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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228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1. 10. 08:28

예림의집 1228번째 이야기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본문의 치유 사건은 사도들이 행한 기사와 표적(2:43)의 살아있는 실례이고, 복음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새롭게 하는 증거임을 보여줍니다. 나면서 걷지 못한 자의 치유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진 '첫 번째' 치유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은금이나 유대교의 성전이 무능하여 할 수 없는 그 일을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이름이 동정의 대상이던 그를 동경의 대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세상의 비극은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그 이름의 권세를 믿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비극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 기도 시간이 되어 성전을 향합니다. 본문의 치유 사건은 사도들이 기도하러 가던 도중에 일어났습니다. 누가는 치유의 역사가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합니다(눅 5:15, 16). 기도의 결과가 능력 있는 표적과 기사입니다. 능력 있는 삶을 원한다면 규칙적으로 꾸준하게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능력입니다.

성전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결에 큰 관심이 있었기에, 성전 미문 곁에서 구걸하는 이 부정한 사람은 늘 관심 밖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를 주목합니다. 단지 자선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대상으로, 이용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세(6절)가 나타나기 전에, 사도들의 긍휼 어린 '시선'이 있었습니다. 주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작은 시선이 큰 기적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시선과 발걸음이 머무는 곳은 어디(누구)입니까?

구걸하는 자가 찬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돈 한 푼을 애처롭게 동냥하던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한 사람의 신체와 영혼 모두를 구원한 것입니다.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한다(사 35:6)"는 예언이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이냐고 놀라 묻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경이로운 역사에 합당한 반응은 경계가 아니라 경외이고, 경배입니다.


"사랑의 아빠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을 믿고 의지합니다. 규칙적이고 꾸준한 기도 생활로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내 작은 시선이 기적의 시작이 되게 하시고, 내가 받은 은혜와 동일한 그 귀한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게 하소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모든 염려를 다 아뢰세요


우리는 누구나 초대받지 않은

염려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습니다.

다들 기도는 빼먹어도

몸무게, 주름살, 직장, 가족에 대한

걱정은 절대 잊는 법이 없습니다.

이 습관적인 본성을 이용해서

당신의 기도 생활을 바꾸어 보세요.

염려를 기도를 생각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해 보세요.

마음에 염려거리가 떠오르는 순간

기도를 하는 겁니다.

당심의 염려를 모두 

하나님께 맡기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사랑


나는 요한복음 14장의 말슴을 가장 많이 읽습니다. 내게 그 말씀보다 더 감미로운 말씀은 없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마음을 제자들에게 ?아 부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 내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타나내리라(요 14:20, 2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게서 당신과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들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게에 가서, 우리의 거처가 그와 함께 있게 하리라(요 14:23)."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그 아들이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거하기를 원하신다는 이 놀라운 진리를 우리가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박에서 밤새 기다리시지 않고 우리 마음에 오셔서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보다 더 놀라운 말슴이 요한복음 17장 23절에 나옵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오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입술로부터 나온 가장 놀라운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은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아니하셨으며, 완전한 순종의 길에서 털끝만큼도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와 매우 다른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반역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사랑해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놀랍고도 명확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복음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사람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와 죄인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죄가 인간의 생명을 죽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찬양~♬|날마다 주님을 찬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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