막하인 두 사람이 겨룰 때 ‘용과 호랑이가 싸운다.’는 뜻으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 합니다. 그리고 용은 동쪽, 호랑이는 서쪽을 지킨다는 ‘좌청룡 우백호’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운동회 날에 양편을 청군(靑軍)과 백군(白軍)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내가 출근하는데, 한 학생이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에게 “왜 그렇게 뛰어갑니까?” 물으니, 그 학생은 “강의 시간에 늦어서 그렇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늦으면 어떻게 됩니까?⇒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어떻게 됩니까?⇒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습니다. 취직하면 어떻게 됩니까?⇒좋은 가정을 이루어 잘 살 수 있습니다. 잘 살면 뭣합니까?⇒잘 살고 난 다음에는 죽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학생은 지금 왜 그렇게 열심히 뛰어가는 겁니까?⇒죽으려고 뛰어가는 거겠죠! 내가 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자, 학생들은 “와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웃음이 사라진 뒤에는, 모든 학생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 즉 ‘죽음의 그림자’가 스쳐갔을 겁니다. 죽음은 최후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든 학문과 예술과 사상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도, 모든 사람이 자기의 문제는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뭣 때문일까요?(출처; 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죽음(절벽)을 향하여 힘껏 달릴 자는 아무도 없겠지만, 우리는 어이없게도 세월의 바람에 떠밀려 그곳을 향하여 재빨리 가고 있습니다.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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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이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정착하시고 그 곳에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는 동시에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이 제자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하늘로 가시는 것처럼(요 14:2-3), 제자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위한 처소를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이제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얼마 후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제 마음에 그리스도를 위한 거처를 만들어 기꺼이 모셔 들이며,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 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때 청소년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요! 그것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후 새로이 시작된 그분과의 교제 가운데 주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를 받으셨고, 저를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이 후로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시면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클릭해 들어가셔서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900여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후원, 물질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58만 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 되어 현재 2만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

요즘 활발한 페이스푹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초대 해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16개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신학공부/찬양인도자학교/선교훈련/평신도성경공부/교회의교리교육/개인전도/정통과이단공부 등이 있습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예림의집 3대 사역 중 그 두 번째 사역은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입니다.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시켜주신 후원자 1300 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 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11명의 선교사님과 6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 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성교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양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마지막 예림의집선교단의 사역은 “찬양 세미나”와 “찬양 집회”사역입니다. 제가 약 25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잇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사역을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않고, 귀중한 이 책 「찬송은 믿음의 꽃」을 선물 합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서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려고 합니다. 비매품으로 무료로 드립니다. CCM에 대한 편견을 깨는 글에서부터, 찬양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등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25년간의 찬양사역의 총 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