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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롬 8:28)

예림의집 2017. 6. 17. 17:17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롬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시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인생의 제일된 목적이요, 가장 귀한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장 귀한 사람이고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전도를 잘하는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받고 전도를 잘하는지 항상 "주님 없이 살 수 없어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주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하루는 그 여대생이 목사에게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목사는 또 그 말이구나 생각하고 "주님 없이 살 수 없다는 얘긴가요?" 그러자 그 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그보다 더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나 없이 사실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이처럼 하나님도 나 없이 살 수 없고 나도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그런 사랑의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성령충만 받을 때 가능합니다. 성령 받은 증거가 고전12:3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처럼 성령 받은 자는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타의 영향을 배제한 상태에서 나 혼자 사는 세상에 던져 놓는다 해도 내 스스로 진정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다면 그는 구원 받은 자요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 한다 했는데 예수를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즉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6:17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셨고, 갈4:6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8절도 그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란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성령의 소명, 즉 성령께서 우리를 택하신 자녀로 부르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곧 성령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령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 충만하냐? 충만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은사와 성령은 약간 달리 해석해야 합니다. 성령 은사 없어도 천국 갈 수는 있지만 성령 받지 못하면 구원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도 믿지 않을 것이요, 하나님도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마음일까요?


1. 주의 전을 사모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요 2장을 보면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을 때 성전이 장사하는 집으로 바꿔졌을 때 채찍으로 짐승들을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소리치셨습니다.


그것을 본 제자들은 시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요2:17에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처럼 주님은 주의 전을 사모했습니다. 어느 정도? 그 일 때문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을 저질렀을 정도로 사모했습니다.


오늘날 예배당이 구약의 성전과는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드려진 집이이라는 점에서 다른 건물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약에는 동물제사만 안 드리지 구약처럼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는 곳이므로 성전에 준한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살면서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고 아끼는 사람 복 받지 못한 사람 보지 못했고, 반대로 교회를 대적하거나 아끼지 않고도 복 받은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를 해코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진정 성령 받은 사람이라면 교회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또 바라볼 때마다 눈물이 나고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면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


시119:103에 다윗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했습니다. 시119:127에도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성경 말씀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종일 성경을 보아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금보다 더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으면 성경이 제일 재미있고 성경을 해석하는 시간이 가장 귀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제일 즐겁습니다. 그래서 시 1편에 복 있는 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고, 시119:165에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했습니다.


3.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의 일군들도 사랑합니다.


시122:1-4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이 시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찬양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전을 사모하고 예배를 기뻐하고 하나님의 종들이 하는 일들이 존경스럽고 기쁩니다. 그동안 이 부분은 강조하지 못했는데 행20:20에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쳤다는 말씀처럼 이것이 성경적이고 여러분에게 복이 된다면 전해야 합니다.


마10:40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주의 종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선택해서 예수님 대신 세워주셨다는 점에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주의 일군을 가장 잘 돕는 것은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4. 주님을 사랑하면 아깝지 않습니다.


마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보고 예수님께서 보물이라고 했지 재물이라고 했느냐고 대항합니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재물 가지고 하신 말씀입니다.


마6:19-20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큰 문제가 소위 배금주의입니다. 돈을 너무 좋아하고 숭배합니다.

 

눅 19장의 어리석은 농부의 결정적인 잘못은 바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19-21절) 것이었습니다. 부자도 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에 더 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보다 돈이 앞서면 신앙 버립니다.


최소한 십일조 생활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냉정을 찾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도 하나님의 뜻대로 값지게 쓰이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 섬기는 일에 앞장 서고, 어디 가서도 대접만 받지 말고 대접도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5.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의 날을 기억합니다.


출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 전통은 신약에서 주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창조와 애굽에서의 구원을 기념하며 지켰습니다. 이처럼 신약에서는 부활과 재림을 기념하며 지키는 날입니다.


어떤 이들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면서 로마 사람들이 섬기던 태양신 축제일을 기독교의 주일로 바꾸었다고 주장하지만 콘대제는 결코 주일까지 변경시킨 박해자가 아니며 주일예배는 그 이전에 교회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안식 후 첫날 떡을 떼려하여 모였다고 했는데 첫날이 주일이고 떡을 뗀다는 것은 성찬을 말하며 주일예배를 암시합니다.


2세기 문서인 디다케에도 “주일은 특별한 날이므로 함께 모여 죄를 고백하고 떡을 떼며 감사를 드릴 것이다.” 했고, 요한의 제자였던 이그나시우스도 “이제는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이는 그 날에 우리들의 생명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바쁜 일에도 일손을 놓고 교회에 나오고, 주일도 모자라 모든 예배 그리고 시간을 정해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6.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일이 즐겁습니다.


롬12:11-13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은혜 받지 못하면 자기 일은 열심하면서 교회 일은 짐으로 생각합니다. 일한 사람 따로 있고 누리는 사람 따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모범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교회청소, 화장실청소면 어떻습니까? 주방봉사, 찬양대, 구역장, 차량, 교사, 전도, 기도사역 등 우리가 할 수 있다는데 감사하여야 합니다. 일하기 싫어 서로 떠넘기고 귀찮다고 없애자 하고 형식적으로 한둥만둥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마음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성령 받은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성령 충만하는데 힘쓰세요. 만사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반대로 하나님 멀리하면 마귀의 시험이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고 만사가 괴로움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형통함으로 주실 것이 더 많은데 그걸 모른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형통하려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세요. 하나님 섬기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까지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토록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 텐데 하나님께 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욱 은혜를 받으십시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성령의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형통이 여러분에게 더욱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