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후원 사역†/복음 이야기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결과는 어떠하냐고요?

예림의집 2017. 8. 25. 14:56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결과는 어떠하냐고요?


학생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들이 지금 천국에 갔 습니까? 지옥에 갔습니까?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는 복음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 다. 여기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어떻게 해주었는가를 알아보 기로 하겠습니다.

“이런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 타내느니라”

(로마서2장15절)

하나님은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인간을 복주시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지옥에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인간이 지은 죄를 벌하셔야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 보내고 지옥 보내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공평하신 하나님만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특권입니다. 바울은 이런 우리들의 고민을 알기 쉽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양심이 기준이 되어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옥,혹은 천국 갔을까? 하는 문제를 알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은 성경 말씀이 심판의 기준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는 우리들을 알수 없고 다만 하나님만이 알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공평성입니다.

세상에는 무게의 공평성을 위해서 저울을 만들었습니다. 길이의 공평성을 위해서 "잣대"를 만들었습니다. 속담에도 "길고 짧은 것을 잣대로 재 보면 안다"라고 했습니다. 일제 카메라 중에서 캐논(Canon)이 있습니다. 캐논은 헬라어에서 온 말로서 Standard(영)라고 합니다. 시간의 정확성을 위해서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을 기준으로 60억 인구가 공평하게 사용합니다. 한국은 동경 135도를 표준시(Standard time)로 사용합니다.

 

성경 말씀이 신앙생활의 표준입니다. 누가 신앙 생활을 잘하는 것인지 사람은 잘 모릅니다. 성경 말씀의 잣대에 재어 보아야 정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의 무게를 달아보십니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라.행동을 달아보십니다.(삼상2:3) 욥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욥기31:6)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은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롬2:13)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행하는 자라야 의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심판의 기준은 될 수 있어도 결코 특권은 아닙니다. 율법은 온전히 행하는 자라야 의로워 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사람과 상대적인 평가를 통해서 의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내면 세계까지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은 성경입니다.  한편으로 세상 사람들도 희미하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①대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②하나님은 인간에게 양심을 주셨습니다.


양심이라는 말은 라틴어(conscientia)에서 온 말로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숨을 쉰다"라는 말입니다. 동물은 본능대로 행동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양심 따라서 행동을 합니다. 죄를 짓고나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에 이성에 호소하는 지식설교는 생명력이약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호소하는 영성설교에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으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양심의 기능은 우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벧전4:19). 이방인도 그 양심에 의해 율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롬 2:15).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않을 뿐더러(롬 1:32)그 양심은 더러워지고, 양심이 화인 맞아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로 되었습니다(딤전 4:2,딤 1:15,히 9:9). 또한 이런 양심은 다만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만 깨끗해지고 사람은 하나님께 쓰이는 자로 됩니다(히 9:14). 즉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사람은 그 이성을 바꾸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롬 12:2,벧전 4:19). 그리하여 사람은 그 깨끗한 양심,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하나님께 쓰이며(행 23:1,딤후 1:3) 세상의 정치적 권위에도 복종합니다(롬 13:5).

이러한 양심은 신앙과 결합되어 있습니다(딤전 1:19) 한편으로 양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옳은 길을 찾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양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 양심은 구속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법에 저촉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법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양심은 구속력이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도 있기는 합니다. 이 양심의 가책이 일종의 벌입니다. 양심을 어기면 심령에 자책이 오므로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눈 딱 감으면 그만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므로 혼자 괴로워하다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법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깨끗한 양심, 선한 양심, 착한 양심을 버리고 화인 맞은 양심을 갖고 있습니다. 양심이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양심이 마비되면 법보다도 효력이 없습니다. 또 양심이 자기 판단의 위력에 굴복하고 맙니다. 자기 생각에 옳은 것은 옳다하고 자기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판단합니다. 객관성을 상실하고 자기 주관에 끌려 다닙니다. 우리는 양심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구원얻는 길에 대하여 아는 일이 우선입니다.. 예수를 통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로마서2장16절을 보면 바울의 복음과 예수의 복음이 다르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번역을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내가 전한 기쁜 소식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모든 비밀을 심판하실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16절) 

양심을 통한 구원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지금은 예수의 말씀이 심판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도덕을 지키거나 양심대로 산다고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진리 되시는 예수를 믿고 말씀대로 사는 길만이 온전한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 안에서 있으면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 함을 얻습니다.

사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죽은후에 어디에 갈것인가 하는 질문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조상이나 위인들에게 관심을 갖는것 보다는 오늘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내지는 각 개인의 구원에 관한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오늘밤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당신의 영혼은 천국에 있을것입니까? 지옥에 있을 것입니까? 만약 당신의 영혼이 지옥에 간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성경이 없었던 과거에는 율법과 양심이 증거가 되어 구원의 기준을 삼았지만 오늘날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한바와 같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시고 구원받는 일에 전념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 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 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10장9절-10절)” 


이제 교회에 나오셔서 구원의 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들으시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