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 변화의 핵심은 무엇인가?
장차 핸드폰이 지갑을 대치할 것이며, 신용카드 회사들은 핸드폰을 무료로 나누어 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의사소통의 통로역할을 할 것이며, 디지털 화폐, 은행구좌, 신용카드번호 등의 ID도 다 통합 될 것이다. 유사하게 노트북 컴퓨터도 가방 안으로 들어가 있게 될 것이다. ((빌 조이, 선 마이크로소프트 상임과학자).
AIDS 치료제, 말라리아 치료제등이 인간의 탁월성과 창의력으로 인해 큰 진보를 이룰 것이다. 이런 치료제들에 대한 손쉬운 접근은 미래에 그 동안 육군이나 해군이 해 내지 못했던 일들을 해낼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보는 방법을 바꿀 것이며, 사실상 세상 그 자체를 바꿀 것이다. (보노. 정치활동가)
무선통신, 웹, 센서 등이 통합될 것이다. 핀의 머리 만한 크기의 칩 안에 지구전체의 정보가 들어가게 되며 모든 물체의 위치에 대한 알게 될 것이다. GPS(위성위치장치)를 어떤 물건 안에 다 장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열쇠를 분실했을 경우 인터넷에 들어가 열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폴 스타포. 테크놀로지 분석가)
개인들이 스스로 구성하는 오락이 만들어 질 것이 기대된다. 사람들은 개인 인터넷 웹 사이트를 구성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제작자)
다음은 무엇인가?
얼마전 타임지는 “다음은 무엇인가?” (What’s Next? 2003년 9월 8일 판)라는 주제를 다뤘다. 앞으로 도래할 시대의 문화와 변화는 무엇인가를 총체적으로 다뤘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21세기 미래에 우리 앞에는 온갖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와 변화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1900년대의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발견이나 사건은 의류 뿐만 아니라 생활 용품에 혁명을 가져온 플라스틱의 발견과 지리적 이동의 전환점을 가져온 비행기의 발견이었고, 1910년대에는 포드 회사에서 차 한대를 만드는데 12시간이 걸리던 것을 93분으로 단축한 공장의 조립 라인의 시작으로 분업과 생산경쟁체제가 시작되었고 슈퍼마켓의 등장으로 고객들이 직접물건을 고르는 시대가 열렸다. 1920년대의 텔레비전의 발견은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과 라이프 스타일에 전격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페니실린의 발견은 인류를 박테리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1930년대 레이더의 개발은 항공기를 통제할 수 있게 했고 컴퓨터의 발견은 그 이후 시대의 모든 변화의 초석을 놓게 된다.
1940년대 핵폭탄의 제조는 인류는 전쟁으로부터 구해내기도 했고 또 반대로 세상을 전쟁으로 끌고 가기도 했으며 오늘날의 국제 정치의 변수의 근거가 됐고 트랜지스터의 발견은 라디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마이크로 칩으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됐다. 1950년대 피임약의 발견은 인구 조절 기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차 인간이 인간의 운명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됐고 반도체는 새 시대를 여는 도구가 됐다. 1960년대는 꿈의 빛인 레이저와 인간의 기능을 대치하는 로봇이 발명되다. 1970년대는 체외수정방식의 발전으로 이제까지 하나님 만 관여할 수 있었던 인간 생명 출발 과정에 까지 인간이 참여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고 이동식 전화기의 발명은 의사 소통하는 데 있어서 로칼리티(지역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0년대는 개인컴퓨터의 등장으로 문자 그대로 삶의 모든 것이 컴퓨터와 관련되게 되었고 유전지문 인식방식의 개발은 범죄자 체포에 혁신적인 역할과 인증 시대를 열었다. 1990년대의 월드 와이드 웹(인터넷)의 시작은 이제까지 인류가 시도해왔던 어떤 형태의 의사소통방식보다 혁명적인 것으로 인류의 사람의 방식 전체를 바꾸어 놓았고 클로닝(복제기술)의 시작은 생명의 개념에 큰 혼돈을 가져오고 있다.
과연 2000년대에는 어떤 새로운 발견과 변화가 올 것인가? 먼저 인간 유전자에 대한 지식의 증가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의 증가는 그 동안 불치병으로 인지되었던 부분에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 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많은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간 태아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 스스로가 인간을 통제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결국 신의 영역에 인간이 관여하는 것이 된다. 또한 먼지 알갱이 하나 보다 약간 큰 알갱이 크기의 무선 센서의 등장은 하늘에서 군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교통 상황과 기상 상태를 보고하는 도구에서부터 슈퍼마켓의 감시 카메라로 사용될 정도로 컴퓨터 기술은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인간은 간단한 절차를 거치고도 우주 여행에 나서게 될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궁극적으로 휘발유 대신 수소와 산소로 가동되는 엔진을 만들어 내 환경문제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생명공학의 발전은 생인공(bioartificial) 기관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마 생인공신장이 개발되었는데 이것은 생 세포와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부품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앞으로 생인공 심장, 간, 폐 등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도전
이러한 변화들의 추세를 살펴 보면 점차로 인간 본질에 대한 변화로 접근하고 있다. 지난 십년전 까지의 변화의 대부분은 인간 삶의 도구에 대한 기술적 변화 혹은 발견으로 인한 진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이러한 기술적인 발전의 결과 인간의 관심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것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유전공학의 발전, 복제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해 인간 본질에 대한 접근이 시도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의 출발은 처음에는 단순히 인간 치료의 한 단계로 시작되었으나 과학 기술의 발전이 접합되면서 좀 더 근원적인 부분, 즉 인간 생명의 본질 영역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계에서는 이런 빠른 생명공학의 발달로 다음 천년기에는 인간들이 인공폐, 인공콩팥, 인공간 등의 개발은 물론, 수정체를 기르는 자궁 외 인큐베이터,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인간 평균수명의 급격한 연장 등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따라서 인간의 유형과 개념의 충격적 변화도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분자생물학과 교수인 리 실버는 "리메이킹 에덴";이라는 저서에서 결국 유전공학의 발달로 “교배가 가능하지 않은 두가지 인종으로 나뉠 것”이라고 예상한다. 영국의 스티븐 호킹(56) 박사도 “유전적으로 변형된 진보한 새 인간들이 다음 세기에 탄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인간에게 원자폭탄 발명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과거 물리학, 화학 등이 인간 주변 환경 등을 변화시킨 것과는 달리 유전공학 등은 인간 자신의 생물학적 기초를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이렇게 단순히 생물학적으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서도 역시 규정된다. 하지만 이 개념도 컴퓨터 인공지능의 발달로 곧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과학자들은 컴퓨터의 용량이 18개월마다 두 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 등을 고려할 때, 인간의 뇌 구조와 기능을 닮은 인공지능이 이르면 30년 뒤쯤 개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뇌의 10년'`뇌의 세기'와 같은 연구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결국 지능을 가진 인조인간이 만들어진다면 `사고하는 존재'라는 개념으로 이들과 인간을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도 인간의 행동양태를 크게 바꿔 놓는다. 제3의 충격으로 유명한 앨빈 토플러는 “이런 변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면 인간변화의 `제4의 물결'이 올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즉 오늘날은 현실은 인간 탄생 이후 어쩌면 인간 정체성에 가장 큰 변화의 흐름 속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본질에 대한 변화의 측면의 대부분은 결국 인간 구조의 물리적 부분에 대한 변화, 즉 육체적인 요소에 대한 변화를 시도한 결과 온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단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 본질의 육체적 측면의 변화가 정신적 변화와 동반되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유전공학이나 복제기술 등의 변화는 단순한 문제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유전공학과 복제기술 등은 인간의 물리적인 부분의 향상을 위한 노력의 결과이고 이것은 과학적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이다. 문제는 인간 변화의 물리적 측면의 변화 속도에 비해서 정신적 혹은 영적인 변화와 발전의 답보 또는 퇴보는 인간 발전에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결과 인간은 분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조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인간은 그 본질의 변형 혹은 유용에 대한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전공학의 발전은 단순한 세포의 구조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그 세포의 내용을 변형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것은 결국 인간 본질의 변형이라는 필연적인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과학적 발전의 추구가 가지는 문제는 과학자들은 과학적 발전을 실용적 관점으로만 접근하지 도덕적 측면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험실에 있는 과학자들이 실험 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판단을 염두에 둔 실험을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러한 시도들이 인간의 성취욕과 맞물리면서 도덕적 판단은 그 영향력을 상실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늘날 절대적 가치의 상실은 이러한 도덕적 판단의 강력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설상 있다 하더라도 그 구속력은 점차로 그 힘을 잃게 된다.
교회의 역할
인간 사회의 물리적 발전에 대한 책임과 노력이 과학자들에게 있다면 정신적 영적 발전의 책임은 종교인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의 균형적인 발전과 상호 견제가 적절하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촉구 될 수 밖에 없다. 삶의 모든 측면에서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사회의 변화에 대한 도덕적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 중 최근 가장 시급한 영역은 앞에서 언급된 대로 바로 인간 생명에 관한 부분이다. 타임지에서도 소개된 대로 앞으로 수십 년간의 변화의 핵은 인간 본질에 대한 부분이다. 실제 과학 세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발전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진보되어 있는 상태이다. 반면에 기독교 생명윤리에 대한 발전을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생명 윤리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어 기독교 의료인들이 대안을 내 놓았다 하더라도 그들만의 힘으로는 실제적인 변화나 대응을 할 수 가 없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전 교회적인 대응이 동반되어야 한다. 교회가 실천적 대응을 해야 할 많은 사회적 도덕적 문제들이 산재해 있지만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의 창조 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므로 전 교회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어떤 도덕적 판단이 선언적 단계에서 머물러 있는 한 실제 인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자면 아무리 교회에서 낙태가 생명을 죽이는 일이므로 금지해야 한다고 선언적 가르침을 한다고 해도(물론 이런 선언적 가르침 조차 없는 것이 오늘의 교회 현실이지만), 실제 그것이 성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 기준에 의해서 도적적 판단의 결단을 내리는 수준이 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실제 한 조사에 의하면 ‘낙태가 죄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95%이상이 그렇다고 답변했지만 ‘당신의 가족 한 사람이 중 성 폭행으로 인해 임신 한 경우 낙태하겠는가’라는 질문에 83%가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한 것이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교회는 최소한 두가지 영역에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먼저 교회가 주장하는 도덕적 가치 기준이 인간 사회 안에 정당한 기준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다음에는 그 기준에 의해 사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 일인가를 그리스도인들이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즉 교회의 주장이 사회 안에서 설득력과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주장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분명해야 하며 그 메시지대로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속에서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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