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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23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1. 14. 07:03

예림의집 1232번째 이야기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헌신을 가장한 위선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사도행전 4:32-5:1)"


사도행전 5:1-8:3은 초대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이야기합니다. 안으로는 부정행위(5:1-11)와 행정 문제(6:1-7)가, 밖으로는 핍박으로 인한 중악감이었습니다.

아나니아 부부가 공모하여 밭을 판 값의 일부를 숨기고 전부를 다 비친 것처럼 속인 것은 사도들만이 아닌 성령을 기만한 범죄였습니다. 새 시대를 여은 교회의 시작에서, 그들의 거짓과 부정은 교회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성결'을 위협하는 일이기에 엄중한 심판이 뒤따랐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입성 직후 아간의 범죄를 처벌하여 이스라엘 진영을 정결하게 하신 것처럼(수 7장), 초대교회 '첫 범죄'를 단호하게 정죄하여 경계를 삼고 공동체의 순결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성과'보다 '성결'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모든 재물을 공동으로 소유했다는 것은 공동 소유권을 이해 사유재산권을 포기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자기 소유를 곤궁한 형제자매를 위해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소유권을 주께 양도하고 복음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아낌없이 사용했습니다. 이타적인 복음과 이기적인 마음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돈이 군림하는 세상에서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는 나의 삶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바나바는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왔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소유를 속이다가 비극을 맞습니다(10절). 바나바가 진정한 '권위자(권면과 위로의 사람)이었다면, 그들은 성령마저 속이려던 가증한 '위선자"였습니다. 주 앞에서 거짓은 결코 은폐될 수 없습니다. 내 안의 탐심도, 신앙의 진위도 숨길 수 없습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그 마음에 사탄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이려 했습니다. 거짓을 말하고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죄는 너무 적은 두려움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에겐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지만 삽비라는 끝내 거짓을 버리지 못한 채 심판을 받습니다. 주께서 말씀과 사건을 통해 내 죄를 폭로하실 때 더는 숨기지 말고 실토하십시오. 그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아빠 아버지, 항상 아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나의 영혼과 마음을 정경케 하옵소서. 예수를 나의 구주로, 주인으로 모십니다. 주님 앞에서 나는 벌거벗었음을 알고 정직하게 하옵소서. 거짓과 탐욕의 가면을 벗고 주 앞에서 거룩하고 진실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번에 한 걸음씩


한밤중에 길을 갈 때는 손전등을 켜세요.

불빛을 발걸음 바로 앞에 고정시켜서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만

볼 수 있게 하세요.

당신이 안고 있는 큰 딜레마...

이사, 직장, 결혼 문제를 

하나님께 해결해 달라고 때쓰지 말고,

그 다음에 당신이 가야 할

작은 걸음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세요.

인터넷으로 주택 정보를 알아볼까요?

친구와 직장 문제를 의논해 볼까요?

장래의 목표와 꿈에 대해

약혼자와 얘기해 볼까요?

믿으세요.

하나님은 한 번에 한 걸음씩

당신의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잘 대변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나와 함께 시간여행을 하여 갈보리로 가서 거기에 달려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봅시다. 거기서 절규하시는 그분의 외침을 듣고도 그 분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눅 23:2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미쳐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의 어느 곳에도 우리가 주님을 먼저 사랑하자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할 생각을 미처 하기도 전에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당신의 사랑을 미처 알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그들을 사랑하듯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기 훨씬 이전에 우리는 그분의 생각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탕자로 하여금 다시 집에 돌아오게 했습니까? 그것은 아버지가 그를 사랑한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그가 자신을 버림받은 자이며, 아버지는 자신을 더 이상 돌보지 않으리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가 과연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일어나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아버지가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아담의 죄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잘 드러내주었습니다. 아담이 넘어졌을 때 하나님은 긍휼로 그에게 다가오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당신도 잃어버린 자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찬양~♬|날마다 주님을 찬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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