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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30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6. 2. 10:20

예림의집 130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영화 필림을 되감아 보세요


전원을 끄고 컴퓨터 모니터에 

눈을 고정시켜 보세요.

하나님이 닷인 옆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머리 속으로 과거 어느 1년의

필름을 되감아서

플레이시켜 보세요.

당신의 일생을 찍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상상하세요.

이 영화는 오로지 당신의 내면,

가슴 속 깊은 곳의 생각,

비열한 태도, 불안, 행동의

진실된 동기를 보여줍니다.

혹 함께 일하는 동료 중 누군가가

실패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나요?

혹 사랑하는 이들에게

성실하지 못했거나

속으로 미워하지는 않았나요?

영화의 각 장면마다

하나님과 대화해 보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속마음을 알고 있고,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해방 선언


아브라함 링컨이 삼백만의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역사적 선언을 한 날, 노예들을 묶고 있던 사슬이 풀어지고 그들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그 선언은 북군이 가는 곳마다 나무나 울타리에 내걸렸습니다. 상당수의 노예들이 글을 읽을 수가 없었지만, 그 글을 읽은 대부분의 살마들은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기쁨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반면에 이 기쁜 속식을 듣지 못한 노예들은 그들의 옛 주인과 함께 그대로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이 자유롭게 되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자유를 얻도록 하신 그 능력은 '밖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잇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만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뿌리이고 확신은 꽃입니다. 단언컨대 당신은 결코 뿌리 없는 꽃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꽃을 소유하지 못했을지라도 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12년간 혈루증을 않았던 불쌍한 여인이 무리 가운데서 예수님 뒤로 나와 떨면서 그분의 옷자락을 만진 것은 그녀의 믿음이었습니다(마가복음 5:27). 스데반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자들 가운데 서서 "보라, 하늘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보노라"(사도행전 7:56)라고 말한 것은 확신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역사하는 힘이 큰 기도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야고보서 5:16).


사도 야고보는 기도에에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기도를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기도에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의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1. 예수님과의 온전한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예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런데 이 약속은 놀라운 약속이면서도 위험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의 두 제자였던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했습니다. 이들이 구한 것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유대 나라의 왕이 되시면 높은 자리를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무엇을 구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탄식하셧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결국 십자가에 달리는 순교로 응답 되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한복음 14:1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에 합당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된 관계를 의미합니다. 

곧 내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바른 관계 속에 바른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가 바르게 기도하고 있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2. 믿음의 기도힙니다.

어떤 분이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새벽에 깨워 놓고 새벽기도회에 와서 간절히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회 후, 집에 가 보니 아들이 아직도 이불 속에서 자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화가 나던지 이불을 걷어치우면서 소리를 질렀스니다. "야 이놈아! 너는 어째서 그 모양이냐? 어미는 교회에 가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왔는데 정작 네가 자면 도니? 넌 안 돼, 안 돼!"

오랜 시간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는 기도가 있고, 기도 시간은 짧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만약 열심히 기도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여전히 염려한다면 그것은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염려한다는 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하는 기도가 응답될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좋은 의사를 만나면 질병에 대한 염려가 없어지듯이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기도, 그것이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주님은 반스시 가장 적당한 때에, 제일 좋은 것으로 은답해 주시리라는 믿음 말입니다.


3. 순종의 기도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한일서 3:22). 우리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 순종하는가로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지는 점검하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용서하라, 사랑하라, 하나 되라, 기뻐하라, 감사하라, 전도하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순종해야 한다는 마음조차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씀에 매번 불순종하는 자녀가 있다면 자녀가 원하는 대로 해 줄 부모가 있을가요? 그런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가십니다.


4. 의인의 기도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습니다(야고보서 15:16). 초대교회에 기도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던 것은 그들의 기도가 의인의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의인이란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지만 죄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기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엇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편 66:18)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의지하고 회개하여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인터넷에서 시편 23편 강해설교를 듣고 이런 고백을 하엿습니다. 아파트 분양 문제가 잘 안 풀리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제발 어떤 길인지 좀 알려 주세요. 제가 방향을 알 수 없어 힘이 듭니다. 저도 응답받는 삶을 살고 싶어요"라고 계속 어린아이처럼 때를 쓰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성공의 길에서 의의 길로 방향을 전환하라.'는 저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부귀영화를 위해 성공을 갈망하며 살았는데 갑자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의의 길이 아니라면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노력이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설교를 들으며 분양이 되지 않은 아파트를 잠시라도 선교사님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하고 싶다는 망므을 갖게 되었답니다.


5. 사랑의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금식하며 기도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 금식기도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이사야서 58:6-9).

가장 간절한 기도가 금식기도입니다. 금식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금식은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고 나누어 주고 베풀어 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사라으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영국의 어던 집사가 무디 목사의 집회를 앞두고 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마음을 다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그 아들은 부모의 권면을 뿌리쳤습니다. 실망한 나머지 무디 목사를 찾아와서 불평하기를 "아들을 위해서 금식까지 하고 말로 다 할 수 없이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렸는데 아직가지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을가요?"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집사님의 생 가운데 누구와 잘못된 관계를 맺은 일이 없스니까?"

그러자 갑자기 교회 안에서 불편한 관계에 잇는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 후에 기도할 때 이 집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담대한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밤 그의 아들이 성령님의 강권하심을 받아 스스로 교회에 나와서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큰 기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응답의 조건에 비추어 자세히 써보세요.


"아빠 아버지, 응답받는 역사하는 힘이 큰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맺게 하시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아옵소서. 또한 순종하는 기도, 의인의 기도, 사랑의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주님을 위한 기도, 이웃을 위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세계 열방의 구원을 위한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찬양은 


찬양은 그 자체가 예배이며, 성령 충만한 자의 행위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찬송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유익과 복을 가져다줍니다. 찬양은 입술의 열매요(히 13:15), 아름답고 마땅한 것이요(시147:1),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시29:2)입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며(시22:3),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사 42:7,21)하셨기에 찬송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게 하시고,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하사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더욱 닮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해 주기에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찬양의 유익에 대해 성경에는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찬양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에 대해 위대함과 능력을 단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찬양의 능력으로 인하여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자기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말로 너를 배불리시며(시147:12-14)”라는 말씀을 통해서도 찬양할 때에 우리를 보호해 주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영적전쟁은 전략과 전술, 칼과 창, 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영적 무기라고 했습니다. 역대하 20장에는 찬양의 능력에 대해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찬양의 삶을 영위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고 단호한 결단과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어떤 강은 바다를 향해 흐르지만 바다에 이르지는 못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물이 도중에 사막의 모래 속으로 다 스며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살다보면 사막과 같이 원치 않는 일, 힘든 일, 정말 말할 수 없는 고난들이 닥쳐올 것입니다. 

이런 일로 인해 낙망하고 지쳐서 끝없이 절망감과 패배감에 휩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성령을 의지하여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풍성한 찬양의 삶을 살아갑시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 영적전쟁에서 사단을 담대히 이길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기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찬양의 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찬양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창조적이고, 의미 있으며, 사랑이 가득한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시 108:1)”“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146:2)”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도록 합시다. 찬양은 아무리 계속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평생토록 주를 찬양합시다. 진정한 찬양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유익이 될 것입니다. 

매 주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찬양을 드리고, 찬송의 능력을 통해 온전한 찬양의 삶을 살아가며, 입술로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봅니다. 저는 그렇게 찬양을 부르는 모두가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복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찬양의 유익함에 대해 다시금 깨달으면서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찬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깨우쳐 주시고, 삶의 힘을 주시기에 항상 즐겁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찬양하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찬양이 가득한 가정, 교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며, 복을 주시고 저 높은 본향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찬송하는 자에게 주시는 찬양의 참된 유익입니다.


밴드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영성훈련을 위해 밴드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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