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사역†/사역 나눔터

진정한 찬양의 능력

예림의집 2018. 3. 29. 17:34

진정한 찬양의 능력


고대 근동 지방의 여러 민족들은 저마다의 신이 있었습니다. 그 수도 많았는데 지금의 일본 정도 여서 어떤 민족들은 귀신 중의 왕이라는 바알세불을 섬겼고, 어떤 민족들은 아스다롯이라는 풍요와 사랑의 신을 섬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다의 여신이라는 아세라 상을 섬겼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지조없이 아세라도 섬기다가 바알세불도 섬겼다가 하였고 심지어는 신이 너무 많은 나머지 그리스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신까지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그 당시의 전쟁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신과 신의 전쟁이 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신에게 전쟁에서 이기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서 패한 나라의 신은 죽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 나라의 사람들은 진 나라 사람들을 놀리는데 '너희의 신은 밥 먹으로 갔다' 너희의 신은 '낮잠자고 있었다'라고 놀리기도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 "전쟁에 능하신 주"로다는 표현은 항상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조 없이 다른 나라 이방신을 섬기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수 가 있는데 때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로 인해 전쟁에서 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전쟁에서 졌으니까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는 죽은줄로 알고 해방이 되어서는 또 다른 신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느 순간에 나타나서 나의 이름은 여호와다 하시며 내가 너희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시며 그때마다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셨습니다. 다른 나라의 민족들도 워낙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싸움을 잘하니까 왠만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데 막상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로 인해서 지면 여호와 하나님도 죽은줄로 알고 착각하여서 또 덤비고 또 덤비고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의 얘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죽은줄로 알고 이스라엘을 겁없이 공격했던 모압 자손, 암몬 자손,세일산 거민들을 믿음이 밑바탕이 된 찬양으로 물리 쳤던 여호사밧 왕시대의 이야기 입니다. 

잠깐 신약으로 넘어가서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 "하며 우리의 인생이 악한 영과 싸우는 일종의 전쟁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 바을은 예수님은 우리를 군사로 모집한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우리 인생이 전쟁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굳이 성경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범죄와의 전쟁'이니 '교통전쟁'이니 '전쟁 도발'하는 전쟁이란 말을 듣고 있습니다. 하늘에 공중의 권세잡은자가 있는한, 우리를 시시각각으로 미혹케하는 영이 있는한 우리 인생은 이들과의 전쟁이며 싸움이고 우리는 이에 대적해서 싸우는 하나님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이러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

 

첫째로 우리는 이 전쟁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임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15) 이 말은 전쟁의 승패가 사람의 수나 무기의 성능에 달려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달려있다는 말로써 이말을 처음 사용하였던 사람은 골리앗을 상대로 싸우던 다윗이었습니다. 결국 속하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은 우리가 전쟁을 하게 될때에 무엇을 의지하고 누구를 의지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하여 줍니다. 

우리의 힘으로 전쟁을 하려할때, 우리 개인의 경건으로 이세상의 미혹의 영과 싸우려 할때에 우리는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교회 일을 하려고 할때에도 적용이 됩니다. 성령의 도움심 없이 우리의 부지런 함으로 , 우리의 노력으로 교회일을 할때에 우리는 쉽게 지치고 낙망하게 됩니다. 

T.V.나 아이들의 만화 영화를 보면 어떤 어이가 착한일을 할때에 자기의 오른쪽 어깨에서는 하얀옷을 입은 천사가 나타나고 자기의 왼쪽에서는 검은 옷을 입소 창을 든 사탄이 나타나서 이것을 해라 하지말아라 싸우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가 착하면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이길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 입니다. 사탄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거짓 생각 입니다. 사탄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의를 이룰수 있다고 계속 이야기 하고 있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의로워질 수 없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이길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때 우리는 승리할수 있는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회사에서건, 학교에서건 ,교회에서건 ,집에서건 자신의 모든 행동은 악한 영과의 전쟁이며 이 전쟁은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때에 일수 있음을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것 임을 믿어야 할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전쟁에 당당하게 맞서야 할것입니다. 본문 16절과 17절에는 마주 내려가라, 보라 하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꿩을 잡을때에는 세 사람이 세 방향에서 모래 꿩에게 다가가서 동시에 뛰어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꿩은 마음이 급하여서 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계속 뛰어 간다고만 하는데 뛰다 뛰다 지친 꿩은 그만 자기 머리를 수풀 사이에 쳐 박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기가 앞을 보지 못하면 사람들도 보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꿩 사냥꾼은 살짝 웃으면서 꿩을 잡는것도 아니고 줍는다고 합니다. 노루를 잡을때에는 몇시간을 계속 추적해서 잡는데 이렇게 해서 노루를 잡아서 배를 갈라보면 노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못이겨서 간이 다 녹아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큰 병에 걸렸거나 지금처럼 우리의 생업이 없어지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났거나 혹은 많은 기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때에, 식구가 하나님을 떠나서 돌아오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핍박할때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주저 않아 버리기 쉽습니다. 이러한 않 좋은 상황이 오래 되면 될수록 우리는 이 상황에서 마치 꿩처럼 피하려 하고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던 노루처럼 약해져만 갑니다. 이스라엘이 3나라의 민족에게 포위되어서 죽을 상황에 있을때 이스라엘의 대장되신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마주 내려가서! 보라 !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때, 우리가 악한 영과의 기약 없는 처절하고도 힘든 싸움을 할때 우리는 먼저 그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고백하고 그 다음은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일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려는 자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자기도 물위를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았을때에 물위를 걸을수 있었지만 그의 앞에 다가오는 큰 파도를 보고 두려워 하였을때에 그가 물속에 빠졌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싸움에서 회피하고 우리의 눈을 세상으로 돌리고 사람을 의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꿩 처럼 사탄에게 잡힐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 보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승리에 기뻐하기 위해서 담대히 어려움을 당하며 우리의 환경으로 부터 요나처럼 도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 우리는20절에서 부터 알수 있는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를 승리케 하는것, 우리를 하나님의 평강 안으로 인도하는 것 그것은 바로 신뢰 즉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것임을 고백하고 또 하나님이 하시려는 구원의 역사들을 볼때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없다면은 그것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사밧 왕은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잘 이해 할수 없는 일을 행합니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어떻게 무장하고, 작전은 어떻게 짜고, 간첩이 동해안으로 넘어왔을때처럼 우리 군이 삼면으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순찰하고 하는등의 순서는 모두 무시하고 단 지 그가 한일이라곤 백성들과 의논하여서 노래하는 자를 고르고 그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전쟁터에 나갔다는 것입니다. 요사이로 말하면 군복을 입히지도 아니하고 성가대 복을 입히고 전쟁을 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전쟁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러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전쟁터에 나가서 찬송하기를 시작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 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렇게 찬양할때에 암모과 모압자손이 세일산의 사람들을 진멸하고 나중에는 서로 싸워서 적군의 모두는 다 죽게 되고 이스라엘의 승리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여호사밧왕이 전쟁하러 나가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아니하였는데 그렇게 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다 ?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을 통하여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것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여호사밧왕은 그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승리할수 있었던 것이었고 이 믿음은 왕으로 하여금 군대대신 성가대만을 준비하게 한것입니다. 결국 이 전쟁은 사실상 19절 "그핫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에서 끝난 것입니다 . 할렐루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안이 열립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찬양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보는것 영안으로 보는것, 우리는 그것을 비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찬양의 능력을 볼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찬양이란 바로 믿음을 바탕으로 드리는 찬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것을 믿고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찬양할때에 그것이야 말로 진종한 찬양인것이며 그러한 찬양은 군대를 이기고 사자의 입을 막고 옥문을 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전도 여행으로 피곤하고 숱하게 매도 맞고 몹시도 힘들었을 바울과 실라가 어두컴컴한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을때 옥문이 열린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단지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기억하면서 찬양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전쟁이라는 크나큰 위험속에 쳐해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고 삶의 어려움과 악한 영과의 전쟁에 직면해 있는 우리 시대의 성도에게 이렇게 충고 하여 주고 있습니다. "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여러분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쁘다면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위해 더욱 기쁘게 찬양하여야 할것이고 만약 우리가 힘들거나 슬프다면 우리에게 위로가 되시고 힘을 주실 하나님을 믿으며 감사함으로 더더욱 기쁘게 찬양 하여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승리를 믿고 영안으로 부는자는 감사함으로 찬양할 것이고 감사하며 진정으로 찬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숭리를 주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