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처소인가(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 시간에 “누구의 처소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불과 20대 중반에 인도네시아 부흥의 일군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멜테리 목사가 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도팀이 어떤 마을에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그 마을에서 토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예수 신을 전하고 싶다면 예수가 우리 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라.” 그러자 전도팀은 제사장에게 “마을 사람들을 다 모으라. 그러면 하나님과 너희 신 중에 누가 더 센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1천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전도팀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 명령했습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해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은 떠나갈지어다!” 그 순간 토착신 제사장의 우두머리가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신의 제사장으로 늘 신들과 대화를 해왔는데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떠나라고 명령할 때 이곳에 모였던 가장 큰 귀신부터 가장 작은 귀신까지 예수가 더 이상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면서 다 달아나버렸다."고 하면서 그러면서 “선생님들, 나도 여러분의 신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 주민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대 승리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성도는 사탄이 범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귀신이 들어와 살기 좋은 집이 나옵니다. 귀신 하나만도 악한데 자기보다 악한 일곱을 데리고 와서 사니 그 사람의 형편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상태를 비추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귀신이 살기 좋은 집을 만든다면 이렇게 악하고 비참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귀신은 돌아다니다가 살기 좋은 처소를 만나면 거기에 들어와서 둥지를 틀고 떠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귀신이 거하는 거처는 어디일까요?
1. 귀신의 거처는 더러운 곳입니다.
본문에 “더러운 귀신이” 그랬습니다. 귀신은 더럽기 때문에 더러운 곳을 좋아합니다. 막 5장을 보면 군대귀신이 나가면서 예수님께 애원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무저갱에 보내지 말고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율법에 돼지는 부정의 상징으로 이처럼 추한 곳이 귀신의 처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관리 잘해야 합니다. 마음에 추한 욕심과 죄악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향내 나는 곳에 봉접이 오고 구렁냄새 나는 곳에는 쇠파리가 오듯이 마음이 더러우면 귀신의 처소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제일 먼저 성전을 청결케 하셨듯 탐욕과 불법과 죄악과 우상을 청소해 내야합니다. 병균을 죽이기 위해서는 서식처부터 없애야 하듯이 귀신을 물리치려면 귀신의 거처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일곱 귀신에 들렸던 여인 마리아도 죄 많은 여인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죄 많음과 귀신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과 저주 역시 밀접합니다. 계18:2에 세속의 바벨론도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세속의 바벨론이 우리 마음에 있다면 예수 안에서 다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2. 귀신의 거처는 물 없는 곳입니다.
다시 43절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귀신은 물 없는 곳을 좋아합니다. 물 없는 곳은 문자대로는 사막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상징입니다. 귀신이 사막에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이 없으면 얼마나 황패합니까? 이처럼 귀신은 사막과 같은 심령을 좋아합니다.
여기 물은 말씀이요 성령의 은혜로 볼 수 있는데 이처럼 마음에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귀신이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와서 삽니다. 귀신도 영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고 성령의 은혜가 역사하니 그 저항 앞에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물 없는 곳은 어디인가? 어느 심령이 은혜 떨어졌는가? 어느 심령이 말씀이 없는가? 두루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벧전5:8-9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보혈 확신 없는 마음에도 찾아갑니다. 마음에 정죄감에 가득할 때 그 마음이 사막 같이 메마르고 아픕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하나님 잘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통계학자요 목회자인 조지 바너는 많은 사람들이 벤치워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벤치만 따뜻하게 데우고 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의자만 데우고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귀신을 이기려면 벤치워머가 되지 말고 우리의 심령을 말씀과 성령으로 가득히 채워놓으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살기 좋게 수리된 빈 집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 마음의 집은 예수님이 주인 된 집이요, 말씀과 성령으로 가득한 집이요, 찬송으로 가득한 집이어야지 빈 집이 되면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와서 거하게 됩니다.
3. 귀신의 처소는 어두운 곳입니다.
유1:6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처소는 어둔 곳입니다. 성경에서 어둡다는 것은 불의 무지 절망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귀신의 처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음의 어두움을 물리치고 마음을 밝게 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소망 가운데 사시기 바랍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 가운데는 과거 어두웠던 시절이 많습니다. 실연으로 인한 상처, 사망으로 인한 사별, 각종 폭행 당함, 중대한 사고, 거듭된 시험에서 낙방, 괴롭힘 당함, 억울한 일 당함, 갑작스런 실업, 과중한 채무, 사업의 실패, 과중한 스트레스, 혹은 비교의식에서 온 강박감 등으로 어둡게 살 때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놀래거나 심적인 충격을 받을 때, 부정적인 관념을 통해서, 혈기 부릴 때,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민할 때, 자포자기할 때, 너무나 슬퍼할 때, 제사 지낼 때 등입니다. 그러므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있을 때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절재해야 합니다.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귀신은 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위로로서 해처럼 밝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 귀신의 거처는 적막한 곳입니다.
막5:3에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했다 했습니다. 귀신이 무덤에 거한다는 건 아닙니다. 무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 할수록 불편해집니다. 성경이 무덤을 말씀한 것은 그 상징하는 바 때문입니다. 무덤은 말이 없는 곳입니다. 소리가 없어요. 예배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찬송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진리를 말씀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소리도 없습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합니다.
이처럼 무덤 같은 심령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로역정을 쓴 죤 번연은 "만일 당신의 입이 벙어리일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귀머거리가 되실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입니까? 귀신은 우리의 기도소리가 속으로 기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가까이 다가옵니다. 어려울수록 소리 내어 찬송하고 소리 내어 기도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혹은 부르짖으라 했는데 부르짖음이 어찌 묵망만이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시142:1-2에서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했고, 시3:4에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했습니다. 환난을 이기는 기도는 발성의 기도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소리가 없거나 작습니다. 불교도 소리가 없거나 작습니다. 체험을 강조하는 뉴에이지도 소리가 없거나 작습니다. 귀신은 소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소리가 큽니다. 소리가 있는 교회일수록 활기가 넘칩니다. 천국도 찬양하는 소리로 가득 찬 곳입니다.
우리의 소리가 없으면 악령이 주는 온갖 잡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이 없고 순한 사람에게 귀신이 잘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수가 갑자기 적어졌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 큰 부흥이 일어나 그 뜨겁던 믿음도, 그 뜨겁던 교회도 발성을 졸업하는 순간 식기 시작합니다. 찬양 테이프라도 틀어놓고 함께 부르시기 바랍니다.
친구 하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일급 장애자로서 식물인간 상태에서 소생한 사람입니다. 거동장애는 물론 언어장애까지 있어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 불편한 몸을 움직이며 공부를 하고 사회활동을 하고 매일 인터넷에 글을 올리며 자기 믿음을 표현하면서 자기 믿음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의 처소입니까?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입니까? 아니면 사탄이 거하는 귀신의 처소입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귀신이 살기 좋은 집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모시는 아름다운 집이 되시기 바랍니다. 귀신은 오늘도 은혜 없는 곳, 말씀 없는 곳, 더러운 곳, 주인 없는 곳, 어두운 곳, 적막한 곳을 찾아 해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처소가 되지 말고 우리 모두 말씀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 잘 경외하는 가장 아름다운 집 거룩한 성전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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