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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23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1. 13. 09:04

예림의집 1231번째 이야기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시련 속에서 자라는 교회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행전 4:13-31)"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거침없이 예수의 이름을 증언합니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지만, 종교지도자들조차 반박할 수 없을 만큼 구약을 인용하며 논리정연하게 증언했습니다. 예수와 함께한 세월의 열매이며, 기도에 착념하면서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구속의 관점'에서 구약성경을 다시 깊게 상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묵상을 총해 주님과 교제한 날들도 나를 담대한 증인이 되게 하고 있습니까?

당국자들은 걷지 못하던 이가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은 증거가 명백한데도, 입막음하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진실의 확인도, 믿음도 아닙니다. 대중의 시선이고, 여론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보다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려는, 허울뿐인 종교의 전형적인 가식입니다. 복음의 능력 앞에서 실체가 드러나고 기득권을 잃을까 불안해하는 종교권력자들의 철저한 자기기마노가 진실 은폐 노력이 애처롭지 않습니까?

사도들은 권력자들의 이협에도 그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도리어 누구의 말을 듣는 것이 올으냐고 반문하기가지 합니다. 세상 권세가 두려워 '진리'를 버리고 '실리'를 택하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습니까? 복음의 진리르 ㄹ따라 사는 데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들이 석방되어 동료들에게 그간에 겪은 일을 알립니다. 그리고 복음전도의 위기 상황을 알게 된 공동체와 한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 고난이 복음전도에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에, 그 위협이 사라지기를 구하기보다 시련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물러서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안위보다 복음전파에 최우선의 관심을 두는 성숙한 신앙이요,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합심기도에 강력한 임재와 성령 충만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어떤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증인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이들에게 세상에 맞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믿음과 용기와 담대함을 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빠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나의 삶의 지표로 삼게 하시고, 그 말씀이 나의 삶에 녹아나 복음의 확산에 도움이 되게 하옵소서. 복음의 진리를 따라 담대히 살게 하시고, 나의 안위보다 복음전파에 최우선을 두게 하옵소서. 사명을 주셨으니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담대함을 주옵소서. 성공이 아니라 사명을 위해 부름 받았음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긍정적인 하루를...


오늘 하루도 동행하시며

긍정적인 하루를 보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농담으로라도 부정적인 말은

입에 담지 마세요.

나아가 긍정적인 말을 하고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말을 해보세요.

"잘 했습니다.",

"커피향이 아주 좋습니다.",

"색상이 잘 어울리시네요.",

"가게 분위기가 정말 쾌적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하나님께도

긍정적인 말만 하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어머니의 사랑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


그러나 이 세상 어느 어머니의 사랑도 하나님의 높고 깊으신 사랑에 비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주사 이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와 당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 깊이 들어가면 전지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어디에나 계시는 자신의 신성을 포기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일에 한계가 있고,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 자체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자기 희생인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사랑표현이셨습니다. 자신을 내어 주신 사랑. 성경의 표현되로라면 사랑하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어 인간의 모든 고통을 체험하시고,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 말입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 아버지보다는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곤 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은 엄한 심판관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 오셔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 주신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진리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니,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셨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인간이 알아듣는 방편으로는 쓰여진 성경의 깊은 진리를 깨달은 순간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한나시라는 "삼위일체"의 진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아들을 주사 세상을 위해 죽임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주제로 감히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설교를 해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커서 내가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을 듯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단지 이용할 뿐이었습니다. 그 누가 이 말씀의 깊이를 다 헤아려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는 결코 그 사랑을 측량할 수도 없고, 그 깊이을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비록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그것은 바울이 깨달을 수 있는 번위를 넘어선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을 뛰어넘는(엡 3:18)" 것입니다.


오늘의 찬양~♬|날마다 주님을 찬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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