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죽음에이르는7가지죄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

예림의집 2016. 12. 5. 09:36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

 

하지만 인간이 화를 낼 때 그것이 치명적인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화가 의로운 것이든 아니든 좀처럼 통제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바로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분노해야 마땅한 대상에게 마땅한 몫으로 갚아 주는 정의의 수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ㄱ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적 사고와 평정을 강조한 소토아 철학자들은 감정을 대개 영혼의 육욕적 부분에 속하는, 이성으로 철저히 통제해야 할 것으로 취급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감정이 이성에 따른 합리적 판단을 방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마음의 병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화를 내는 사람은 이성에 이미 등을 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상은 에바그리우스를 통해 카시아누스 같은 사막 수도사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먼저 에바그리우스는, 분노를 영혼을 어둡게 사탄이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 촉발하는 악한 감정으로 신자들의 가장 강력한 적이다. "분노는 여온의 눈을 어둡게 하고 기도하는 상태를 망가뜨린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상태를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분노하는 영혼들의 모습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지상에서 분노의 죄를 지었던 영혼들은 지옥의 시커먼 늪에서 형벌을 받는데, 그곳에서조차 이들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서로 으르렁거리며 물어뜯고 있다. 그리고 "햇살이 화사하게 내리쬐는 청명한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마음이 분노의 연기에 싸여 있었기에 늘 우울했는데, 이제 이곳에서조차 시커먼 진흙 수렁에서 고통당하고있구나"하고 탄식하면서도 여전히 화를 통제하지 못한다.

카시아누스도 수도사에게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고 특히 분노는 마음의 요동을 일으키는 주 요이니기에, 이것을 영혼에서 제거하려면 특별히 수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곡에서 분노의 죄를 지었던 영혼이 그 죄를 씻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평화와 자비를" 구하는 찬송을 부르고 간구했듯이. 우리 역시 분노가 마음에 요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늘 주님께 평화를 요청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레고리우스도 분노하면 성령이 떠나고 의가 사라진다고 생각했기에 이것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도 이와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소위 선의등록의 집단이 불의한 집단과 투쟁해 가는 과정에서 처음의 의로웠던 분노가 점차 과격하고 악한 분노로 변질될 위험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의로운 인물이나 그룹도 불의한 세력과의 투쟁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당면한 불의를 변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점차 상대방을 미워하고 파멸해야 할 원수로 여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태에 빠지면, 자신은 철저히 의롭고 자신이 정의를 위해 발하는 분노 역시 철저히 의롭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불의의 세력과 투쟁하는 자신의 편에 계시다고 생각하면서 점차 도를 넘어서는 과격한 분노를 행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불의한 제도와 권력에 대해 정당하게 화를 낼 때조차도 분노가 적대적 앙갚음과 같은 형태로 변질되지 않도록 감정을 더욱 통제할 필요가 있다.

'독서..▥ > 죽음에이르는7가지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궁극적인 대안   (0) 2016.12.16
지체 의식   (0) 2016.12.09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바라보기   (0) 2016.11.29
선의 총량은 무한하다   (0) 2016.11.16
시기를 이기는 길   (0) 2016.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