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308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대화의 폭을 넓히세요
하나님과 대화할 꺼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쳐서 병상에 있는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에게 경보를 울리세요.
구조 헬기가 날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안에 있는 환자와 가족과
의료진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앰블런스가 급하게 지나갈 때는
마지못해 억지로
길을 비켜주는 것에 그치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대화의 폭을 조금 더 넓혀 보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구원자 예수
만약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려면 먼저 우리는 그분을 죄에서 구원하신 '구원자'로 인식해야 합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알렸을 때 그분이 자기 백성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실 분이란 뜻으로 "예수라고 불려지리라"(마태복음 1:21)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악으로부터 구원받았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 안에서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아는 방법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소문을 통해 알게 되고, 또 어떤 이들은 소개를 받아서 알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오랜 세월 함께 지내면서 매우 친밀한 관계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 교회 내에도 3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읽거나 소문을 듣고 아는 이들, 즉 역사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약간만 알고 있는 이들이 잇고, 마지막으로 목마른 이들, 즉 바우링 그랬던 것처럼 "그분을 알고 또한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더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되며 더 잘 섬기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죄를 물리칠 수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주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악을 제거할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안다면 먼저 죄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천사가 베들레헴 평야의 양치기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누가복음 2:10, 11). 또한 에수 그리스도가 나시기 700년 전인 이사야 선지자 시대로 돌아가 보면 이런 말씀을 찾을 수 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그리고 요한일서 4장 14절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라고 말해줍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 모든 이방 종교들은 사람들이 자기 행위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가르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이해 인간 세상에 내려오셔서 이들을 죄악의 구덩에서 건져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들에게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라고 말슴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출발점은 요람이 아니라 '십자가' 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게 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 가운데 걸림이 되는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하시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 구원을 얻게 해주셨스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두려워 하지 말라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주위에 있는 사람이 두려움과 걱정에 대해 말하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그들의 두려움이 당신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합니까? 또는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굳게 붙잡습니까? 주님은 당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신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믿는 것 곧 당신의 믿음은 당신의 초점이 무엇인가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기초합니다.
당신이 주권자이신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을때에, 당신은 하늘이나 땅에 있는 어떤 것도 그분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매일 관계를 맺고 있을때, 당신은 또다른 닻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닻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입니다. 그분은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55편 4~8절에서, 우리는 다윗이 자신을 짓누르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읽게 됩니다. 당신은 주변에 있는 어려움에 의해 지금 억눌려 있는 것처럼 느낄지도 모릅니다. 저항할 수 없는 감정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그분에게 말씀드린 후에 그것을 떨쳐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인생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당신은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나 걱정의 구름 아래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그의 말씀을 믿고 두려움을 떨쳐버리겠습니까? 주님께 나아와 당신의 모든 것을 쏟아 놓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품에서 안식을 얻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움성으로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빠 아버지, 나는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나는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나의 문제 대신에 오늘 당신에게 초점을 맞추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환경과 환란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주님을 향한 나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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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은 믿음의 꽃
어느 날 저의 아내가 “지난 25년의 삶, 찬양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내의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눈물을 왈칵 쏟은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나의 삶은 찬양의 열매를 먹고 지금껏 살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것은 비밀이고, 신비입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그때 아내에게 못한 답을 하려고 합니다. 믿음의 열매인 찬송에 대한 비밀을 깨달음을 주신 만큼 밝혀 봅니다.
찬송을 정의하자면, “찬송은 믿음의 꽃”입니다. 저의 방 작은 베란다에는 찬송을 닮을 꽃이 피어 있습니다. 바로 ‘사랑초’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이 사랑초를 바라보며 찬양을 생각합니다. 꽃은 꽃이되 계절을 가리지 않는 꽃.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경을 가리지 않는 꽃. 그 열매의 달콤함이 온 세상을 놀라게 하고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이르는 꽃. 십자가 위에서 가장 크고 풍성하고 완전하게 맺혀진 꽃. 고난과 역경 속에서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하여 첫 번째로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소중한 꽃. 그것은 바로 찬송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답고 탐스러운 꽃을 맺고 가꾸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라는 토양이 있어야 하고 구원의 기쁨이라는 수분과 감사라는 거름이 항상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열매의 씨앗은 결코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떠한 권세나 권력을 이용해서 빼앗을 방법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일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 속에 무엇보다 이 열매가 활짝 맺어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믿음의 척도요 영생의 푸른 신호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의 유. 무를 가리는 시비에 휩싸여 때로는 판단 자가 될 때도 있고, 그 판단의 대상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내린 판단의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요?
헌금 잘 하고 교회 봉사 잘 하면 대개는 일등 신자 칭호를 받습니다. 젊은 나이에 권사, 장로가 되면 신앙의 우등생으로 인정받습니다. 이런 근거가 모두 틀리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가 헌신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헌신의 척도를 봐서 직분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외가 있습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한번 봅시다. 사랑이나 헌신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바치고 충성합니까? 그런 그들도 그 집단에서는 물론 일등 신자 칭호를 받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내렸던 그 수많은 판단의 기준들이 너무나 인간적이요 세상적인 시각 이었다는 말입니다.
계시록 3장 1절의 "내가 네 행위를 아나니 네가 살았다고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결코 사데 교회만을 향한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는 이런 책망을 받아 마땅한 교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는 결코 어떠한 직분이나 성도라는 구별된 명칭이 믿음의 척도요, 구원의 징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적인 자로는 결코 잴 수가 없는 이 믿음의 분량은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을까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찬송"입니다. 왜냐하면 생활 속에서의 찬송이 곧 믿음의 유. 무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엉뚱한 강변이냐고 묻고 싶으십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기쁨이 없을 때, 감사가 없을 때, 믿음이 연약한 바로 그때에 여러분 입술에 과연 찬송이 있었던가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찬송은 믿음의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증상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찬송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고 타인이 지시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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