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의로워지고자 하는 필요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교수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교수가 보기에 미숙하고 무지한 학생들이 교수 자신의 신념과 헌신에 도전했던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수에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지적했습니다. 어쩌면 학생들이 교수도 내심 의심하고 있던 바를 건드렸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학생들은 교수나 학장과 같은 권위자에게 위협적으로 호소했습니다. 권위자에게는 이것이 자신의 사회적 위신을 위협하는 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문제 삼은 것은 교수의 위신이 아니라 교육 과정 자체였습니다. 만약 교수가 학생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더 나은 교수법을 계발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교수가 볼 때 학생들은 자신의 직책을 위협하는 존재였지만, 다르게 보면 교수로서 좀 더 나은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대화의 위기는 대화 참여자들의 갈등에서 비롯되고, 서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좀 더 복잡한 양상으로 변해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창조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변화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주제를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때는, 양쪽에서 주장하는 '필요'를 모두 감안해야 합니다. 여기서 '필요'란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필요, 좀 더 신학적으로 말하면 스스로 의로워지고자(자기를 정당화하고자)하는 필요를 말합니다. 의로움의 욕구는 너무 강해서 이를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것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욕구를 충족하려다가 사람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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