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런 감정 및 의로운 분노
분노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의 큰 줄기는 그것이 통제해야 할 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분노는 인간이 지닌 자연스런 감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퀴나스의 분노가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고, 무엇보다 지신이나 어떤 특정 대상에 가해진 위협이나 상처 때문에 촉발되는 반응이라고 보았다. 즉 분노는 기쁨이나 슬픔과 다르지 않은 감정인 셈이다. 따라서 분노 자체는 악이 아니며, 그것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미덕이 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용기 있는 자만이 분노할 수 있다고 말하며 분노를 현자가 마땅이 지녀야 할 덕으로 간주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화를 낼 만한 일이나 대상에 대해 적절한 때에 화를 내는 일은 칭찬받을 만하며, 이것은 악이 아니라 도리어 미덕이라고 주장했다. 아퀴나스는 한걸은 더 나아가, 분노가 불의에 대한 강렬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분노는 자신이나 어떤 대상이 입은 부당한 피해를 주위 사람에게 인식시키고, 부당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표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이것은 응보적 정의를 세우려는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성을 내는 것, 즉 분노는 어떤 면에서는 선과 정의를 구현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도 때로 분노했다. 시내 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받고 내려오던 모세는 백성들이 스스로 만든 금송아지 우상 앞에서 춤추는 모습에 분노하여 돌판을 던져 버렸다.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을 능욕하고 조롱하는 것에 분연히 일어나 그를 돌로 쳐 죽였다(삼상 17: 41-49). 느헤미야는 궁한 처지의 동족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을 놓아 자기 배를 불리는 귀인과 관리들의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느 5:6-7).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에 나타난 의로운 분노의 대표적인 모델은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의 집을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장사치의 소굴로 만든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본 예수님은 채찍을 들어 양과 소를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어 버리셨다(요 2:15). 복음서는 이러한 예수님을 무죄한 감정을 온전히 드러낸 인간으로 묘사한다. 이런 분노들은 한결같이 자기 유익과는 무곤한, 하나님의 영광과 공의를 위한 동기에서 촉발된 의로운 분노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도 분노하신다는 사실이다(시 78:49). 하나님의 분노는 환경과 외부 여건에 따라 조작되거나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성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충동적이거나 즉흥적이지 않다. 먼저 분노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속성에서 발현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불의나 죄는 그분과 공존할 수 없기에(시 5:4), 하나님은 행악자를 미워하시며(시 5:5) 배교를 저지르고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에 분노하시고(사 30:1-5; 렘 2:35-37) 동시에 이바인들의 불의와 죄에도 분노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분노는 그분의 중요한 속성인 사랑에서 촉발된다. 그의 백성을 깊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분노하신다(시 90:7-12). 또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에게 진노하신 것은 그들의 행동이 백성들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레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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