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현대신학

진화론의 주장

예림의집 2018. 1. 8. 14:18

진화론의 주장


진화론은 최초 입자들이 우연히 생겼다고 주장한다. 그 입자들이 진화가 되어 무생물도 되고 미생물도 되고 생물도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는 어떤 일률성이 있었어야 한다. 일률성이 없으면 물리적 화학적 반응이나 과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률성을 입자들이 혹은 무생물들이 혹은 미생물들이 혹은 생물들이 혹은 인간들이 만들어 가면서 진화가 되었겠는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먼저 일률성이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일률성은 어디서 와서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말인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률성을 원래부터 있는 것으로 믿고 싶어 한다. 사실‘원래부터’라는 개념은 오히려 우연에 속한 개념 이다. 그러나 우연은 일률성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만약 주사위 두 개를 100 번 던져서 두 개 주사위 합이 매 번 정규적으로 12가 나온다면 이것을 우연이라 하거나 원래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끓인 보리차는 유리컵에 100번 따라도 100번 같은 결과이다. 이러한 일률성은 우연히 발생될 수가 없다. 일률성은 너무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원래부터 있는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률성은 절대성을 요구하는 보편적 원리이다. 이것은 절대적 위격(person)이신 창조주로 인하여 부여된 것이다. 일률성은 주전자, 보리, 수증기, 유리컵, 물, 나의 행동, 낭의 의지, 나의 경험, 나의 이성 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는 사물, 도구, 실험, 과정, 인간의 경험, 인간의 사고 등의 것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다. 또한 진리이신 하나님도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 가능하게 되고 작동 되었다면 이미 하나님이 존재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성을 바로 그의 계시인 성경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후13:8에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말씀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진리를 위하는 것뿐이다. 진리를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다원주의적, 상대주의적 발상으로 “A에게는 진리이지만 B에게는 진리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곤 한다. 사실 이 문장에서 정의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A와 B에게도 진리이어야 한다. 즉 진리란 ‘~에게’라는 단서가 붙지 않는다. 진리는 누구와 상관없이 진리이어야 한다. A에게는 진리라는 식으로 A가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고 B에게는 진리가 아니라는 식으로 B가 진리의 반증적 기준이 될 수 없다. A 혹은 B가 진리의 기준 혹은 준거점(reference-point)이 되었다면 이미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A나 B의 개입 이전에 이미 존재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진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서 가타부타 논할 수 있는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