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243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토기장이
한 덩이의 진흑을(찰흙도 괜찮습니다)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 보세요.
진흙의 모양을 바구고 빛을 때마다
당신을 빚으시고
당신이 성장하고 변회되어 가는 모습을
즐기시는 토기장이인 하나님과 대화해 보세요.
하나님이 아직도 당신의 침임, 성실, 규율을
빚고 계심을 확신하나요?
당신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스케줄 짜기?
나븐 습관 고치기?
자명종을 15분 일찍 마춰 놓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반응하는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회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 어떤 사람들은 회심을 위한 특별한 종교적 모임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합니다. 즉 술주정뱅이나 도박꾼처럼 악한 사람들에게나 그런 모임이 필요하지 "우리는 회심할 필요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시 니고데모에게 지혜로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술주정뱅이며 도박꾼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의원이요 산헤드린 최고 평의회의 회원이었으며,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가장 건실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여기서 저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걸 상상해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나는 생명을 창조할 수도 없고, 나 자신조차 구원시킬 수도 없는데." 물론입니다. 당신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리스도 없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그렇게 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인간은 '옛 아담'의 본성을 개조해 보겠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것은 헛된 일입니다.
새로운 창조가 있어야만 합니다. 거듭남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창세기 첫 장에 인간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창조에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세상을 구속하셨습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에티오피아 사람(구스인)이 자신의 검은 피부색을 변화시킬 수 없고, 표범이 자기 몸의 반점을 없앨 수 없듯이, 하나님의 도움없이 당신이 순결하고 거룩하게 변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흑인이 백번 씻는다고 해서 백인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은 마치 달을 향해 뛰어오르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라는 말씀은 진리인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참을 수 없는 짐을 지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딘지 알아보고 그리고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에렘이야 6:16)"
우리가 과중한 짐으로 지쳤을 때, 세상은 더 냉정한 곳인 것처럼 보입니다. 태양은 빛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를 떨굽니다. 새들은 노래하지만 우리 귀에는 마음의 울부짖음가 슬픔과 권태의 울부짖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로 시간과 주의를 빼앗기게 되면, 다른 사람과 우리 사이에는 거리감이 생기게 됩니다.
아마 우리는 채워지지 않는 기대, 갑작스러운 사고나 죽음, 단순한 너무 무거운 책임감에 의해 압박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지은 죄들로 인해 마음의 중압감을 갖게 됩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지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욱 더 침체의 빠지게 됩니다. 침체가 침체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언제나 변치 않고 우리를 더욱 가까이 이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 안에서 안식을 찾아야 합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백성들에게 선한 길을 찾고 그 안에 행하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가 안식을 발견할 수 있는 길입니다.
당신은 지금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길을 찰을 만큼 강건해 질때까지 충분한 은혜를 경허시십시오. 성령의 도움으로 한 걸음 두 걸음씩 복종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은 당신에게 약속하신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에레미야 6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에 대해 지적하시는데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을 위해 약속하신 안식을 찾기 위해 서서, 보고, 구하며, 행하십시오!
"아빠 아버지, 나는 옛 길, 선한 길, 당신의 길을 행하기 원합니다. 나는 그곳이 영혼의 안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임을 압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그 참을 수 없는 짐을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예수님처럼,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의 길을 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찬송은 믿음의 꽃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제가 고2 여름 수련회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주님을 영접했을 때부터 드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다는 성도들의 감격 없는 생활, 기쁨이 없는 표정, 너무 형식적인 예배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 제가 경험한 대부분의 교회들은 장례식을 하는 것 같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는 물론이고, 찬송조차 장송곡을 부르듯 하는 모습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이렇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저의 찬양사역이 출발 되었습니다.
저는 찬송을 “믿음의 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꽃이 피어야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또한 찬송은 비밀입니다. 발견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결단코 온전히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다는 분들조차 찬송을 제대로 몰라서 온힘과 열정과 영으로 드리는 찬송을 부르지 못합니다. 또한 찬송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찬송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정말 놀라운 비밀입니다. 이런 소중한 찬송에 대해서 함께 나누며, 알아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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