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한 자신을 만나는 시간
예배가 주는 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배의 장에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는 거룩하지 못한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가 체험했던 일이 아닙니까? 이사야서 6장을 읽어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성전에 들어가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하던 순간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의 찬양 소리를 듣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이사야 6:3). 바로 그 순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이사야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5).
그날 그는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시편 6:7)는 음성을 듣고 거룩한 하나님의 도구로 새롭게 보내심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령한 예배의 축복입니다. 주님도 산상수훈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예물을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23, 24).
마태복음 18장 20절의 교훈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두세 사람의 예배와 기도의 교훈은 사실상 15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15절 이하는 죄 범한 형제를 교회 안에서 다루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문제들이 풀리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이런 것들이 해결 안 되면 우리의 기도도, 예배도 응답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진정한 예배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교정하는 장이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배할 때마다 변화되고 예배할 때마다 성숙하고 예배할 때마다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가 주는 축복입니다.
예배의 가장 단순한 정의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닮게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바라보는 대상을 본능적으로 닮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청교도 작가인 나다니엘 호손의 명저 <큰 바위 얼굴>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어느 평화로운 시골 마을 산마루에 보기만 해도 준엄하고 자애로운 표정을 한 큰 바위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그 얼굴을 닮은 주인고잉 그 마을에서 나오리라는 오래된 전설 같은 예언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그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게더 골드(황금을 모으는 자)라는 부자 상인이 등장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그는 불쌍한 이들에게 동전 몇 푼을 던져줄 뿐이고 끝내는 재산을 탕진합니다. 그 후에 올드 블러드 앤 써더(피와 천둥의 노인)란 별명을 가진 장군이 등장합니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기다려 온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그 후에 올드스토니 피즈(늙은 바위 얼굴)이라는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언변에 능했지만 그 역시 기다려온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매력을 느꼈지만 그는 자기가 그 바위 얼굴을 닮지 않았다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전설의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실망한 마을 사람들을 향해 설교하던 그 마을 출신의 어니스트를 향해 시인이 소리칩니다. "어니스트다! 어니스트야. 보라 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 마을 사람들이 기다려 온 사람은 바로 그들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늘 그 바위를 보며 살았습니다. 그는 젊어서도 늙어서도 그 바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살았습니다. 그 바위가 그의 안식이었고 위로였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는 바위를 닮아 갔습니다.
만일 예배가 우리의 거룩한 습관이 되어 인생의 아침에도 그분을 바라보고, 인생의 황혼에도 그분을 바라보고, 성공할 때도 그분을 바라보고, 실패할 때도 그분을 바라보고 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을 닮아 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특권이요 복입니다. 예배를 거룩한 습관으로 삼는 일생을 살아가기를 축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무소부재하시다 혹은 편재하시다고 맗바니다. 그러나 한나님은 또한 특별히 어떤 장소를 구별하시어 그곳에 자신의 거룩한 영광을 집중적으로 계시하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서 제사가 갖는 중요성이고, 신약에서 그리고 지금 예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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