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신약신학

데살로니가 전서

예림의집 2016. 11. 24. 13:41

데살로니가 전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데살로니가 전서가 바울이 기록한 서신 이라는 확실성이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인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저작권을 부정하는 자들도 계속 존재해 왔다.

바울의 저작권 반대파

첫째 다른 바울의 서신들보다 교리적 성격이 훨씬 결여되어 있다.

둘째 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하는 생각을 공격치 않는다.

셋째 본 서신은 너무나 바울적 성격을 띠고 있다. 본 서신에는 틀림없이 바울이 기록한 서신들에 나오는 귀절들과 닮은 귀절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이는 분명히 위조자의 짓이라고 주장한다.

바울 저작권의 당위성

1. 바울의 전집을 수집한 마르키온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음. 또한 무라토리안 정경에서도 언급되고 있고,이레네우스가 본 서신의 제목을 언급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터툴리안의 시대에도 바울의 저술로 인정 받았으며,고대 라틴 역본과 고대 수리아 역본 모두에도 실려 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자체가 증명

1. 본 서신 자체가 바울로부터 보내어진 것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1:1,2:18)

2. 본 서신을 써 보낼때 그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때 바울과 함께 동역했던 실라와 디모데이다.(1:1,3:2,6)

3. 본 서신은 전형적인 바울의 문필형태를 가지고 있다. 즉 바울의 기록임을 인정받은 다른 서신들과 동일한 서한문으로서의 특징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4. 어휘가 분명히 바울의 사용어휘이다.

5. 어휘 하나하나가 바울이 저자임을 나타내고 있을뿐 아니라, 바울의 서신들에서만 발견되는 특유한 어귀들이 있다.

중요한 점은 초기 문헌중 어디에도 의문점이 없는. 합법적인 유일한 결론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의 저자라는 것이다.

 

2) 저작연대 및 장소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바울이 고린도에 체류하였던 기간과 일치하기 때문에 상당히 정확하게 측정할수 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때 끌려갔던 갈리오 법정과 관계있는 갈리오에 있는 내용이 델피근처에서 발견된 한 비문에 소개된 바가 있다. 이 비문에는 갈리오가 A.D 51-53년 어간에 1,2년정도 총독으로 있었음이 나타나는데 바울은 본 서신을 기록하기 전에 고린도에 혼자 있다가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한뒤 본 서신을 기록하였다. 그래서 거의 이 시기를 A.D 51-52년정도이다.

그리고 바울이 갈리오 앞에서 심문을 받았던 때를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사도행전18:12-18은 이 일이 갈리오가 취임한 직후이며,또한 바울이 그 도시에 체류한지,18개월이 끝나가는때에 있었던 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그 시기는 51년정도가 된다.

그리고 본 서신의 기록 장소는 고린도로 추측된다. 사도행전과 본서신을 볼때(1:1,행17:10,14) 실라와 디모데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과 관계가 있으며, 실라는 1차와 3차 여행에는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본 서신은 고린도에서 기록 되었음이 분명하다.

 

3) 신학적 가치

 

데살로니가에 보낸 두개의 서신들은 우리가 바울의 신학적 개관을 이해 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성경의 연감과 권위에 관한 교리.

· 삼위로 존재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관한 교리.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교리.

· 그리스도와 믿는자의 연합 및 동일성,개인적 정결과 관련되는 성화의 교리,

· 사랑, 직업적 근면,자극 및 기타 영역들이다.

또한 데살로니가전후서가 신학적으로 최대의 공헌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 두 서신들에는 종말론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종말론을 요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종말에 관한 여러가지 용어들과 주제들을 조사하는 일이다. "강림하심" 혹은"나타나심"은 가장 빈번히 사용되어 있는 용어들이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인하여 경건치 못한 자들은 무서운 심판이 있는 반면에 믿는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자로 여기심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2. 역사적인 배경

 

본 서신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데살로니가시의 역사와 데살로니가 교회에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데살로니가 시의 역사

이 도시는 살로니가만의 윗 부분에 위치한 온천 지대로서 빌립보 성을 건설한 마케도냐의 왕 빌립2세의 양자인 카산더에 의해 B.C 315년에 건축되었다. 또한 이 도시의 이름은 카산더의 부인이며,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누이인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후 로마가 마게도냐를 지배했을때 이 도시는 로마의 네 행정구역중 한 지방의 수도가 되었으나 B.C 146년에는 마게도냐 전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한편 로마의 영웅 시이저가 죽은 뒤 내란으로 로마가 혼란할때 데살로니가시는 옥타비아누스편에 가담한 공로로 B.C42년에 자유 도시가 되었다. 그뒤 이도시는 점점 발전하여 바울 당시에는 읍장이라 불리는 행정장관들에 의해 자치적으로 관리 되었고,주민은 대부분 그리스도인과 많은 유대인으로 구성 되었다.

 

2)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의 설립경위와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데살로니가 교회의 설립 경위

마게도냐의 첫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증거하였다.(행17:1) 이때 바울은 3주일 동안 회당에서 가르쳤는데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무른 기간은 3주간이 훨씬 넘은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두 번이나 빌립보교회로 부터 보조를 받았으며,또 많은 사람들이 우상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것은 많은 시간이 경과됐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야손의 집을 집회 장소로 사용했는데 이곳이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로 발전 하였다. 초대 교회는 이러한 대부분이 헌신적인 개인의 가정에서 출발 하였다.

②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지만 이러한 외부의 압력을 데살로니가 교회는 잘 견디고 있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문제가 되는 것은 내부에서 일어난 잘못된 종말관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생활이 문란해진 점이었다. 그들은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여 일도 하지 않고 세상에서 해야 할 육신의 일을 등한시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전에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염려하여 신앙생활에 많은 혼란을 빚고 있었다.

 

3. 저술 목적

 

바울은 비겁하며, 자기유익만을 도모하는 자라는 유대인 반대자들의 비난에 대해 답변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2:1-12). 그는 유대인의 반대와 핍박에 직면하여서도 인내할 것을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로 새롭게 개종한 사람들을 다시 옛날의 기준으로 되돌리려는 이교도들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독교의 도덕이 이교의 것보다 우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재림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고 있다. 그리고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지도자들을 존경하도록 권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은사 체험에 대한 가벼운 암시를 해야 할 필요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본 서신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초대 기독교 당대의 문제들에 대한 직접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의 보고에 대한 응답으로서 세가지의 주요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서신을 기록하였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만족을 표하기 위해서 였으며,

둘째 바울 자신과 그의 동역자들에 대해서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대항하여 강력하게 본을 세우기 위해서이며,

세째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서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거룩함을 계속 구함에 따라 그들이 이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강력히 행한바 있는 행위들을 증진시킬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결론적으로 요약하여 말한다면, 바울이 자신의 인격과 동기에 대한 비방운동과의 정면적인 대결. 잠자는 자들로 인해서 야기된 문제 및 그리스도 재림의 양상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해명. 기쁨과 감사의 표현. 그리하여 바울은 새로운 신앙은 이방 세상의 특징인 불륜행위를 완전히 끊을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교회의 공직을 바르게 존중하고,형제들간에 사랑하고,화평을 누리며, 고난중에 있는 자들을 기꺼이 돕고, 세상이 보기에 올바른 행위를 해야 할 필요성때문에 본서신의 저술 목적을 찾을수 있겠다.

 

Ⅱ. 데살로니가후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데살로니가 후서가 사도바울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은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전적으로나,혹은 부분적으로 데살로니가 후서가 바울이 기록한 서신임을 부정하는 주장들은 개개주장에 따라 상이하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살후2:1-12은 말세론적 귀절이다. 이 귀절은 그리스도가 그의 원수들을 정복하고,받게 될 장래의 영광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바울이 도처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있어서의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둘째 만약에 바울이 살전4:13-18; 5:1-11을 기록했다면, 살후2:1-12이 또한 그의 기록일수는 없다. 왜냐하면,전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임박한 사실로 보고 있음에 반하여 후자는 그렇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살후2:1-12은 다음 경우들을 가리키는 귀절이다. 네로-불법의 사람을 가리킨다. 그는 당시 이미 죽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실제로 숨어 있는데 곧 되돌아올 것으로 묘사되어져 있다. 다음으로는 베스파시안 황제을 가리키거나 혹은 트라얀의 시대나 확대해 가는 영지주의의 대세를 가리킨다. 이는 바울이 본 서신의 저자일수 없음을 보여준다.

넷째 2:11-13에 나타난 전적 예정설은 비 바울적 구절이다.

다섯째로 데살로니가 후서는 아주 상당한 부분이 데살로니가전서의 반복이다. 이는 분명히 위조자의 짓이다.

여섯째로 데살로니가 후서는 바울의 붓의 산물로 간주되는 참된 바울의 서신들과 비교할때 너무나 많은 점에서 상이하다. 특히 본 서신은 데살로니가 전서보다 훨씬 더 냉담하고 또한 훨씬 더 유대적 색체를 띠고 있다.

일곱번째로 문안(3:17)의 말이 의심스러워 보인다. 이는 분명히 위조자가 본 서신을 진짜 바울의 것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한 시도이다. 그리고 또 지적한다면,데살로니가 후서의 종말론이 A.D70년의 예루 살렘함락이후에 생겨난 하나의 기독교적인 전망을 대표하는 이론으로서 살전과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의심을 받고 있으며,바울이후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적인 속성과 기능을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서신은 데살로니가 전서보다 구약을 더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이방인들 보다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임을 나타내기 때문에 본 서신은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서신은 사도바울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증거를 말할수 있다. 먼저 내적 증거로서는 1:1절과3:17절에서 밝히고 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한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지극한 관심과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증가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감사(1:3,11,12; 2:13; 3:3-5)는 이미 그가 기록했던 데살로니가 전서에 나타난 자세와 동일하다(살전2:11,12,17; 3:10)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주장(1:1)과 이전 교훈들에 대한 그의 언급(2:5,15; 3:6), 그리고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한 명령(3:1)등은 데살로니가 전서에 나타난 그의 어투의 특성과 다를바 없다(살전1:1; 5:25)

그리고 외적증거로는 순교자 저스틴이나 폴리갑,이레니우스,터툴리안,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같은 감독, 교부들은 자신들의 저서에서 본 서신이 바울의 저작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최초로 신약성경의 정경문제를 논한 마르시온경이나 무라토리 단편 그리고 고대 수리아 사본과 라틴 사본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수 있다.

 

 

2)연대

 

만약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정확한 것이라고 믿는다면,데살로니가후서는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러 있을때 씌여졌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그 이후에 다시 만났는지의 여부가 알려져 있기 않기 때문이다. 바울의 상황은 대체적으로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을때의 상황과 동일하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데살로니가후서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씌어졌음이 틀림없다.왜냐하면, 데살로니가 전서속의 자서전적 부분을 볼때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는것과 그 편지 자체가 일치 한다는데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로 본 서신은 환란이 극도에 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나 전서는 그 환란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본 서신에는 내부적인 어려움이 새로운 사실로 등장했으나,데살로니가 전서에는 그것들이 이미 잘 알려진 사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해 그 반론들을 무시할수 있다.

첫째로 본 서신에는 앞서 써 보낸 편지를 확실히 지적하는 구절이 있다(2:15)

둘째로 살전4:1-12 ; 5:12-28에는 몇개의 명령이 있는데 본 서신에서는 그 명령들중 일부가 더욱 강하게 표현 되어 있으며, 불순종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할것인지에 대한 명백한 지시가 있다.

세째는 살전1:6 ; 2:13절에서는 데살로니가 인들이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음을 암시하고 있으며,본 서신1:3절에서는 그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바울이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도용한 거짓서신에 대해 경계하면서 이는 본 서신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두번째 서신임을 밝혀주는 것이다.

 

3) 저작 장소와 수신인

 

데살로니가 전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이 두번째 서신역시 고린도에서 썼다. 우리가 아는 한 그 후에는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있지 얺았다. 베뢰아와 빌립보 교회가 이 서신의 수신처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유대인들이 바울과 그 동역자들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데살로니가후서에 구약의 인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베뢰아가 수신처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타당성 있는 주장으로 생각된다.빌립보가 수신처라는 이론은 폴리갑의 인용문에 의해 뒷받침을 받는데 이는 폴리갑이 빌립보를 데살로니가후서의 여러 귀절들의 수신처로 지명한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 배경

 

데살로니가의 회심자들에 대한 바울의 관심은 첫번째 서신을 보냄으로서 끝난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역은 그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자들을 계속적으로 훈련 시키는 일이었다.이 두번째 서신은 단지 데살로니가전서 보다 약간 뒤늦게 씌여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후서의 배경은 단지 가벼운 사건이 몇가지 더 첨가되었을뿐 데살로니가 전서의 배경과 동일하다(역사적 배경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참고하라) 바울이 아직 고린도에 있을때 그는 이 교회의 형편에 대한 소식을 좀더 듣게 되었다. 어떤 경로로 그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졌는지는 잘 알수 없다. 그러나 그 소식의 내용은 바울의 마음을 움직여 데살로니가후서를 쓰게 할 만큼 중요했음에 틀림이 없다.

 

3. 저술목적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온 순서가 정확하다고 가정 한다면 데살로니가 전서는 게으름의 문제를 다루는데에 바울이 기대한 만큼 효과적이지 않았으며,재림에 대한 새로운 오해들이 발생하였다고 결론 내릴수 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들은 주의 날이 이미 지나갔다는 가짜 바울 서신을 받았으며,그러한 인상을 시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 잘못된 가르침이 바울의 이름과 연관 되었고 바울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데살로니가 후서를 썼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여기에 더 나아가서 이야기 한다면, 바울은 첫번째 서신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보내긴 했지만 그에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전보다 심한 핍박을 당하고 있었고 교회 내부의 신앙문제는 더욱 악화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상황은 그리스도인에게 대한 박해가 더욱 심해감에 따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실망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바울의 이름을 도용한 위조편지와 거짓된 가르침들은 점점 심해지는 박해 상황을 볼때 이미 종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확신시켜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핑계로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지 않는 자들이 데살로니가 전서를 쓸때보다 더욱 증가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염두해 두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본 서신을 써 보냈다.

첫째로 바울은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때 주어질 상급과 형벌에 대해 서술함으로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고난의 상황에서 더욱 인내할것을 권면 하였다.

둘째로 바울은 종말이 이미 임했다는 그릇된 종말관을 반박하기 위해 주의 재림시 있을 중요한 사건들을 명백히 밝혔다.

세째로 바울은 종말을 핑계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바로잡기 위해 교회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상세한 교훈을 주었다.

네째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구두로나 혹은 서신으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들을 계속 고수해 나가도록 권고하고 잘못된 재림에 속지 말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목적과 함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을 기도할때에 기억해 주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에 맡기고 마음을 굳게 하여 언제 어떠한 처지에서나 은혜와 평강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좋은 소망을 품으라고 하는 귀절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이와 같은 간단한 목적개요로 비추어 볼때 본 서신은 분명히 재림서신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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