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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29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5. 23. 12:59

예림의집 129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인내의 축복


인내심을 기르게 하는 것,

뜨개질 배우기,

어린아이 가르치기,

어른들에게 읽기를 가르치기,

굼뜬 개를 산책시키기,

수다쟁이 아줌마에게

오늘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기에

도전해 보세요.

끝가지 인내하는 것은

혼자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 보세요.

이해심을 기르게 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여러 면에서 

당신을 인내하고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믿는 이가 소유한 영원한 생명


이제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 서신에서는 예수님이 천국에서 우리의 변호자로서 우리를 위해 하시고 계신 일을 가르쳐 줍니다. 그의 서신에서 '믿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곳은 두 장밖에 없습니다. 이 두 장을 제외한 요한 복음의 모든 장은 "믿으십시오! 믿으십시오! 믿으십시오!"입니다.

그는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요한복음을 쓴 목적입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하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거기서 그는 이 서신서를 쓴 이유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3). 이 첫 번째 서신은 겨우 5개의 짧은 장으로 되어 있지만 '알다'라는 단어가 40번 이상 나옵니다. 요한일서의 핵심은 '알라'이며 서신서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라"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봄에 미시시피 강을 따라 간 적이 있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사람들이 등대 불을 켜기 위해 강의 한쪽 기슭을 따라 노새나 말을 타고 올라오거나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위험한 항해 중에 있는 항해사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그 거대한 강 전체를 따라가며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말해주는 불빛과 이정표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증거들을 검토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가?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 전 기간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육성을 통해서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소리를 통해서 귀로 들으려고 하기 때문에 도무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육성으로 듣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음성을 꼭 들어보겠노라고 기도원에 올라갔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게 듣고 싶었던 말씀은 "내가 널르 목사로 불렀다."는 한 가지였습니다. 목사이신 아버지 때문에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목사가 되었다는 확증을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확증을 믿는다면 목회가 아무리 힘들어도 목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뿌리라도 뽑으면 음성을 들려주실 것 같아 기도원 뒷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무를 잡고 흔들며 "유.. 기.. 성.. 목사야, 내가 너를 불렀다." 이런 위엄 있고 굵직한 음성을 듣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못하고 나무만 흔들다 내려왔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 14:26). 하나님의 음성은 육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듣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오신 성령께서 육시느이 귀에다 대고 말씀하실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마음에 말씀하시면 되는데 그 통로가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방법으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가 일상생활 가운데 쉽게 지나쳤던 생각이나 내면의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죄의 유혹에 깊이 빠져 있던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죄를 지을 때마다 마음에서 들리는 경고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후로 그의 마음에서는 유혹과 경고 사이에 무서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시간이 자나면서 그 마음의 갈등이 성령님의 경고 때문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해 듣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하여 듣게 되었기 때문에 옛날처럼 죄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음란이라는 죄 때문에 파괴된 어느 가정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강력하게 경고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하나님의 음성에 무릎 꿇고 복종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힘으로 결코 이기지 못했던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하나님의 책망이라고 느낄만한 어떤 생각이 있었습니까?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에스겔 36:2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서 8:5ㅡ 6).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이사야서 55:8, 9).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 구절들을 통해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에 역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생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생각으로 말씀하시는 성령니므이 음성에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 귀가 열릴 때 주니므이 음성이 세밀한 부분까지도 들려 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이 다 성령께서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태복음 16:23). 

우리 생각 속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뿐만 아니라 사탄이 주는 생각도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위대한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그 신앙고백은 베드로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이고 입술로 고백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마태복음 16:16, 17).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에 대해 말씀하시자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런 일은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했습니다. 베드로의 생각과 말은 주님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베드로를 호되게 책망했습니다. 베드로의 생각 가운데 사탄이 역사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생각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마귀 역시 생각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생각을 분별해 보면 어떤 것이 주님의 음성인지, 마귀가 주는 생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붙잡고 품어야 할지, 거부해야 할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놀랄 만큼 끔찍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생각드링 일어날 때가 자주 있습니다. 마귀가 생각에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은 생각, 죽이고 싶은 생각, 슬픈 생각, 자기 연민, 우울증, 가출하고 싶은 생각, 온갖 음란한 생각 등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저는 한때 목회를 그만둘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 자신에게 나쁜 생각이 많아서 스스로 위선자요, 가증한 자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복음 13장을 읽는데 성령님께서 제게 나쁜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 바로 마귀의 역사임을 깨닫게 해주시고, 이러한 도우심으로 저는 영적 위기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오직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마음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악한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으로부터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마귀의 종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을 보면 마귀는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 주엇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이 마귀로부터 온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생각으로 역사하는 마귀의 역사를 분별치 못하고 그 생각을 품었습니다. 성경은 마귀가 준 생각을 떨쳐 버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품으니 아예 마귀가 가룟 유다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합니다(요한복음 13:27).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한번은 이혼 위기에 있는 남자를 상담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마음에 솔직히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우리 서로 솔직히 말하자!"며 다그쳤습니다. 남편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끝일 것 같아서 저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래, 나도 차라리 이혼하고 말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마귀가 심어 주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마귀가 하라는 대로 안 할 거다."라고 말입니다. 이후 그 부부는 자신의 생각과 마귀의 생각을 잘 분별하며 이혼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만일 마귀가 실제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서 온갖 더럽고 끔찍하고 부끄러운 일을 하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금방 긴장하고 대적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생각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그것이 마귀가 주는 것인지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주시는 생각은 조금만 신중하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하라, 전도하라, 사랑하라."는 생각은 성령께서 주신 생각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는 사람음 "기도해야지, 전도해야지"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기도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하지 말고 '주님이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셨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마귀가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 어떻게 역사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마음을 주시는 것 같습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써보세요.


"아빠 아버지, 저는 제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기를 소망합니다. 사탄의 말과 하나님의 음성을 잘 분별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아멘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게 하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앞뒤 가리지 말고, 형편을 따지지 말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첫째, 찬송은 그 이름에 합당하게 하는 것①

 

지금까지 찬양의 기능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내용적인 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대견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살든지 죽든지 오직 주를 위해서라는 이 성숙한 고백을 하기까지 저에게는 참으로 엄청난 내적 갈등과 아픔이 있었는데, 다른 분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쉽게 고백하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합니다. 제가 주님께 깨어지기까지의 고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입으로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관료들이나 부모, 형제를 위해 하는 것만큼도 사랑과 정성과 열정이 깃들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한마디로 일하는 모습만 보아서는 누구를 위해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혹시 표현만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헌신하는 것을 뉘라서 감히 이러 쿵, 저러 쿵 평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 것임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체들의 행실에 대해 우리가 서로 권면할 수가 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합당한 자세와 그 기준에 대해서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죄송하고, 또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권면하려고 합니다. 다 같이 역대 상 16장 28, 29절을 읽어봅시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이 말씀 가운데 우리는 분명히 찬송을 비롯한 모든 섬김의 기준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입니다. 합당이라는 말의 뜻은 딱 알맞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에 꼭 맞는 찬송과 헌신을 하라는 뜻입니다. 

옛날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 가끔 흑백 TV를 통해 대통령의 해외 나들이 때에 행정부에서 주관하는 환송 및 환영 행사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거의 없는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대단했습니다. 심지어 김포공항에서부터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길거리에 차량 한 대도 세워놓지 못하게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일들이 과연 그 이름에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나 아무튼 권위 좋아하는 사람들의 촌극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모습은 하나님을 섬기는 저에게 큰 도전과 무언의 메시지를 남겨 주었습니다. 때로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권위일망정 그것을 세워주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명색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저의 불성실과 무책임한 모습이 너무나 초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때도 있었습니다.

대중 앞에 서서 찬양을 인도하다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찬송 중에 껌을 씹고 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찬양하고 있는데 옆 사람과 잡담이나 늘어놓는 사람, 매 주마다 등산복 차림으로 나와 예배가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는 사람, 심지어 화장실에서나 신을법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들어오는 사람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하나님을 그저 인자하신, 좋으신, 편안한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편의에 맞추어 주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최소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의 매너도 없이, 하나님을 만왕의 왕 운운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힐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성도들에게 찬송을 시켜놓고 설교 노트나 뒤적거리는 목사님들, 찬송 중에 히득거리며 지난 주간에 어떻게 지냈느냐고 옆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철없는 어른들. 이 모두가 구약시대 같으면 아론의 두 아들들처럼 성소에서 불을 받아 죽어야 마땅한 모습들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찬송의 내용만 보면 대단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독재자도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로부터 이런 칭송을 받아보진 못했을 것입니다. 최대의 존칭어, 최고의 수식어입니다. 아! 그런데 찬송하는 그 모습이란!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을 송축하는 모습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 모습에서 부터 세상이 우리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밴드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영성훈련을 위해 밴드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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