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법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법은 기독교 세계관을 소개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우리 입장에 서 보도록 하고 또한 타 종교들의 세계관에 들어가서 모순과 문제점들을 들추어내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뒷장에서 다루도록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성경이 절대적 진리라고 하는 것은 결코 맹신적이고 독단적인 주장이 아니다. 모두들 자기의 세계관이 진리라고 확신하는 상황에서는 기독교 세계관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 기독교 세계관의 진리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타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이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모든 것을 바르게 해석 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라는 사실을 양보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양보는 다른 세계관에게 양보하는 것이고 자율적 인간의 판단에 양보하는 것이지 진리에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양보해서는 아니 된다. 절대적이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영역에서 벗어난 사실(fact)은 있을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사실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해석된 사실들일 수밖에 없다. 모든 사실들을 바르게 아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실들을 아는 것처럼 아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처럼 다 알 수는 없고 하나님처럼 완전하게 알 수는 없지만 주어진 사실들을 바르게 알 수 있다. 그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처럼 생각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에서의 경전이 아니다. 또한 설교를 위한 참고서로만 볼 수도 없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들을 바르게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성경은 구체적인 물리 공식이나 화학 원리나 경제 원리 등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그런 목적을 위해 주어진 책이 아니다. 앞서 언급 했듯이 성경은 오히려 인간의 모든 지식과 경험들을 의미 있게 하는 보편적 원리를 제공한다. 성경은 사과나무의 열매 맺는 과정을 설명하지 않지만 사과나무가 창조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즉 사과나무 자체가 이미 해석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과나무는 우연(chance) 위에 놓여 아무나 그 나무의 존재의 시작을 정하고 처음으로 그 나무의 의미나 가치나 해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그 동안 아무도 해석을 달지 않아 누구든 해석을 시도하는 사람이 그 나무의 창조자가 되고 최초의 해석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면 자기가 스스로 나서 창조주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이 그 나무의 궁극적 창조자나 해석자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현대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화론의 주장 (0) | 2018.01.08 |
---|---|
어떤 불신자들은 (0) | 2018.01.02 |
12/28(목) - 교회 홈페이지 기획, 제작, 운영 교육 (0) | 2017.12.18 |
궁극적 진리와 권위로서의 성경 (0) | 2017.12.07 |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 (0) | 2017.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