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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309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6. 6. 09:25

예림의집 1309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무더운 날에는


무더운 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실 때는

음료수가 목의 갈증을 풀어 주듯

성령이 당신의 영혼을 적셔 주고

있음을 잊지 마세요.

추운 날은 

따뜻한 차로 몸을 데워 보세요.

성령의 따듯함을 느껴 보세요.

당신의 모든 존재 영역에서

성령이 

어떻게 당신을 위로하고

싸매 주시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심신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께 감사드리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승리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구원자이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죽음의 순간에서 사람을 구원할지라도 나에게는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에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 그 이상이십니다. 애굽에서 양의 피가 이스라엘 자손들 집 대문에 발라졌을 때 그 피는 그들에겐 구원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로부터 구원되지 못했더라면 이집트 폭정자들의 채찍치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만 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왕의 손에서 그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나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께서 우리를 실족케 하는 죄의 노예로 그대로 살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고 생각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고 또한 우리의 악한 기질과 탐욕과 육욕으로부터 승리를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반복되는 죄의 노예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같은 죄로부터 승리하기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친밀히 알도록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구원하십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람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린도후서 1:10).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시험 피하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마 6:13).

 

최근에 들어 시험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이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물결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험에 저항하라는 주장은 완전히 이해됩니다. 또 시험에서 도망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선 상황과 타협하지 않는 것은 신앙 인격을 견고히 유지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단순한 도피가 궁극적인 해답이 되지 못합니다.

불행하게도 시험을 피하는 것은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합니다. 사탄의 계획을 피한다는 생각은 성경적인 계획을 사소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탄의로부터 피하는 것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성도는 사탄이 두렵게 해서 도망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시험을 피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신에 시험에서 구원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 악은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내 안에서 그것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이 믿음은 예수님이 이미 승리를 확보하셨다는 확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시험이 오면, 당신은 그 상황에서 피하십시오, 그러나 또 주님 안에서 견고히 서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승리하는 군대의 일원입니다.

 

"아빠 아버지, 나는 언제나 시험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그것을 마나든지, 시험을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히 서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오직 주님만의 나의 구원자이시고, 나의 산성이시고, 나의 반것이십니다. 주님은 이미 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 주님을 믿습니다. 나로 주님 안에서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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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찬송은 믿음의 꽃②


성경의 예로 누가복은 1장 5절에서 20절을 깊이 묵상해 봅시다. 보신대로 천사 가브리엘이 제사장 사가랴에게 세례요한의 출생을 예고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당시 최고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의 신앙 상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감히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었던 종교 지도자의 믿음의 허상이 낱낱이 들어납니다. 제사장 사가랴는 매우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였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부족함이 있다면 그들이 그토록 간구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더 이상 자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가랴 앞에 선 천사 가브리엘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위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눅 1:14-17)”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인가요? 스가랴의 오랜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내용입니다.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도 그의 출생을 기뻐한다 하였습니다. 나실인으로 구별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주신 것도 감사한데 그가 할 일까지 말씀해 주었습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가장 존경받던 선지자 엘리야! 아들을 낳는다는 소식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거기다 그의 존귀함이 어느 정도이며 그의 출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울러 그가 감당해야 할 거룩한 사명이 과연 어떤 것인지 까지 아주 자세히 일러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벅찬 순간인가요?

그런데 스가랴에게는 입에서 할렐루야가 나오기는커녕 가장 불신앙적인 투정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 말이 제사장에게서 나올 말입니까?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반응입니다. 

제사장인 그가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의 내용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가랴의 이런 불 신앙적 반응은 감히 상상도 못할 놀랍습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망신스럽습니다. 그 결과를 보십시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사랑의 하나님은 너무나 관대하십니다. 저 같으면, 당장 엄벌에 처하고 말 것입니다.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사장의 입에서 나온 가장 불신앙적인 반응의 말입니다. 잘 보십시오. 찬송해야 할 때 찬송하지 않으면 이처럼 영적 벙어리가 됩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아무리 말을 잘 한다 해도 감사하지 못하고 찬송하지 못하는 성도의 입은 결국 벙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벙어리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마치 영광의 면류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자랑하기에만 급급할 뿐 정작 그 심령은 불신앙으로 가득 차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주님이 교회를 이끌려고 하면 냉소를 보내고 세속적인 명분을 내세워 거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입니다. 

찬양사역을 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고 싸우고 반대하고 핍박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이 교회 장로요, 권사요, 안수집사요, 그 교회에서 몇 십 년씩 몸담은 토박이 신자였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소위 말하는 그들이 그어 놓은 경건과 전통이라는 잣대를 이용해서 정작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단언컨대, 찬송이 없는 사람은 그 믿음도 병든 사람입니다. 사가랴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