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거듭되는 실수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창20:2)
아브라함이 75세가 되던 해에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갔을 때 바로 왕 앞에서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인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창12:19)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99세 때 그는 두 번째로 똑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즉 오랫동안 살았던 헤브론을 떠나 남방의 그랄 땅으로 이주했을 때 저지른 똑같은 실수를 통해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할 뻔했던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인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아내의 정절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아브라함의 지극히 이기적인 자아를 보게 됩니다. 더욱이나 이 사건은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은 지 24년이 지나 그의 신앙 인격이 상당이 성숙해진 후에 생겨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 줍니다.
즉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심으로 그녀를 열국의 어머니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상태에서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보낸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의 행동임은 물론 인간의 양심을 저버린 파렴치한 처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행동을 질책하시기에 앞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사라를 지켜 주십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실수를 묵인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라의 정절을 지켜주심으로 그를 통해 후손의 언약을 이루시는데 더 큰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인류의 구원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역사 속에서 그분의 구속사를 진행시키십니다.
본문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큰 교훈을 얻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위기적인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말씀에 어긋나는 인간적 처세술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더욱 하나님의 뜻을 좇아 진리대로 행할 때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교훈은 죄의 습관적인 속성에 관한 교훈입니다. 즉 한번 지은 죄는 쉽게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되는 죄를 물리치기 위해 성령님께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택한 백성의 실패와 범죄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진실이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허물 많은 아브라함이 후세에 믿음의 조상으로 불림을 받게 된 것은 그의 신앙 인격이 위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언제 어디서나 아브라함의 신앙 인격을 굳게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의 은총 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을 살아가는 허물 많은 우리에게도 꼭 같이 임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를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그 은혜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강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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