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285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주님과 함께 비를...
새벽부터 봄비가 내립니다.
아침에는 잠시라도
창문을 활짝 열고
비내음을 맡아보세요.
아침을 먹고
예쁜 우산을 들고서
비를 맞으러 나가보세요.
주님과 함께 우산 속에서
들려오는 비의 찬양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봄비는 너무나도 고마운 비.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참된 회개가 아닌 것
회개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 말은 상당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의 구원에 대해 걱정이 될 때마다 "나는 기도하고 성경을 읽겠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많은 것을 간절히 간구하면서도 결코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회개란 '어떤 한 가지 죄를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범합니다. 술주정뱅이였던 사람이 각서에 서명을 하고 술을 끊었습니다. '한 가지 죄를 안 짓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한 가지 악한 일을 포기한 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그것은 큰 나무를 스러뜨려야 할 때 나무의 가지 하나를 부러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평소에 불경스러운 사람이 욕하는 습관을 고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모든 죄로부터 빠져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심령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면 나무를 통째로 찍어 넘어뜨리십니다. 이처럼 그분은 모든 죄에서 돌아선 사람을 원하십니다.
내가 바다 위 배 안에 있을 때, 그 배에서 서너 군데 물이 새는 것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가 가서 한 개의 구멍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배는 계속 가라앉을 것입니다. 또는 내가 서너 군데를 다쳤는데 상처 하나남 치료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나머지 상처들로 인해 나의 고통은 더욱 심해져갈 것입니다. 참된 회개란 단지 특정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내일 얘기하겠습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님을 즐거워할 자유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함이라."(딤전 6:1)
바울은 감금되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고 혼란스럽고 고달픈 일이라도 다른 사람의 뜻 에 복종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전서 6장 1절에서, 바울은 모든 노예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들의 주인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충고하였습니다.
특히 당신의 인생에 불공평하고 부정직하고 잔혹하게 대우한 권위자가 있다면, 이것은 당신에게 어려운 원칙이 될지도 모릅니다. 비록 당신이 하나님께 복종하기 원한다 할지라도, 그 당사자에 대한 반감(反感)은 방해물이 됩니다. 바울은 이런 것을 이해했지만, 그도 오직 참된 자유는 그리스도을 통해서 온다고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사람에 대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함으로 완수되는 것입니다. 휘태커 챔버스는, "자유는 영혼의 필요이고, 그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영혼이 자유를 얻으려고 계속적으로 애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해 노력한는데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유의 격려자이며 보증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다스리는 자로부터 자유러워진다고 당신이 참으로 자유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유에 대한 선천적인 필요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환경에 있든지 그분이 당신을 자유케 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십시오.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우하든지 관계없이, 당신이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가장 좋은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이 부르십시오. 당신은 참 자유자입니다.
아빠 아버지, 내게 내 위에 있는 권세자들의 불친절함에 대해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더욱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게 하옵소서. 나는 세속적인 환경에 지배되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의 형혼을 자유케 하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날마다 즐거이 부름으로써 주님 주신 참 자유를 누리가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찬송과 하나님 나라
이쯤에서 제가 따로 정리해 두었던 찬송과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저는 찬송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기에 부를 수 있는 의무이자 권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찬양 중에 거하시며, 경배 속에 그 보좌를 세우시고 좌정하십니다. 따라서 찬양과 경배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고 그 통치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아니 세계 교회 안에 찬양과 경배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통치가 세계 곳곳에서 온전히 회복되고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과 그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이 더욱 더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적전쟁에 임할 준비를 해야 할 때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그의 백성들을 군사로 부르셨습니다. 선한 싸움을 알리는 출전 나팔은 이미 높이 울렸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응답하여 주님 앞에 나와 찬양과 경배를 드림으로써 영적 전쟁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전쟁의 결과는 분명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승리하셨고, 또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그 백성들의 예배하는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두가 알듯이 국가의 구성 요소는 주권, 국민, 영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그 국민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영토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한 곳, 즉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고 있는 인격, 모임, 구체적인 삶의 현장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주권의 인정과 그에 따른 구체적인 반응인 찬양, 예배, 순종의 삶이 일어나는 곳이 하나님 나라의 영토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공간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여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인격이 주님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따라서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 나라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찬양의 원어인 "할랄"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감격적인 반응을 말합니다. 특히 할랄의 한 형태인 "할렐루야"는 그 반응의 절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이 강하게 느껴질 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며 하나님의 현존과 그 능력 앞에서 솟구치는 놀라움과 기쁨과 감격의 외침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강렬히 의식되어 그 놀라움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우리 안에서 분출되는 소리가 바로 이 "할렐루야"입니다. 그러므로 "할렐루야"는 하나님과 그의 통치에 대한 반응의 절정입니다.
시편 가운데 이 "할렐루야"가 자주 사용된 시편들이 있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창조와 다스림, 구원과 심판, 인도와 그 권세, 권능, 사랑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의 마지막인 150편은 온통 "할랄"로 가득 차있고 "할렐루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위대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식할 때 당연히 그리고 언제나, 영원히 일어나야 할 반응, 그것이 바로 "할렐루야"인 것입니다. “할렐루야”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바로 그 곳이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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