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은 없다 (시 42:1-5)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시간에 “낙심은 없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불란서의 유명한 군인이자 황제였던 나폴레옹(1769~1821)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내 사전을 아무리 뒤져 봐도 가능만 있지 불가능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계시니 나에겐 '낙심은 없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영국의 시인이요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인생의 적은 바로 걱정과 불안이다.”라고 말했고,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Alexis Carrel, 1873~1944)은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근심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심에게 당하지 말고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근심과 싸우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다윗은 왕자 압살롬의 반란으로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이런 큰 반역죄를 짓다니 얼마나 가슴 아프고 낙심될 일입니까? 부끄럽기도 할 뿐더러 아들과 맞서 싸울 수도 없습니다. 거기다 온 나라와 백성들은 대세를 따라 그를 반역하고 압살롬 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낙심할 수밖에 없는 칠흑 같이 어두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다윗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낙심을 극복하는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낙심 될 때 다윗은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1. 하나님을 갈급히 찾았습니다.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다윗이 피난길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심정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사슴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대부분 사막이고 4월부터 9월까지는 비가 오지 않는 건기인데 대부분의 사슴이 이때 새끼를 뱁니다. 더구나 사슴은 열혈동물이어서 갈증을 잘 느끼는데 얼마나 시냇물이 그립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건지리라. 욜2:15-17에도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도와 주십니다.
2. 다윗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3절에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다윗이 더 낙심하게 된 원인은 사람들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비참하게 몰락한 다윗을 보고 ‘당신 하나님 어디 있소, 하나님이 당신을 버렸소. 사울을 버린 것처럼 말이요.’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잠시 눈물이 나왔지만 물리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믿음 빼는 육신의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의 사무실 벽에는 낡은 그림 하나가 걸려있었는데 그 그림은 나룻배 하나가 썰물에 밀려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내동그라져 있는 것으로 절망스럽고 처절하게까지 보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그는 이 말을 생활신조로 삼았기 때문에 역경 가운데서도 위대한 사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농촌 진흥청의 잠사곤충부 연구관인 이완주 박사가 「음악에 의한 식물 생육 촉진 및 성분 함량의 변화」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에 의하면 새소리, 물소리, 소의 울음소리 등 자연의 전원적인 노래를 계속 들려주면 식물들이 바르게 잘 자라지만 꽹과리나 자동차 소음이나 록이나 헤비메탈 같이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면 식물들이 비틀어져 자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말만 들으시기 바랍니다.
3. 늘 말씀으로 자기를 격려하며 강해졌습니다.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1절에도 동일한 말씀이 나옵니다. 두 번이 나온 것은 강조형이요, 그만큼 반복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자기와의 대화를 잘해야 합니다. 위대한 위인들은 자기와의 대화를 잘한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거울 앞에서 자기 표정을 관리하며 자기와 대화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랑 받은 자녀야, 넌 예수 안에서 큰 복을 받았어, 넌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할 수 있어, 하나님이 도우실 거야” 이렇게 말씀에 선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 기적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묵상입니다. 묵상을 잘해야 합니다. 근심 걱정 분노 가지고 밤새 잠 못 이루며 생각하며 시험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자기를 죽이는 묵상입니다. 우리의 묵상은 문제를 붙들고 고민하는 묵상이 아니요, 이교도들처럼 자기를 비운다고 무념무상의 그런 묵상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내 생각 내려놓은 것이 자기를 비우는 것이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그 분의 말씀을 외우면서 마음의 양식 삼는 그것이 참 묵상입니다. 이방인이나 이교도적인 묵상하면 사탄이 시험합니다.
방송에 나온 어느 유명 가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붓글씨로 꼬박 1년에 걸쳐서 표구에다 성경의 잠언서를 모두 필사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다 써놓고 보니 그 글씨들이 따뜻한 열기를 발산하고 더 신기한 것은 이 잠언서 표구가 해로운 수맥을 차단하더랍니다. 다시 성가대의 합창을 녹음해서 틀어놓고 수맥현상을 실험해 보니 미신 같지만 거기서도 동일하게 수맥차단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가진 자는 어떠하겠습니까? 요10:35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여기서 신이란 그만큼 권위 있고 놀랍다는 의미입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그가 말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없었으면 모세가 애굽에 간다고 됩니까?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것 역시 말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보내사 위경에서 건지신다 했듯이 말씀에 서야 기적을 베푸십니다.
4. 어려웠을 때를 생각하며 용기백배하시기 바랍니다.
6절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그러면서 7절에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했습니다.
다윗이 젊은 시절 사울 왕에게 쫓기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10년이라는 그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 생명을 보존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파도와 물결이 엄몰할지라도 그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시4:1에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했습니다.
모세는 신7:19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어떤 산이 놓여있을지라도 지난 날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믿음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낙심이란 단순히 낙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신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얼마나 죄송스런 일입니까?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믿어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시46:1-3의 다윗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벧전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여기 권고란 돌아보시고 돌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생명 걸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도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으며 사람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듣고 묵상하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더욱 용기 백배하여 어떤 일에도 낙심하지 않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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