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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27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4. 30. 08:43

예림의집 127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병원에서 기다릴 때


병원이나 차과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는

괜히 낡은 잡지나 뒤적이지 말고

하나님과 건강한 대화를 해 보세요.

지금이야말로 

다른 건강한 신체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때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든 

약한 부분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세요.

삶, 질병, 죽음에 대한

당신의 모든 두려움을

그분께 얘기하세요.

당신의 몸에 대해

하나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의 주치의보차도 말입니다.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좋은 권면


디도서 3장에는 건실한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디도서 3:9). 만약 이제 여기에 정직한 회의론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아픈 자식을 가진 어머니처럼 아주 부드럽게 대할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회의적이기 때문에 그를 매보내고 그와 교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동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 한 모임에 참석했었는데 전부터 알고 있던 여성에게 회의적인 숙녀 한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잠시 후 주변을 두러보다가 그 숙녀가 집회 장소를 나가려고 걸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왜 저 분이 그냥 가십니까?"라고 묻자, "아! 그녀는 회의론자이더군요."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문으로 달려가 그녀를 또 다른 그리스도인 사역자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는 그녀와 함께 대화와 기도하며 한 시간 이상을 보냈습니다. 그 사역자는 이후 그녀의 남편도 만났고, 그렇게 한 주일을 보내고 나서야 그 지적인 숙녀는 자신의 회의적인 생각을 내어 던지고 활기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대화와 기도의 시간을 통해 그렇게 회의적인 사람들을 대해야만 합니다.

제 말에 의심하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7).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행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죄를 버리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회르론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한 순간에 죄로부터 돌아서서 빛을 발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며 단번에 성경의 모든 말씀을 깨달으려고 조급해하지 않는다면, 그는 매일매일 빛을 더 얻게 될 것이고 단계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거룩해지는 과정을 "성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성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어두움의 세계로부터 하늘의 밝은 빛의 세계로 인도되어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다니엘 12:10).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자기 비밀을 결단코 나타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지 죄안에 살기를 지속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편 25:14),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리라 너희를 친구라 하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한복음 15:15). 당신이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면 비로소 그분의 비밀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세기 18:17).

이제 하나님을 닮은 이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부터 기꺼이 돌아서지 않는 한 하나님의 듯을 알 수 없으며, 하나님도 자신의 비밀을 그에게 나타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기꺼이 죄에서 돌아서면, 그는 빛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분명 놀라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그리스도인이 실패하는 이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예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왜 주님은 내 안예 계시기만 하고 역사는 안 해 주시는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역사를 해 주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역사를 안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역사를 못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한복음 2:1-5).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계셨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지만 예수님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듣는다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이 우리의 현실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고 또 무엇이 어려운지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시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손님으로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께서 정말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다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이 모든 일에서 한 번도 주님이 주인 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역사하고 싶으셔도 못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셔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은 예수님께서 주님이 되실 때 일어났습니다.

미국의 부흥하는 교회를 탐방하러 갔던 길에 그레이스 커뮤니티 처치를 방문하여 존 맥아더 목사를 만나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목회하시면서 성공했던 것은 무엇이며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대답했습니다. "내가 한 것은 다 실패였고,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다 성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주님이 되시지 못하는 것일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아 대문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上)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십자가 복음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죽는다."는 고백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는 것을 비참하게 생각하고 "예수를 믿으면 꼭 죽어야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아직도 자아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아의 실상을 알고 나면 내가 죽는다는 것이 복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고백한 이유는 바울 자신이 얼마나 죄에 오염되어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가 우리 자신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과 죄는 구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아 그자체가 죄 덩어리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의지, 감정, 지식을 포함한 모든 영역이 죄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아의 실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나름대로 경건하게 살기 위해 노력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성질도 이겨 보려 하고, 나쁜 습과, 두려움, 염려, 분노, 혈기, 시기, 질투, 음란한 마음 같은 것들을 이겨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정직한 고백은 "도무지 안 됩니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우리에게는 절망으로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이 고백을 기뻐하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할 때 비로소 "나는 죽었습니다."라는 십자가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 곡식이 있고 가라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라지를 심어 놓고 김을 잘 매주고 비룔를 열심히 주면 가라지가 어느 시점에 곡식이 될까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곡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매일 Q.T하면 사람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가 조금씩 사라지고 예수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사람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세월이 10년 지나고, 30년 지나도 사람의 본성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단순히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죽고 다시 살게 하시려는 것, 곧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게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로마서 6:6). 우리의 옛 사람은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자아로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예수님과 함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다시 살게하신 것입니다.

아누리 노력해도 변화되지 않는 가라지를 알곡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알면 자아의 죽음이 기쁨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선언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이것는 결코 우울한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이 고백은 기쁨의 환호성이었습니다. 죽은 것이 그렇게 좋았을까요? 대답은 "예"입니다.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절망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 안에서 소망과 진정한 삶의 길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은 가장 거룩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 초기에 유명한 김익두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시장의 상인들 중에는 오늘은 제발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물을 떠 놓고 비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불안을 안겨 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깡패 청년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에수 믿고 회개한 다음에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강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죽었다는 김익두가 시커먼 책 하나를 들고 버젓이 시장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보니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김익두 목사님을 시험하려고 길을 지나갈 때 물통에 있는 물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러나 김익두 목사는 물을 툭툭 털고 쳐다보더니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네가 받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시험거리가 생길 수 없습니다.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없습니다. 이거싱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고 능력입니다. 당신의 살메서 마주하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습니까?


"아빠 아버지,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내 자신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만이 살게 하소서. 오 주님! 나의 잔을 채워주소서. 성령의 은혜로 체워 주시고, 하늘의 양식으로 넘치도록 체워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의 주인으로 나를 이끄시고 책임지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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