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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부터 오는 회복

예림의집 2018. 5. 26. 11:50

안으로부터 오는 회복


누가복음 24장은 엠마오로 길을 가던 에수님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본문 13절에는 "그날에"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언제입니까? 안식 후 첫날(누가복음 24:1) 곧 지금의 주일입니다. 본래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으므로 안식 후 첫날은 주일 혹은 일요일입니다. 여기서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안식 후 다음 날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은 유진 피터슨이 그의 저서 <부활>에서 강조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처음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고 그들에게 안식일 준수는 필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제자들 마음속에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을 지키면서 그들은 조용한 침묵 속에 예수님의 죽음 사건을 수용하며, 동시에 부활이라는 새로운 사건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계절이 바뀌어 봄이 와도 이런 변화에 대한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을까요? 저는 우리가 일에 중독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죽어라고 일하다가 죽어 버리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일중독을 심각한 병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중독은 자신이 빠져 있는 일 외의 모든 것을 상대화시켜 인생의 모든 기쁨과 의미를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만일 직장을 떠나 집에 와서도, 근무 시간이 아닌 주말에도 일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리고 일 외에는 인생에 아무런 보람과 의마를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면 당신은 일중독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안식은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관점을 제공하고 인생의 경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복된 여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제자들에게는 이런 안식의 여백이 있었고, 그리하여 부활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도 안식일 준수는 금요일의 사건들이나 제자들의 처참한 기분을 좀 더 넓은 안목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을 것이다. ... 그래서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다음날 아침 일하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는 하나님을 향한 감각이 마음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너머 존재하는 신비로움에 경이감으로 응답하는 능력, 이해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는 것에 놀랄 줄 아는 능력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창세기 1장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창조 사역을 진행하면서도 하루 하루의 창조가 끝날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며 만물을 바라보는 창조적 안식의 미학을 즐기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엿새 동아느이 창조가 끝난 후에는 하루를 온전히 쉬면서 새로운 한 주간을 준비하는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런 안식의 여백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경이를 발견하는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부활처럼 놀라운 진리 앞에 감격하지도 감동하지도 못하고 사는 것일까요? 부활 사건에 놀랄 마음의 여유 그 자체를 상실한 까닭입니다. 개혁자 마틴 루터는 아름다운 부활절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물기를 머금고 생명의 기지개를 펴는 꽃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 수간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그렇다! 부활의 주님은 저 소생하는 아름다운 잎사귀마다 부활의 진리를 새겨 놓으셨다!" 부활의 감격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주님의 부활을 부활로 느낄 안식의 여백이 우리의 마음에서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