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적 개선이 회심은 아니다
한 번 계시의 빛을 받은 사람도 타락할 수 있고(히브리서 6:4-6), 총독 벨릭스처럼 양심의 가책을 늬끼며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24:25). 진리를 접한 헤롯처럼 여러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마가복음 6:20). 하지만 죄택감을 느끼고 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진다고 해서 회심의 은혜로 죄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죄로 말미암아 양심의 가책을 느껴본 사람들 중 대다수는 죄를 깨닫는 거싱 회심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양심의 가책이 회심이라면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도 회심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건축과 세상일에 몰두해 죄책감을 잊기 전까지 가인 역시 극도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방황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방탕한 삶을 그만두고, 악한 친구들을 멀리하고, 탐욕을 이겨내는 등 근신하며 올바른 삶을 살고 있다면서 스스로 회심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사람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과 올바른 삶을 사는 것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며 기독교를 받아들일 뻔했지만,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는 동안에는 경건한 삶을 살았지만, 고난의 시기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을 잊어버린 유대인들처럼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는 기도하고 설교를 말씀을 보고 죄를 멀리하지만, 양심이 잠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죄에 쉽게 빠지고 맙니다. 문제가 되는 죄를 끊고 불결한 것을 버리긴 했지만 육체적 본성은 여전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납을 녹여 사람 모양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납덩어리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다양한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무지했던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하고, 상스러운 말을 내뱉고 다니던 사람이 경건하고 점잖은 모양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 그 본성이 그대로라면, 그는 계속 육체적 탐욕에 따라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개척후원 사역† > 교회개척 가이드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스로 속이지 말라 (0) | 2018.05.06 |
---|---|
전도 동력문구 (0) | 2018.05.06 |
교육이나 법, 억압으로 타락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회심은 아니다 (0) | 2018.04.29 |
외적으로 경건의 규율을 지키는 것이 회심은 아니다 (0) | 2018.04.27 |
도덕적인 의(義)가 회심은 아니다 (0) | 2018.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