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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음악에 대해서

예림의집 2018. 5. 5. 21:09

나쁜 음악에 대해서


음악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언제나 그래왔고, 현재에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그럴 것임은 더욱 명백합니다. 에베소서 5 :18, 19은 음악이 성령충만한 생활을 나타내주는 도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골로새서 3 :16에서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어떤 음악의 방법을 선택하여야 할지를 부연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챤들은 그야말로 찬양 문화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크리스챤 음악이라고 하면 찬송가와 복음성가집 그리고 성가대들을 위한 각종 성가집들이 고작이었던 것이 극동방송을 위시로하여 대대적인 복음성가 경연대회들의 등장과 더불어 수많은 찬양 선교단을 발족시켰고, 두란노 경배와 찬양 모임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수 많은 교회에서 찬양모임을 부추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물결 아래 찬양을 전문으로 하는 수많은 가스펠 가수나 찬양 사역자로 불리우는 이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음악적 재능을 지닌 많은 젊은이들은 이러한 사람이 되길 소망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결국 다양한 크리스챤 음악들을 등장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여파로 크리스챤 대중음악(CCM)이라는 음악의 새로운 장르가 한국에도 급속도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생겨난 것이 고작 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상당히 놀랄만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갑작스런 크리스챤 음악의 발전은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록음악의 속임수 


이러한 문제들 중, 첫째는 그들의 대부분이 록음악을 사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록음악과 함께 자라왔고, 그것을 포기해야 할 합당한 이유들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젊은이들에 대한 사역을 위하여 나이든 성도와 또 유명한 목사들과 크리스챤 지도자들이 록음악을 적당한 도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고, 일부 목회자들은 이러한 일에 직접,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거나 적극적으로 추천, 장려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교회에 세트 드럼(set drum)이나 전자 악기(electronic instrument, 일렉 기타, 베이스 기타, 전자 키보드 등 - 이러한 것들은 록음악을 연주하는데 사용되는 악기를 대표하는 것이며, 악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님)를 들여오는 것에 대하여 성도들은 강력하게 저항을 하였는데, 오늘날의 성도들은 그들의 아들과 딸들이 원하는 음악, 즉 록음악에 관하여 뭐라뭐라 몇 마디의 잔소리만 할 뿐이며, 오히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젊은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은 가능한 많은 아이들을 교회에 끌어들이기 위하여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록큰롤 음악을 끌어들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음악목사로 유명한 어떤 분은 한 세미나에서 "사탄의 자식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하나님의 자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맞는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현대 교회가 찬성하고 있는 생각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한일서 2:15을 통해서 그러한 방법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한일서 2:15).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방법들이 세상과 철저히 분리되기를 원하십니다. 어찌되었든지 이러한 수용성과 대중성을 위한 운동들이 급기야는 크리스챤 대중음악을 탄생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록음악은 그 자체가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과학적인 임상 실험을 통해서도 이미 확인된 것이고, 록음악의 위험성에 대한 것은 많은 증거들을 제시하지 않고도 그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고 언제나 속이고 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탄의 첫 번째 속임수는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것이 록음악인지 모르도록 무지와 혼란 속에 두는 것입니다. 현대에 쏟아지는 가스펠 음악의 대부분이 록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록음악인지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직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음악과 세상의 음악이 달라야 한다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이 여전히 크리스챤 록음악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록음악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세상음악을 싫어하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유행가도 알지 못하고 부르지도 않지만, 찬송가는 거의 부르지 않으면서 록음악으로 창작된 수많은 복음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은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이며, '세상과 분리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본의는 아닐지라도 불순종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속임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이 록음악인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기를 원하십니다(로마서 12 :2). 

또 사탄은 말씀을 부분적으로 보아 확대해석함으로 우리를 속입니다. 록음악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편 150편을 그들의 무기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으니 록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주장하고, 또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도 종종 인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편 150편은 각종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지, 모든 음악의 장르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그보다 더 많은 구절에서 분리에 대해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찬양하기를 원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찬양 받으시기 원하시는지에 대하여 더욱 생각해 볼 것입니다. 


록음악의 음란성 

우리들의 대부분은 록음악이라고 하면, 헤비메탈(Heavy Metal)과 같은 하드 록(Hard Rock)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모든 록음악이 그렇게 시끄럽고 강한 비트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시끄러운 음악들이 엄청난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것 못지 않게 부드러운 록음악(Soft Rock)도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록음악에도 상당히 많은 장르가 있어서 일일이 다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지금 대중음악의 100%가 록음악에서 나왔거나 록음악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들은 레게, 보사노바, 발라드, 리듬&블르스, 고고, 칼립소 등의 수많은 이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이름들을 가지고 있지만, 리듬이나 화음적 구성에서 아주 많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후에 자세히 설명을 하겠지만, 이런 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이 불협 화음의 연속과, 싱코페이션(Syncopation)의 잦은 사용, 아우프탁트(Auftakt)의 남용 등입니다. 

그리고 이들 음악의 기원은 대부분이 흑인 음악에서 비롯된 것인데, 주로 재즈(Jazz)에서 갈라져 나온 것들 입니다. 재즈음악은 무드음악으로 많이 사용되는데 음란한 것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실 '재즈'란 말은 '성교하다'는 뜻의 은어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재즈음악이 얼마나 불경건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사용되는 리듬과 박자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것인데, 그들의 접신행위에 사용되는 음악과 아주 똑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음악들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르는 많은 찬양이라는 것들이 대중음악과 비교하여 가사만 제외하면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을 일부러 끌어 들이고 그들의 박자와 화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이들도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사실입니까? 


화음의 파괴 - 불협화음의 연속 

음악의 특징들 중 하나는 불협화음을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조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셨습니다(창세기 1장). 이러한 조화를 깨뜨린 것은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인간과 하나님의 조화를 속임수를 통해 인간이 타락하게 하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창세기 3장). 

즉, 불협은 사탄의 속성인 것이고 사탄에 의하여 발생된 것입니다. 물론 음악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불협화음을 가끔씩 사용하기는 하지만, 불협화음 이후에는 곧 협화음을 사용하여 긴장을 풀어 주는 것이 정석입니다. 하지만, 록음악에서는 긴장을 풀지 않기 위하여 연속적인 불협화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속적 불안함 속에서 말초 신경들이 긴장을 하게 되고, 이런 것이 연속되면서 급기야는 모든 신경이 흥분을 하여 어떠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육신의 정욕'은 세상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서 난 것이 아니요, 세상에서 난 것임이라"(요한일서 2 :16). 그런데 이러한 것이 요즘 많이 불려지고 있는 복음송에서도 쉽게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실례로 우리 주변에서 많이 불리우는 "그 이름"(최○○ 곡)의 1-24마디(전주 포함)의 화성을 보면 20번째, 24번째의 마디를 제외한 22마디가 불협화음으로 배당되어 있습니다(Em7, A6, F#m7, Asus4, 이외의 D, Bm, Em등은 협화음이지만 강박에서 장 2도의 음정이 주어졌기 때문에 불협화음으로 본다). 

역시 최○○ 곡인 "참 소경"의 9-24번의 마디의 화성에는 10마디 정도(F7, Dm7, Db+, B07, Bb7, Csus4)가 불협화음으로 배당되어 있고, 비교적 전통적인 복음성가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김○○ 곡의 "주님 뜻대로"의 1-28번 마디의 화성을 보면 17마디가 불협화음으로 배당되어 있습니다(Dm7, Em7, F7, G7, E7, D7, Gsus4). 정리해 보면 크리스챤 록음악에서 사용하는 불협화음들은 속 7화음 외에 버금 7화음, 9화음, 그리고 감화음(Diminish chord), 증화음(Augmented chord), 부가화음(Added chord, Suspended chord), 그리고 조성(Tonality)에 관계없이 단조화음(Minor chord) 등을 많이 사용합니다. 


리듬의 파괴 

그 두 번째는 과도한 싱코페이션(당김음)의 사용입니다. 음악적 표현에 있어서 '싱코페이션'은 악곡의 변화와 긴장감의 증대를 위해 주로 사용합니다. 즉, 리듬의 불규칙성은 단조로움을 떨쳐 버리며 이로 인해 오는 악센트의 이전과 증가는 음악 자체를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음악적 표현을 위해 싱코페이션은 매우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이것에 대한 쾌감이 있다고 해서 과도하게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싱코페이션의 사용이 긴장을 가지고 오게 되는 원인은 박자를 당김에 의해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과도한 싱코페이션의 사용은 심장의 박동을 점점 빠르게 하고, 엄청난 긴장감을 몰고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록음악 콘서트에서 관중과 가수 모두가 흥분하고,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심하게 되면 무의식 속에 빠지게 되고 심지어 혼의 육체 이탈 등,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자아를 잊어버리는 무아지경 상태나 어떠한 체험을 강조하는 뉴에이지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명상을 할 때 그들의 의식을 흐리게 하기 위하여 '만트라'(의미없는 말들을 반복해서 말하는 일종의 주문)라는 것을 사용하는데, 음악에서 싱코페이션의 과도한 사용이 그러한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하여 우리가 정신을 차려 깨어 있을 것을 권고 하십니다(벧전 5 :8). 싱코페이션을 주로 사용한 가스펠은 이○○ 곡의 "믿음의 기도"와 정○○ 곡의 "주의 인자하심 생각할 때" 등이 있습니다. 또한 싱코페이션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아우프탁트(Auftakt)를 남용하는 것인데, '아우프탁트'란 약박이나 중심 리듬 이전의 준비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우프탁트의 길이는 정해져 있지는 않으나 그 길이가 짧거나 세분될수록 다음에 주어진 중심 리듬의 자극이 강하게 나타나서 긴장감이 증대되어지는 것입니다. 아우프탁트의 과도한 사용은 상당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으며 강한 비트를 살리는데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싱코페이션보다 더욱 강한 만트라적인 성격을 지닌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과도하게 사용되지 않은 현대 복음성가가 거의 없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일입니다. 특히 아우프탁트가 심하게 사용되는 가스펠에는 시편 62편을 노래한 이○○ 곡의 "나의 영혼이 잠잠히"와 이○○ 곡의 "깨끗히 씻겨야 하리" 등이 있습니다. 무의식이나 체험을 강조하는 뉴에이지 음악, 혹은 기독교 내의 은사주의 운동에 사용되는 복음송들이 싱코페이션이나 아우프탁트를 심하게 사용하는 음악들을 수용하고 있는 원인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비성경적인 가사 내용 

비록 크리스챤 대중음악의 가사가 성경적인 내용일지라도 록음악이라는 자체만으로도 큰 문제가 되는데, 그 노래의 가사 역시 전혀 성경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일 때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로암'이라는 노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등장하자마자 대부분의 교회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세대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교회를 다녔던 적이 있다면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으며, 교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유행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찬양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이 있지만, 다른 어떤 곡보다도 이 곡은 철저하게 록음악적인 박자를 사용하였고 그 가사 내용도 전혀 성경적이지 못한 것으로서 찬양이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는 그러한 노래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소경이 실로암 못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것은 새벽이나 밤이 아닌 대낮이었고,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고, 눈을 뜨게 된 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던 것입니다(요한복음 9장). 

하지만 그 노래는 '어두운 밤에'라는 가사로 시작되고, 마지막 부분에서도 '나에게 영원한 이 꿈 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절대 꿈이 아닌 실제적인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와 삭제, 그리고 첨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볼 때, 이는 아주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조금의 변개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요한계시록 22 :18,19) 

실로암이 많이 불려졌던 이유는 박자가 신났기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이는 전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은 골로새서 3 :16을 통해서 말씀 안에 풍성히 거하는 가운데 영적인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어긋나며,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노래로 찬양받으시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이외에도 비성경적이면서 "찬양"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심각한 것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대중가수들의 노래가 그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적이지도 못한 록음악을 찬양으로 받으시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후천년주의적 발상 

세번째의 문제점은 이러한 크리스챤 대중음악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후천년주의적 발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찬양 사역을 한다면서 록음악들을 사용하는 이유는 사탄이 장악한 대중문화를 그들이 다시 장악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대중들이 좋아하는 록음악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탄은 대중문화를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대중음악을 따로 정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했을 때 그는 실제로 사탄의 편에 서게 되었고 사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아담은 전 인류를 어둠의 왕국, 사탄의 권세 아래로 몰아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통치권은 아담의 손에서 사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사탄을 "이 세상의 신"(god of this world)(고린도후서 4:4)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결국 세상에 속한 대중들의 문화는 이미 사탄의 것이었습니다. 사탄이 따로 정복할 필요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시며 이러한 일은 그분의 재림 이후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우리의 음악적 능력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챤 대중음악의 많은 곡들을 보면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고 그들은 그런 발상과 생각들을 가지고 음악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 8집은 이러한 사상을 가진 대표적인 앨범이며 그 가운데 수록된 '사랑하세'라는 곡을 보면 그들의 생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그 곡의 일부입니다. "사랑하세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세 주의 사랑 주님 우리를 통해 이 땅을 고쳐주시리" 어떻게 보면 가장 성경적인 내용이고 좋은 가사인 듯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여야 하는 것은 맞는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사랑을 통해 세상이 고쳐지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이 땅을 치료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요, 그분께서는 재림 과 동시에 이러한 일들을 하실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이전에는 세상이 극도로 타락하고 혼란할 것이라고 성경은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임무는 심판을 향해 질주하며 가속화되어지고 있는 세상의 부패를 지연시키고 방지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는 것은 오직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써만 가능합니다(마태복음 19 :28). 우리는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는 것은 말씀이지, 음악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전서 1:23을 통해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성 

역사에 따라 많은 것들의 기준이 변하였듯이 음악도 절대적인 것이 없이 상대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그러한 것은 시대적인 조류에 역행하는 처사라고들 합니다. 즉,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음악의 장르를 교회에서도 수용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인 것입니다. 또한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제 교회에서도 그 새롭다는 화음체계와 리듬의 체계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전도서 1:9,10). 록음악의 화음체계와 리듬체계는 시대가 변하여 새롭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들의 기원을 살펴봄으로써 이미 확인된 바입니다. 사탄은 이미 오래된 사탄 음악을 새시대의 음악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속이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상대적인 것을 주장하나 하나님은 상대적인 분이 아니시고 절대적인 분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상대적인 기준이 아닌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심지어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적인 기준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이 변하고 변하여도 세상은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져도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음이라. 이것이 너희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이니라"(베드로전서 1: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