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신약신학

잠 못 드는 여리고(눅 19:1-10)

예림의집 2016. 11. 11. 18:13

잠 못 드는 여리고(눅 19:1-10)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유월절 여행길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열두 제자뿐 아니라 갈릴리에서 활동하실 때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 얼마 전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렸다는 소문을 들은 자와 목격한 자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영행 길에서 고쳐주신 문둥병자 등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유월절을 지키러 가는 순례객으로 함께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태는 ‘큰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다(마 19:2)’고, 마가는 여리고를 출발할 때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가 함께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십자가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기로 자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려는 많은 순례객들과 함께 여리고에 도착하셨다.

본문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여리고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는 한 소경, 곧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를 고치셨다(눅 18:35-43). 이후 여리고 성 안으로 들어오셨고 예수님을 보러 나온 많은 사람들 가운데 여리고의 세리장이요 부자였던 삭개오를 보시고 그를 부르셨고 그의 집에 들어가 유하시며 대화를 나누셨다. 예수님은 삭개오와 그의 집에 구원을 베푸셨다. 이날은 금요일로 안식일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예수님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주일 새벽까지 여리고에 머무셨고 주일 새벽 일찍 예루살렘으로 떠나신다.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 여리고는 왜 잠 못들고 있는지 살펴보자.

예수님께서 금요일 오후 여리고에 들어가셨다고 했다. 그 근거는 이틀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마가가 기록한 ‘이미 저물어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로 가셨다(막 11:11)’는 것이다. 당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8-10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로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하셨을 때 해가 저물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주일 새벽 일찍 여리고를 떠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일 새벽 여리고를 떠나셨다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는 여행할 수 없는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여리고에 머무실 수밖에 없으셨다. 금요일 오후 여리고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로 작정하시고 정확히 일주일(금요일 오후-금요일 오후) 후면 당할 일을 아시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계신다.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신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예수님의 생각과 달랐다. 많은 무리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고 지금 여리고에 머물고 있지만 이번 유월절은 다른 유월절과 봄 다르다. 예수님과 생각이 다른 많은 무리들의 이틀 후 행동을 살펴보자.

종려주일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예수님께서 앉으실 나귀 새끼 위에 얹었다. 또한 많은 무리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폈다. 이러한 행동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타난 행동이었다. 제자들이나 무리들은 다윗의 왕정을 다시 수립할 왕으로서 예수님, 유대 왕국의 꿈을 실현할 분으로서의 예수님을 생각하였다. 이러한 마음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땅에 펴는 행동이나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깔고 흔드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겉옷을 길에 펴는 행동은 승리의 상징이요 왕에 대한 존경과 환영의 표시였고, 나뭇가지 곧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고 흔드는 행위는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러 올라가는 이번 여행길이 많은 무리들에게는 로마에게서 나라를 회복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유대왕국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금요일 저녁이 되어 여행할 수 없는 안식일의 여리고는 유월절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많은 순례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을 것이다. 안식일이 시작되어 더 이상 여행할 수 없는 이들은 여리고와 주변에서 유숙하였을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은 여리고에서 예수님에 대해, 메시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이틀이 지나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이번에는 무엇인가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로 잠 못 들며 많은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예수님의 생각과는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잠 못 드는 이유와 달리 여리고에 잠 못 드는 또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였다. 본문은 삭개오의 직업이 세리장 이었고 부자라고 소개한다. 당시 세리는 유대인들에게 아주 천한 사람으로 죄인으로 취급당했다. 동족에게서 세금을 많이 거두어 들여 로마에 바치면서 자신들의 배도 불렸기 때문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 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인가 보고자 했지만 사람이 많았고 키가 작았기에 볼 수 없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지나실 경로를 예상하고 미리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 위로 올라갔다(눅 19:4).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돌무화과 아래에 가셨다. 점점 다가오시던 예수님께서 돌무화과 아래에 서셨을 때 삭개오는 아주 마음이 설랬고 두근두근 거렸을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고 ‘보고자’, ‘경험하고자’ 거리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는 3절과 4절에서 ‘에이도(보다, 알다, 경험하다’를 반복해서 쓰면서 예수님에 대한 삭개오의 기다림을 보여주고 있다. 돌무화과 위에 올라갔던 삭개오는 왜 예수님께서 이쪽으로 오시지? 왜 나무 아래로 오시지?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아주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나무 위를 처다보셨다(아나폴레오: 위로 쳐다보다, 다시보다, 눅 19:5). 예수님께서 올려다보시며 시선을 멈춘 곳은 바로 자신이었다. 삭개오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무화과 아래로 오신 이유는 자신 때문인 것을 알고 더욱 놀랐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삭개오는 급히, 서둘러 내려왔고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눅 19:6). 그런데 이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은 수근 거렸다. 불평하였다. 불만을 표시했다(눅 19:7). 사람들은 왜 불평을 했을까? 그것은 자신들이 메시아로 좇으며 이번 유월절 예루살렘에서 무엇인가 일을 이루기 위한 기대감으로 함께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많은 무리들은 수군수군하고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와 머무실 때 삭개오는 회개의 고백을 한다.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 서서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값절이나 갚겠나이다.”고 말씀드렸다. 삭개오의 고백은 몇 일 전 예수님의 유월절 여행길에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로 왔다가 자신의 재산으로 인하여 고민하고 돌아간 부자청년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마 19:16-22, 막 10:17:21, 눅 18:18-30).
또한 삭개오는 철저한 회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하였으며, 토색한 것은 사배나 갚겠다고 말한다(눅 19:8). 레위기에 의하면 토색한 것에 5분의 1을 더하여 돌려주게 되어 있다(레 6:2-5). 삭개오의 회개는 예수님께로부터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9-10).”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구원을 얻는 자가 되었다. 삭개오는 예수님과 머무는 이틀 밤 아주 잠 못드는 밤이 되었을 것이다.

‘잠 못 드는 여리고’란 제목을 붙인 배경적 근거는 안식일과 안식일에 2000보 이상 여행할 수 없다는 당시의 규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의 거리가 ‘하룻길’이었다는 것, 금요일부터 토요일을 지나 주일 새벽까지 여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배경적 요소와 ‘이미 저물어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로 가셨다(막 11:11)’는 마가의 기록에서 이미 성전에서 오후 제사(오후 3시)도 끝나 서언에서 행하실 일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로 물러가셔서 하루를 보내시고 다음 날인 월요일 다시 성전에 들어오셔서 성전을 청결케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