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슈바이쳐/데이비드 리빙스톤
첫 번째 인물로 '알버트 슈바이쳐'의 발자취를 생각한다면 그는 신학, 철학, 음악, 의학 네 가지 박사 학위를 가진 석학이었다. 그런데 슈바이쳐가 아무 예고도 없이 어느 날 파리의 음악가들의 세계를 떠나고 대학의 강의실을 버리고 대륙 최고의 오르간 연주를 포기하고 하프리카 밀림 속에서 신음하는 비참한 나환자들의 병을 고쳐 주고 그들의 병든 영혼을 구하려고 아직도 식인종이 사는 원시림 속으로 뛰어들어 갔을 때, 슈바이쳐의 결심을 막으려는 많은 지도자들에게 그는 그때의 떠나는 심경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말 없이 하나님의 주신 소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신학, 철학, 음악의 세계를 떠나 의사가 되었다. 나는 지난날 말과 글로 신학교의 선생,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로 살아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내가 새로 받은 소명은 사랑의 종교를 말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바쳐 실천하려는 것이다."라고 아프리카로 가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 인물로 나는 아프리카 검은 대륙에서 일생을 보낸 영국의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톤'의 철저한 사명감을 본받았으면 합니다. 리빙스톤은 흑인들의 영혼을 구하려고 검은 대륙 오지에서 일생을 그들과 함께 살다가 죽은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들은 영국 조야 에서는 이런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을 낯선 외국 땅에 묻게 할 수는 없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사신을 보내어 그의 시체를 본국으로 운구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간 영국 사신들은 모든 아프리카 사람들의 리빙스톤 선교사를 사랑하는 그 뜨거운 눈물을 보면서 그의 심장은 리빙스통이 일생을 바쳐 사랑한 아프리카 대륙에 묻고, 그 나머지 시체만을 운구하여 웨스터민스터 대사원의 장엄한 국조에 묻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례식에서 가장 인상 깊엇던 것은 외로운 흑인 하나가 그 관머리에 서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는 리빙스톤 선교사가 작고한 아프리가 오지로부터 그의 유해를 모시고, 산 넘고 바다 건너 이 불멸의 위인이 잠든 지점까지 따라온 '잔지발인'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슬픔에 잠겨 말 없이 관을 모시고 서 있는 한 사람의 흑인이야말로 리빙스톤으로 하여금 이 불멸의 위령들과 자리를 같이하게 한 가장 뚜렷한 표징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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