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논리(logic)와 증거(evidence)
우리가 앞장에서 다룬 초월적 논법을 가지고 기독교 진리를 변증한다고 할 때 여러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오해는 논리와 증거를 무시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즉 초월적 논법은 논리와 증거를 배격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미 암시된 사실이지만 초월적 논법은 결코 논리나 증거를 배격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월적 논법만이 논리와 증거를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월적 논법은 귀납적 방법과 연역적 방법을 배격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틀을 제공한다. 그러면 어떤 차원에서 우리가 논리나 증거를 이해하고 또 사용해야 하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논리(logic)
논리는 결코 스스로 독립적이거나 중립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놀리는 분명한 법칙, 혹은 질서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법칙과 질서가 논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논리를 논하기 전에 논리의 법칙과 질서를 논함이 당연한 이치이다. 이것은 논리를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논리는 논리를 가능하게 하는 법칙과 질서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법칙과 질서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물어야 한다.
우리가 논리를 사용하기에 앞서 그 논리가 이미 주어진 실재와 부합된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 즉 주어진 실재의 모든 사실들의 논리에 적용될 수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논리를 적용할 대상들은 어떤 혼돈(chaos) 속에 있는 대상들이 아니라 분명한 질서(order) 속에 있는 대상들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논리는 그 대상들과 부합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논리는 그 대상들과 부합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논리는 추상적 개념들의 공식으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가진 논리를 가지고서 논리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과 그의 계시의 진위를 파악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논리가 허용된다고 해도 논리가 활용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쁨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의 차이를 논리로 풀 수 없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슬픔 가운데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변화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자녀를 잃으면 부모는 슬프다”라는 명제나 “사람들은 슬픔보다 기쁨을 좋아한다”는 명제를 언급할 수는 있고 그런 개념들을 연결할 수 있고 우리는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자녀를 잃으면 슬픈 것인지, 그 슬픔을 느끼는 마음의 상태는 어떠한 것인지, 왜 기쁨이 슬픔보다 더 좋으니 등의 사실들을 논리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들은 논리를 적용하기 전에 이미 사람들이 의존하고 있는 보편적인 합리적 구조에 속한 것들이다. 굳이 논리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논리는 이미 존재하는 합리적 구조 혹은 논리적 질서 안에서 사용되고 적용할 수 있다. 그 구조와 질서를 벗어난 사실들은 아무리 논리적인 사람이라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기 위해 인간은 논리를 사용할 수 없다. 또한 어떻게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동시에 세 분이신지는 논리로 알 수 없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리적 구조나 논리적 질서를 벗어난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을 잘 사용한다.
P1: 모든 사람은 죽는다.
P2: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C: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 삼단논법은 자명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삼단논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논리의 법칙 혹은 논리의 질서가 전제되어야 한다. 논리의 법칙(질서)이라는 것은 전제 P1과 P2에서 결론 C로 이어지는 합리적 흐름을 의미한다. 초등학생 정도만 돼도 이 합리적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적 흐름은 논리가 혹은 논리를 구성하는 단어나 문장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야만 논리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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