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16). 이 말은 하나님은 단지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뜻도 아니요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뜻도 아니다. 사랑의 궁극적 기준과 근거와 정수(essence)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사랑이 있다면 하나님도 그 사랑을 배워야 하고 그 사랑을 따라야 하고 그 사랑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 아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피조 세계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지향하고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랑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불신자도 사랑을 좋아하고 또한 사랑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 궁극적 사랑이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사랑만 모방하는 것은 솔직하지 않은 것이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왜 사랑이 좋은지, 왜 사랑을 추구해야 하는지, 왜 사랑을 추구하게 되는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선(good) 이시다 부자 청년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여쭈었을 때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분이시나라(마 19: 17)" 말씀하신다. 여기 “선한”이란 헬라어 형용사는 ‘선’이라는 명사로도 쓰인다. 그러면 “어찌하여 선을 내게 묻느냐 오직 한분만이 선이시다”로 번역할 수 있다. 마태와는 달리 마가와 누가는 “선한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물음에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는 답으로 기록하고 있다. 부자 청년은 자기 나름대로 ‘선’에 대한 지식과 기준이 있었다. 스스로‘선’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청년이 갖고 있는 ‘선’을 먼저 거부하신다. 예수님은 심지어 자신이 ‘선’이 아니라 오직 한분 하나님만 ‘선’이시라고 말씀한다. 자신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니라 선의 기준과 정수(essence)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라는 말씀을 히는 것이다. 간접적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선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이 부자 청년처럼 나름대로의 ‘선’에 대한 개념과 기준과 내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선’에 하나님도 부합되셔야 하는 것처럼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은 일종의 모조품에 불과하다. 하나님 자신이 궁극적 선(good) 이시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이 부합하셔야 하는 선이 따로 있다면 그 선이 하나님보다 더 궁극적이며 진짜 신(神)이어야 한다. 물론 이 세상에 인간들이 판단할 수 있는 선의 모습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선이다. 그러 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선(good) 되심을 거부할 경우에는 그러한 선은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선의 진정한 의미와 내용도 모르고 선을 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단지 선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일종의 모방을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공의(justice) 혹은 의(righteousness)이시다. 욥은 특별한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많은 고난을 당했다. 세 명의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욥은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고난을 당한다고 변론했다. 친구들은 어찌 전능하신 분이 공의를 굽게 하겠느냐며 욥을 핀잔했다. 이러한 논쟁 후에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 :4)"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전능성(38:18, 31; 39:9; 40:9), 전지성(38:5, 19, 33, 37), 합리성(38:36), 편재성(38:16; 41:34), 선하심(38:41, 영원성(38:4) 등에 관한 여러 질문들을 하신다. 하나님은 욥에게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40:2)",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40: 8)" 꾸짖으신다. 욥 개인의 의로 하나님의 판단을 부인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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