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230번째 이야기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예수, 구원의 이름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12)"
예수를 믿는 신앙공동체는 '첫 이적(3장)'과 함께 '첫 위기'를 맞습니다. 당국에 체포된 사도들은 갖은 위협에도 두려움 없이 예수 이름의 권세를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참 성전, 참 나라, 참 이스라엘의 머릿돌이 되게 하셧습니다. 사도들의 고난이 패배가 아니고 승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예수의 이름 외에 구원과 진리, 생명의 길은 없습니다. 다른 길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무지요, 착각이요, 오만입니다. 교묘한 다원주의의 허상을 버리십시오.
성전 당국자들은 사도들이 성전에서 허락도 안 받고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에 격노합니다. 이는 성전의 권위와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들의 교리를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를 사형시킨 자들의 불법서잉 폭로되는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는 가장 큰 소망을 주는 메시지요, 악인들에게는 가장 절망적인 메시지입니다.
당국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지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가둘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입은 막을 수 있었으나 복음의 역사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박해가 심할수록 복음은 도리어 더욱 능력을 바루히아여 믿는 사람의 수를 더했습니다. 지금도 부활(2절)을 믿고 전하는 우리를 세상은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의 영향력이 우리를 통해 나나타도록 기도합시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심문한(눅 22:66) 자들에게 심문을 받고 있는 것은 그들도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위험에 처한 에수를 버리고 도망갔던 제자들이었고, 한때 여종 앞에서도 예수를 부인하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수가 섰던 재판정에 서서 의연하게 예수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증인이 된 것은 황제 가이사가 아닌 예수가 구주와 주(12절)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영적인 곤경 속에서도 궁색한 변명이 아닌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아빠 아버지, 교묘한 다원주의의 허상이 난무한 이 세상 속에서 믿음의 순수성을 지켜나가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 복음의 영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하옵소서. 어떠한 곤경 속에서도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증인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았으니 그 이름의 권세를 믿고 누리고 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도서관에서 경외감을
도서관에 가서
하나님의 놀라운 지적 능력을
눈으로 확인해 보세요.
동물의 본능과 위장술에 관한
책들을 훌훌 넘겨 보세요.
인체의 복잡함을 설명하는
생물학 책을 읽어 보세요.
당신이 잘 모르는 나라의 책을 골라서
그 나라 사람들과 문화에 대해
공부해 보세요.
이런 책들로부터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추론해 낼 수 있는 것들,
논리, 전문적 지식, 관대함,
일상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
입증된 사랑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해 보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어머니의 사랑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아름답게 꾸며진 한 가정을 방문해서 그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과 헤어진 후 뭔가를 두고 왔다는 것을 알고 그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거기서 부유한 그 집 안주인이 부랑자처럼 보이는 한 초라한 청년 뒤에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부인의 친아들로 탕자와 같이 멀리 떠돌다 돌아왔습니다. 그런데도 그 어머니는 "이 아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에요. 내그 그렇게 기다렸던 내 사랑하는 아들이 돌와왔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열 명의 자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중 하나가 타락하면 그 한 자식을 나머지 다른 자식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뉴욕의 주의 한 목사가 어느 날 내게 성품이 악한 어느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잘못 물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겨속되는 아버지의 나쁜 영향을 받아 그 아들은 온갖 종류의 죄를 짓게 되었고 마침내 흉악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살인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동안 그 어머니는 홀로 법정에 앉아 있었습니다. 증인이 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때마다 아들보다는 어머니가 더 안타가워했습니다.
결국 그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게 되자 사람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였지만 그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사형집행을 연기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형집행 후 시신을 가족들이 인수하게 해달라는 마지막 간청도 거절되어 아들의 시신이 감옥 뜰에 묻히자 그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죽어서까지 살인자의 어머니로 알려지는 것조차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지방의 어느 젊은 여인에 관한 것인데, 그녀는 집을 떠나 글래스고우에 부랑자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백방으로 찾아다녔으나 허사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기 자진을 어느 집 담벼락에 걸어 놓았는데, 그 집은 버려진 여성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많은 살마들이 지나가면서 그 사진을 흘깃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그 사진 옆에서 서성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어릴 때 자기를 내려다보던 어머니의 친근한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자시느이 죄 많은 딸을 잊거나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 사진이 결코 그런 곳에 걸려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그 입술이 열려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얘야, 집으로 돌아오너라. 엄마는 너를 용서한단다. 그리고 여전히 너를 사랑한단다." 순간 그 여인은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방탕한 딸이었지만 어머니의 그 사랑스런 얼굴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친 딸은 자신이 버리고 떠났던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찬양~♬날마다 주님을 찬양해요!
*악보를 클릭하시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1232번째 이야기 (0) | 2018.01.14 |
---|---|
예림의집 1231번째 이야기 (0) | 2018.01.13 |
예림의집 1229번째 이야기 (0) | 2018.01.11 |
예림의집 1228번째 이야기 (0) | 2018.01.10 |
예림의집 1227번째 이야기 (0) | 2018.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