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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심, 경험해야 할 실체

예림의집 2018. 5. 21. 12:05

함께하심, 경험해야 할 실체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누가복음 24:13-17, 30-35).


미국이 과거 베트남 전쟁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전쟁은 1964년에 시작되어 무려 10년 만인 1975년에 끝난, 현대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 전쟁 중 하나였습니다. 이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1969년 미국인들은 다른 어떤 해보다도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었고, 신학계에는 이런 시대를 반영하듯 소위 '하나님의 죽음의신학'이 가르쳐지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 미국 중서부 인디에나 주에 사는 빌과 글로리아라는 두 고등학교 선생님이 결혼하여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둘 다 음악을 사랑하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교회 음악 사역에 헌신하고자 학교를 사임하고 미래의 사역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 어두웠던 탓인지, 작곡도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사역의 길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건강도 여의치 않은 상태로 그들은 1970년 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부부가 빌의 아버지를 모시고 사무실 앞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차장 한구석에 으깨진 아스팔트를 해치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파란 풀잎들을 보고 아버지가 "저 풀잎들 좀 봐!"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봄이 오는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이 가정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런 어두운 시대를 자기 가족이 어떻게 헤쳐 가며 살 것인가를 기도하던 글로리아는 마음속에 한순간 두려움이 사라지고 주님이 임재하시는 기쁨이 그녀의 마음을 채우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녀는 펜을 들어 노래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빌과 글로리아 게이터의 "살아 계신 주"라는 유명한 찬양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주님은 정녕 다시 사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스스로 성도임을 고백하면서도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채로 오늘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요? 빌과 글로리아에게 함께하셨던 살아 계신 주님을 왜 우리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사실 성경에 보면 주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신 순간부터 제자들과 "함께하심"은 그분의 약속이었고 습관이었습니다. 마가복음 3장 14절을 보십시오.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그렇습니다. 제자들을 택하신 목적이 "함께함"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주님의 지상 생애에서 마지막 약속이 무엇이었습니까? "볼지로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왜 그분의 함께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함께하시는 부활의 주를 경험하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