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갚는 일은 나에게 속해 있지 않다
화를 내면 일단 속이 후련해 지는 것 같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복수는 상대방의 되갚음을 불러오고 결국 악순환을 낳기 때문에, 복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것이 정의이기에 복수는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자기가 당한 만큼 정확하게 갚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복으로 정의를 이루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보아야 합니다. 복수는 오히려 모두에게 증오와 고통을 가증시킬 뿐입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와 함께,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피해야 할 신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실족할 그때에 내가 보복하리라(신 32:35)"는 구약 말씀을 인용하면서, "친히 원수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9)"고 권면했습니다. 궁극적으로 복수는 인간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며, 직접 보복하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대행하려는 태도와 같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은 결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일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가장 적절한 때에 마땅하게 벌하시리라 믿으며 보응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가 취할 윤리이자 믿음의 태도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에게 원수 갚을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행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또한 그가 쓴 시편에는 대적들에게 무고하게 고난받으며 고통 가운데서 간구하는 시들이 많습니다.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하소서(시 17: 9, 13)" 소위 저주시라 불리는 시편에서도 그는 원수 갚는 일을 철저히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저 하나님게 주의 백성을 조롱하고 넘어뜨리는 자들으 그냥 두지 마실 것을 간청할 뿐입니다(시 35:1-8: 58:6-9). 시인은 하나님께 통곡하고 간구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종국적인 처결을 믿습니다. 자신의 무고함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맺힌 분노를 풀고, 자신에게 복수할 권리가 없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의롭게 다스려 주실 것을 간청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무척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궁극적인 해결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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