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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이슬람을 개종해야 하는가?

예림의집 2017. 11. 17. 11:49

기독교는 이슬람을 개종해야 하는가?


이슬람선교에 대한 관심 

뉴욕시 퀸즈 자치구의 한 비좁은 교실. 미국선교센터(US Center for World Mission)에서 개설하고 있는 선교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 퍼스팩티브스(Perspectives) 훈련(선교의 개관을 배우는 훈련 과정)에서 한 여인이 브르카(이슬람여인들이 머리에서 무릎아래까지 착용하여 얼굴을 가리는 천)를 착용한 채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모슬렘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슬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모든 모슬렘 사람들의 마음에 폭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911사태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잃게 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도 저희 아이들을 위해 평화를 원합니다." 그녀는 이슬람의 믿음의 다섯 기둥을 설명하면서 거기에는 전쟁은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녀는 계속 말하기를 "우리는 기독교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의아해 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마리아 그리고 하나님 아들이 있다구요?"

911사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과 그 교도들인 모슬렘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우리는 거의 매일 모슬렘에 관련된 기사를 읽게 된다. 최근 타임지 미국 판에서는 커버스토리 전체를 이슬람과 기독교 선교와의 관계를 다룬 기사를 실었다. Should Christian convert Muslims?라는 제목으로 과연 기독교가 이슬람을 개종해야하는가라는 주제로 이슬람선교에 대한 심층 기사를 실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 영향력이 극대화되면서 군인 뒤를 따라 많은 선교사들이 이라크에 들어가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사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선교를 긍정적으로만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라크와 이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파괴되어야 할 사탄의 집단이라고 말하는 나라도 미국이고 또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대거 몰려가고 있는 사람들도 미국의 선교사들이라는 것이다. 


최근 이슬람 선교의 현실 

통계를 보면 1982년부터 2001년까지의 모슬렘 선교는 파송된 선교사의 수가 15,000명에서 27,000명으로 증가했다. 그 중 두 명 중 한명은 미국인이고 세 명 중 한명은 복음주의자들이다. 동시에 이슬람 정권국가들과 거세지는 서구 군사주의에 대항하는 세력들에 의해 선교사역은 커다란 장벽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2년 사이에 2명의 미국선교사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살해당했고 4명의 선교사가 예멘과 레바논에 억류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도 최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진주한 미국군인의 뒤를 따라서 많은 복음주의권 선교사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선교사들은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더불어 수백만 달러의 구호물자를 제공하는 등 많은 구제사역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자유주의 진영의 기독교 구호사역자들은 복음주의 진영의 공격적인 선교전략으로 인해서 모든 구호사역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2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정권은 카블 지역의 모든 구호사역을 중지시켰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이슬람 개종이라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의 정체와 신앙을 속였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인간으로서 모슬렘들은 사랑하지만 종교로서 이슬람은 저주하며 구호사역의 숨은 동기가 그들을 이슬람에서 개종시키는 것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접근할 때 이슬람과 충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라와 모스크가 밀접하게 엮여 있는 사회, 즉 한 나라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과 이슬람을 믿는 모슬렘이 된다는 것이 동일시되는 사회 속에서는 이슬람을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죄악이며 여기에서부터 개종하는 것은 사회 공동체로부터 분리를 말하는 것이므로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사들이 전쟁 등으로 인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모슬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돕는 것은 용납되지만 그 모슬렘들을 이슬람이란 종교로부터 분리시키거나 개종 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그들의 분노와 폭력을 초대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패권주의 정치 패권주의 선교 

이러한 사회, 정치적 역학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복음주의권의 무대포식 모슬렘 선교는 좋은 열매를 맺기 보다는 더 많은 저항과 폭력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슬람 선교가 비록 그들에게 물질적인 도움 등을 통해 다가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복음주의권 혹은 보수주의권 선교사들의 이슬람에 대한 문화와 상황에 대한 무지로 인한 패권주의적 선교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미 두 세기 전, 즉 세계선교의 위대한 세기가 열리던 18세기말과 19세기 초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갔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단숨에 개종 시겠다는 열정으로 가지고 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점차로 온화한 방식을 취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반대하는 직접적인 개종 보다는 교육 시설을 짓는다든지 구호기구를 만들어 인도주의적 도움을 주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단체들은 아직도 그 지역에서 주요한 선교단체로 존재하고 있고 나름대로 열매를 경험하며 현지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현재 복음주의권의 선교사역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등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슬렘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돈과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통해 전도의 정당성을 가지고 접근법과 동시에 라디오나 위성 TV 혹은 전도지 살포 들을 전체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배포하는 것을 통해 몇몇의 복음의 씨가 뿌려지도록 하는 방법 등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모슬렘국가에서는 "종교비자"를 발급하지 않으므로 많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세속적인 직업을 가지고 눈에 두드러지지 않게 활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복음주의권의 선교방식이 가지는 종교적 거만함과 정치적 무지함이 불확실한 위험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도적이던 아니던 조심성 없는 선교사들이 모슬렘지역에 많이 들어오면 올수록 그들의 분노를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슬렘 선교를 위한 적절한 훈련과 준비 없이 무조건 열정만 가지고 오거나 단기 선교팀들이 들어와서 모슬렘과 대결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빠져나가는 것 등이 비록 그들이 좋은 의도와 열매를 맺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인해서 그들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희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주요한 선교지는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공산권이었다. 그러나 1974년 로잔 대회에서 라프 원터(Ralph Winter) 박사가 미전도종족선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후 1989년 마닐라 로잔 대회 이후 루이스 부시(Luis Bush)는 미 복음화된 종족의 97%가 위도 10도와 40도 사이 지역에 위치한 나라들을 지칭하는 선교적 용어인 10/40창 지역에 살고 있으며, 대부분은 가난하고 이슬람과 힌두교와 불교의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이 지역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하여 영적전투(비록 그는 타임지 기자에게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무기란 군사적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라고 강조했지만)를 하여 10/40창 지역의 중심에서 이슬람들이 열정적으로 전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의 복음을 가지고 모슬렘의 중심부를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표현들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그 의미가 무엇인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런 글들을 읽는 일반인들은 이런 기독교인들의 호전적인(?) 접근 방식이 이슬람이 보여주는 전투적인 모습과 별 다르지 않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인터뷰가 들어 있는 타임지가 발행되어 일반인들에게 구독되는 동안 인터넷으로 실시한 "기독교 선교사들이 모슬렘들을 개종시키려고 하는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느끼십니까?"라는 설문에서는 51.5%가 잘못이다, 44.6%가 이해가 된다, 3.9%가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기독교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 

여기에 기독교선교의 가장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서 심각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선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사회의 일반적인 문화는 다원주의다. 다원주의의 규범화이다. 다원주의가 절대적 가치로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세상을 향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유일성을 외치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기독교의 절대적 가치와 진리 됨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이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다원주의 문화 가운데 있는 세상은 기독교를 배타적인 종교로 받아드리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의 배타성이나 모슬렘의 배타주의가 결국 동일한 것이라고 이해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기독교가 모슬렘을 개종시키기 위한 노력은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 선교사들이 모슬렘 지역에 들어가서 그들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이나 모슬렘 과격분자들이 폭력을 동원해서 모슬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나 별 다름 없는 것으로 인식 될 수밖에 없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슬렘에 대해서 표현 할 때 극단적인 적대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과 미국 부시정부가 이라크를 비롯한 이슬람국가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것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빌리 그레함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함은 이슬람에 대해서 "매우 사탄적이며 사악한 종교:라고 규정했고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이며 사탄적 집단으로 성전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모습들은 기독교인들의 이슬람선교와 미국정부의 이슬람국가 공격을 동일선상에서 이해하게 하고 식민주의의 그림자와 과거 십자군원정의 역사와 유사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주게 된다. 그 결과 실제 이슬람 선교를 위한 다양한 노력과 접근에 손상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접근을 하는 대부부분의 사람들이 복음주의 혹은 보수주의권 교회 선교라는 것이다. 

실제 현재 세계선교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복음주의 혹은 보수주의교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접근 방식의 어설픔으로 인해 실제 그 노력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모슬렘 선교에 있어서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어려움은 오늘날 미국의 패권주의적 이미지와 기독교선교의 이미지가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고, 세계선교를 주도하고 있는 복음주의교회들의 문제는 이러한 이미지로 우리가 세상에 비취어지고 있다는 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 때문에 매우 패권적이고 공격적인 방법과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해결책 

두 가지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복음주의교회 선교 방식의 문제이다.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즉 선교의 상황화 문제이다. 선교는 이미 그 복음이 존재하고 있던 한 문화 안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이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문화집단에게로 전달되는 것이므로 문화적 장벽을 넘어 갈 수밖에 없다. 상황화란 복음전파의 대상자들이 속한 공동체가 인정할 수 있는 문화적, 사회적 형식을 빌려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상황화 진행의 연속성 끝에는 혼합주의라는 복병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상황화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모슬렘선교의 경우 존 트라비스(John Travis)에 의해 제기된 C1에서 C6까지의 상황화 단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사람에 따라 어디까지는 복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어디서부터는 혼합주의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이슬람은 그 어떤 종교보다 신앙과 삶이 밀접한 관계를 가진 종교다. 이슬람을 믿는 것이 곧 그들의 문화이며 정치이다. 따라서 이슬람이 개종한다는 말은 그들의 문화와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슬람을 떠나 개종하는 당사자들에게는 공동체로부터 오는 비난과 격리를 감수해야 하고 이런 일들을 하게 만드는 기독교선교사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과제를 극복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창조적인 선교전략의 개발이 지속적으로 등장해야 한다. 

둘째는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선교 대상자의 이슬람뿐만 아니라 이것을 지켜보는 일반인들의 눈에 마저 기독교의 이슬람선교사 서구의 군사적 패권주의의 이미지와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이슬람선교를 누가 감당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최근 한국교회의 세계선교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003년 현재 11,000명을 넘어선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국가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서구의 패권주의 이미지를 가지지 않고 이슬람선교에 접근 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일 것이다. 최근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에서는 한국선교사를 제외한 모든 서구선교사를 추방했다. 물론 세계복음화는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다함께 함을 모아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선교상황은 한국선교사들의 역할이 더욱 확산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 중에서 해외선교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교회의 수는 전체 교회의 10%정도다. 이젠 한국교회가 이슬람권 선교를 비롯해서 세계복음화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