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왕은
에드워드 왕은 영국의 왕좌를 거부하고 그가 사랑한 여인을 택했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조언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에드워드의 결정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정말 이 여성을 선택하기 위해 왕의 책무를 저버리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그의 대답이 바뀔 법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결정을 끝가지 고집했고, 결국 역사의 흐름은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 두 번째 목적은 어느 하나를 '긍정'하면 그 외의 나머지는 '부정'해야 하고, 무언가를 '긍정'했을 때는 그와 반대되는 것은 반드시 '부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줍니다. 실제로 이처럼 정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긍정'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부정'해야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이를테면, 돈을 절약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사고 싶은 물건이 아무리 많아도 거기에 돈을 쓰는 것을 '부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에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일상에서는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인 모습이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 신념을 '긍정'하지만, 실상은 사람을 착취하고 조종하는 독재주의를 '긍정'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교파든 교회에서 입교할 때는 나름대로 절차를 거칩니다. 보통 새 신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따를 것을 서약하게 합니다. 하지만 새 신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무엇을 긍정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무엇을 부정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교인으로서 순종할 것을 서약합니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새 신자 교육과 입교 과정은 신자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충분히 준비시키지 못합니다. 또 신자가 되는 과정에서 다른 종교나 세계관은 무조건적으로 배제한 채 맹목적으로 기독교 신앙만을 따르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놀랍게도 교인 명단에 이름이 적혀 있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진자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왜 믿는지도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긍정'해야 하는지, 무엇을 '부정'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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