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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254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4. 8. 07:13

예림의집 1254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왕따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경건한 마음으로 찾아보세요.

그들을 대화에 조대해 보세요.

그들의 의견을 묻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세요.

당신이 그들의 도움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그들이 알게 하세요.

당신이 하나님의 임재에 

초대를 받고, 원할 때마다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구원받는 법


누군가가 말합니다. "난 어떻게 구원받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오늘, 바로 이 시간, 바로 이 순간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야 합니다. 당신이 그분을 믿으면 그분께서 당신을 구원해주십니다. "난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픔을 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믿음과 신앙생활에 관해 알고 있지만, 아픔을 충분히 느끼고 있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아파하기를 원하실까요?

나는 강남 삼성의료원의 훌륭한 외과의사를 친구로 둔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가 한 번은 외과의사가 수술 전에 환자에게 하는 말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습니다. "상처를 잘 보십시오. 그리고 이제 눈을 내게 고정시키십시오. 수술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눈을 떼지 마십시오." 나는 그때 그것이 아주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햇습니다. 

죄인인 우리는 우리 내면의 상처를 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고정시키고 다른 데로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보다는 구원자를 바라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불상하고 가엾은 죄인인지를 깨닫고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분은 경건치 않은 자들과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제 "내가 그분을 영접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갈보리 언덕위의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놋뱀을 보고 나았듯이,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다시 일어나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요 21:15)."

 

당신은 실패하였습니까? 당신의 속사람이 혼란과 후회와 같은 몰래 들어온 감정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까? 그 때 훌륭한 제자들 중 한 사람도 실패한 것을 보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는 순간은 제자들은 도망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그의 사랑하는 친구를 세번식 부인하면서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났을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원한을 품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은,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에게 진심으로 그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나의 어린 양을 먹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예리하게 주석하기를, "우리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부끄럽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일어나서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신 대로 경건한 삶을 살아내십시오!

 

"아빠 아버지, 내가 죄책감으로 허우적거린 것은 당신 때문에 한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랬습니다. 나로 빨리 일어나서 당황과 후회와 같은 고통을 무시하고, 당신의 일을 열심히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나의 삶을 경건과 헌신으로 가득차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CCM에는 신앙용어가 많이 없습니다.

 

“CCM에는 하나님, 예수님 같은 신앙용어가 많이 없습니다. 이게 찬양일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질문자의 많은 고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만큼 찬양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최대한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제 글을 읽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찬양은 수직적인 것으로만 인식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만이 찬양이라고 인식되어 온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수평적인 노래, 성도 사이에 권면과 교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노래는 격이 떨어진다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편견입니다. 찬송가 중에도 수평적인 노래도 많습니다. <성도여 다 함께>,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등 가사의 대상이 사람에게 향해있는 노래가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런 질문은 ‘하나님, 예수님, 할렐루야, 아멘’과 같은 신앙용어가 배제되어 있는 노래에 대한 지적인줄 압니다. 이런 용어가 들어가 있지 않는 노래는 찬양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찬송가 <어둔 밤 마음에 잠겨>는 찬송가에서 빼야 할 노래입니다. 그야말로 편견인 것입니다. 분명 찬양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 내용이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말입니다. 똑같은 가사를 성악이나 고전 클래식 선율에 얹었다면 이런 문제 제기가 있었을까요? 오히려 성가곡 중에는 찬양이 될 수 없는 곡들이 널려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베 마리아>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