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298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실수는 연기처럼
과거의 추한 부분들,
후회스러운 일들,
해서는 안 되었던 말들,
꼭 했었으면 하고 바랬는데
못했던 것들,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당신을 죄롭히고 있는
실수들을 노트에 적어 보세요.
적으면서 하나씩
하나님께 잘못을 자복해 보세요.
그리고 잘게 찢어서
태워 버리세요.
연기가 되어 사라질 때
용서와 새로운 출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용서받은 과거의 죄
죄를 자백하는 순간에는 다시 그 죄를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죄가 치워졌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다시 기억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내가 지벵 돌아왔을 때 그는 팔로 내 목을 껴안고 말합니다. "아빠가 하지 말라고 말슴하신 일을 해버렸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나는 "그럼 용서하고, 내 아들아"라고 말하면서 아들을 끌어 안아줍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눈물을 닦고 기뻐하면서 물러갑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어제 내가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시면 좋겠서요." "예야, 그 일은 벌서 해결되었어. 그러니 그것을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구나." "하지만 아버지께서 저를 용서해 주셨으면 해요. '내가 너를 용서하마.'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깊어요."
이것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일까요? 아들이 아버지를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아버지를 슬프게나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아들의 마음을 생각하고 다시 말을 합니다. "예야, 내가 너를 용서한단다." 그런데 그 다음날이 되어 아들이 또다시 지나간 죄를 꺼내어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정말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번 용서하신 것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불신앙의 태도입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고기한 부르심을 향해 나가갑시다. 과거의 죄는 잊어버립시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1:9).
당신은 온 세상의 심판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도 다시 그 문제를 꺼내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한번 용서하시면 우리의 죄는 영원토록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용서받은 과거의 죄
죄를 자백하는 순간에는 다시 그 죄를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죄가 치워졌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다시 기억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내가 지벵 돌아왔을 때 그는 팔로 내 목을 껴안고 말합니다. "아빠가 하지 말라고 말슴하신 일을 해버렸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나는 "그럼 용서하고, 내 아들아"라고 말하면서 아들을 끌어 안아줍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눈물을 닦고 기뻐하면서 물러갑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어제 내가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시면 좋겠서요." "예야, 그 일은 벌서 해결되었어. 그러니 그것을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구나." "하지만 아버지께서 저를 용서해 주셨으면 해요. '내가 너를 용서하마.'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깊어요."
이것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일까요? 아들이 아버지를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아버지를 슬프게나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아들의 마음을 생각하고 다시 말을 합니다. "예야, 내가 너를 용서한단다." 그런데 그 다음날이 되어 아들이 또다시 지나간 죄를 꺼내어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정말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번 용서하신 것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불신앙의 태도입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고기한 부르심을 향해 나가갑시다. 과거의 죄는 잊어버립시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1:9).
당신은 온 세상의 심판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도 다시 그 문제를 꺼내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한번 용서하시면 우리의 죄는 영원토록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첫째, 찬송은 그 이름에 합당하게 하는 것③
대부분 예배시간에 늦거나, 연습 시간의 지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 첫째가 바로 교통체증 때문입니다. 눈이나 비가 왔다느니, 버스가 늦게 왔다느니, 도로에 차가 많이 밀렸다느니…. 여러분, 차가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인가요? 요즘은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서 지하철을 이용하면 절대로 늦을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25년 동안 찬양 사역을 하고 있지만, 교통사고를 당했던 적과 철원 군부대 방문 때 검열 문제로 지체되었던 단 두 번의 경우를 제외하곤 집회에 늦은 적이 없습니다.
수많은 교회와 집회 장소를 다니지만 지각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의무이며, 마음에 소원을 품고 기다리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코리안 타임이란 말은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만큼은 코리안 타임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왜 이렇게 둔감할까요? 코리안 타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두 번째 이유는 밥 때문입니다. 아침밥이 늦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참으로 궁색한 변명입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예배 후 점심식사를 대접합니다. 아침 한 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단 예기입니다. 우유 한 잔만으로도 견딜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아침을 먹지 않는 것이 오전에 찬양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매번 굶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매번 아침밥이 지각의 원인을 제공한다면 그까지 것 굶고 온전히 예배를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삶은 계란 한 개와 우유 한통 후딱 먹고 집을 나서기를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들지 맙시다. 세상 관료들도 면담 시간에 제대로 맞춰가지 않으면 대통령을 만날 수가 없거늘 하물며 우리의 입으로 만 왕의 왕이라고 찬송하는 하나님을 이렇게 홀대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사명자"라고 부릅니다. 사실 목사나 선교사만을 하나님께서 사명자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명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명자라는 명칭의 의미는 과연 무슨 뜻일까요? 한문으로 사용할 사(使)에 목숨 명(命)을 썼는데 이는 곧 "목숨을 걸고 일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되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의 차원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생명을 바치고, 주의 일은 마치 여가를 즐기듯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름 앞에 사명자라는 수식어가 붙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고 했습니다. 충성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충성을 하려면 목숨을 다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현재 교회에 던져지는 하나님의 물음입니다. 다음 성경 구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 하냐 이제 이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 하겠는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 1:8)”
이제 제발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찬송하지 마십시오. 입으로만 왕이라고 고백하지 말란 말입니다. 입으로만 주의 영광 위해서라고 외치지 맙시다. 주님은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라고 탄식하십니다. 이제 제발 예수님의 탄식을 이제 멈추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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