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실천신학

하나님을 예배하라.

예림의집 2016. 11. 12. 14:40

하나님을 예배하라.

예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해석, 개념은 다양하다. 무엇이 예배인가라는 것을 정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예배는 3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 기대(expectation), 만남(encounter), 응답(response)이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관계를 맺기 위해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예배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며 예배자는 하나님이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예배를 정의한다면 예배는 하나님을 깊이 아는 하나님과의 만남(divine encounter)이다. 그 만남이란 하나님과의 긴밀함(intimate)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멀어져 거리감(distant)이 있던 관계가 친밀한 관계가 된다.

1) 예배의 본질적 12가지 정의는 무엇인가?
① 예배는 하나님과 사람의 대화(conversation)이다.
②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sacrifice)이다.
③ 예배는 삼위일체의 하나님(triune God)께 대한 확고한 응답(response)이다.
④ 예배는 창조의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fellowship)이다.
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표현(expression)이다.
⑥ 예배는 하나님에게 행동(act)하는 것이다.
⑦ 예배는 하나님께 합당한 예의(appropriate manner)를 갖추는 것이다(예법).
⑧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God's presence)를 찬양(praise)하는 것이다.
⑨ 예배는 하나님께 모든 것(whole being)을 바치는 것(giving)이다.
⑩ 예배는 하나님께 애정 깊은 헌신(affectionate devotion)이다.
⑪ 예배는 하나님과 전적인 관계(properly related)를 맺는 것이다.
⑫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에 순종(obedience)이다.
예배는 아무리 정의를 잘 이해해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없다면 예배가 아니다. 참된 예배는 체험(experience)이다. 예배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특히 회중예배의 궁극적 목적도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2) 예배에 중요한 개념들은 무엇인가?
① 하나님은 예배자(worshiper)를 찾으시지(seek) 예배를 찾는다고 하지 않았다(요 4:23).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들이 예배하는 가운데 임하신다.
② 예배는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이다. distant(먼, 희미한) - intimate(친밀한, 깊은, 심오한)
③ 예배는 주고(giving) 받는(receiving) 행위이다. 찬양은 계속해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한 가지 길이지만 예배는 친교(communion)와 교제(fellowship)가 포함되어야 한다.
④ 예배는 상호작용이다(a vertical interaction) 하나님과의 작용(수직작용↕), 사람과의 작용(수평작용M↔M)이다.
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에 은혜를 입는 것(basking)이다.
⑥ 예배는 하나님께 집중(concentrate)하는 것이 중요하다.
⑦ 예배는 외부의 뜰(outer court)이 아니라 내부의 뜰(inner court)이다.
⑧ 예배는 모든 것이 동원되어야 한다. 외침, 박수, 노래, 춤
⑨ 예배는 모이는 것(gathering)이다.

3) 예배에 대한 그릇된 개념(misconception)은 무엇인가?
① 예배 속의 하나님 임재의 개념에 대한 오해. 예배의 생명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은 임재하심을 통해서 스스로를 나타내신다(manifest). 그러나 예배의 목적이 사람일 경우 예배는 잘못 드리게 된다.
② 예배자의 의도(intention)에 대한 개념의 오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배를 통해서 공급하신다. 그러나 예배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는 의도가 잘못될 경우 잘못된 예배를 드리게 된다.
<아브라함의 예배>
창세기 22:5에서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라는 아브라함은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이삭을 데리고 갔으며 이것은 최고의 예배와 최상의 예배를 위한 번제물을 드리는 예배이며 전인적인 순종의 예배였다.
<바울의 예배>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거룩한 산제사라는 몸을 바치는 번제물로서의 예배를 통한 헌신을 의도로 예배를 드리라고 했다.
<다윗의 예배>
사무엘하 12: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다윗은 간음과 살인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회복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번제물이 된 회개하는 예배를 드렸다.(시편51편; 참회의 기도)
<욥의 예배>
욥기 1:20-21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모든 것을 잃었어도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깨트리고 바치는 번제물로서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성경의 위대한 예배자들은 모두 바른 예배 의도로 예배를 드렸다. 그러므로 예배자의 예배 의도가 바르고 합당해야 한다. 만일 예배의 의도가 바르지 못하면 잘못된 예배가 돼버린다.

4)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예배의 본질을 살펴야 한다. 모리스 스미스(Morris Smith)는 예배에 대해서 말하길 ‘예배는 하나님께 하시는 어떤 일에도 우리의 눈을 낮추고 성경에서 경고하고 있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숭배를 바로잡고 온전한 예배를 다시 재현하는 것을 포함한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일어나는 어떤 지독한 상황(devastating circumstances), 삶이 기진맥진하는 상황(life-shattering circumstances), 부정적인 상황(negative circumstances), 견디기 어려운 상황(trying circumstances), 몹시 거친 상황(turbulent circumstances) 속에서나 긴장이 가득 찬 상태(stressful conditions)와 감정적 혼란(emotional turmoil)의 상태에서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나의 마음을 드리고 그분의 능력 앞에 엎드리며 주를 따르겠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의 기초는 그의 주되심(Lordship)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 고백은 실천이며 행동이다. 예배의 본질은 어느 상황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예배를 배워야 한다. 예배는 예배를 통해서만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 속에서 약속하셨다. 시편 32:8-9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훈계하신다는 가르치신다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시간이고 예배자는 배우는 시간이다.
잘못된 예배를 드리려는 속성들을 단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갈을 물리고 굴레를 씌워서라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를 예배에 복종시키는 생활을 하도록 예배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의 본질을 알기 위해 예배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시편 89:15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 즐거운 소리를 안다는 것은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복을 받은 사람이다.

예배를 배운다는 것은 성경을 읽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세미나를 갖는 것이나 성경공부 클래스에 들어가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예배를 배운다는 것은?
첫째, 적용(application)하는 것이며 체험(experience)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마음을 열고 성령께 채널(channel)을 맞추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에게 나 자신을 예술(art)로 표현하는 것이다.
넷째, 행동(doing)하는 것이다.
다섯째, 전적으로 신뢰(trust)하는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을 부복(prostration)시키는 것이다.
일곱째, 하나님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것(staring)이다.-하나님과의 eye contact
교회는 일을 가르치고 증인이 되기를 가르치지만 예배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예배를 배우지 않아서 성도들의 예배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예배를 통하여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예배해야한다.
첫째, 하나님에게 깊이 빠져 들어가라.
둘째, 사랑의 표현을 하라.-예배 기능은 부부간의 사랑(marital love)과 같다.
셋째, 하나님에게 출발(starting)하라.
넷째, 특별한 기쁨을 자발적 표현(spontaneous expression)으로 드리라.
다섯째,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now) 예배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예배의 시제는 현재 시제이다(present tense). 예배는 과거 시제나 미래 시제가 아닌 현재라는 사실이다. 예배는 막연하게 기다리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지금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진정한 예배 속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예배는 하늘나라를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들어오라는 신호(cue)이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할 때 하늘나라의 예배가 시작된다. 그리고 예배의 감독은 하나님이시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하여 찬양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열정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지금 예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배는 행위를 통해서 배워지는 것이다. 행위는 정신적인 동시에 영적인 것의 표현이기에 우리의 인식(awareness) 변화가 최우선 과제이다. 행동이 따르는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도록 해야 한다.

5)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① 성령의 예배를 드리라. 성령의 감동하심 없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불가능한 예배이다. 마치 하나님은 죄많은 사람(unregenerate men)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면 받으시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교의 사람(heathen men)이 드리는 예배는 받으시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하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만을 받으신다. 빌립보서 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교도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성령에 이끌리고 진리의 말씀을 갖고 예배드리지 않기에 하나님은 받으실 수 없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며 성령에 이끌리는 예배자의 예배를 기뻐하신다. 천국 예배의 리더는 성령이다(겔1:19-20).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르쳐 주신 예배에서 의식이나 예식의 예배가 아닌 성령의 예배를 말씀하셨다(요4장). 예배는 하나님의 영과 우리의 영이 일치(corresponding)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향하는 위대한 예배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은 무지의 예배(ignorant worship)와 지혜의 예배(intelligent worship)에 대한 구별을 하셨다. 무지의 예배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이고 지혜의 예배는 아는 것을 예배하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시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 때 성령께 의지해야 한다.
구약의 예배를 이사야는 이렇게 책망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29:1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했을 때 하나님의 마음과 그들의 마음에 일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입술로는 존경하는 것 같았지만 마음은 멀어졌던 것이다.
예배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성령으로 예배해야 한다.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어떻게 드리는 것인가?
첫째, 성령의 지시에 예민한 것(sensitive)을 말한다.
둘째, 성령의 지시에 따르는 것(follow)을 말한다.
셋째, 성령의 지시에 행동을 유발(prompt)하는 것을 말한다. 유발시키는 것이란 자기를 복종시키기 위해 가혹하리만큼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② 진리의 예배를 드리라.
첫째, 진리의 예배란 변함없는 말씀을 의지하는 예배이다.
둘째, 진리의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다(요14:6)라고 믿는 예배이다.
셋째, 진리의 예배란 하나님을 진리로 믿는 것이다.
넷째, 진리의 예배란 순결(purity)한 예배로 청렴(integrity)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섯째, 진리의 예배는 위선적 예배(hypocritical worship)와 구별되는 예배이다.
위선적 예배에 대한 예는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사울 왕이 했던 것을 의미한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이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가로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네 칼이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같이 여인 중 네 어미가 무자하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본집으로 올라가니라”(사무엘상 15:24-31). 사울이 예배를 드리려는 동기는 위선이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 뿐 하나님께 진실로 예배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예배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 것이다(삼상 15:35). 예배에 가장 무서운 적은 거짓과 위선이다. 하나님은 진실한 예배를 원하신다.
여섯째, 진리의 예배란 정직한(honest) 예배이다.
일곱째, 진리의 예배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믿는 예배이다. 요한복음 17:17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예배이다.
여덟째, 진리의 예배란 성경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높이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이다. 고린도후서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히브리서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예배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기 위해서 자신을 깨끗케 하도록 하나님의 불로 태워져야 한다. 신령의 예배나 진리의 예배는 한 가지 목적을 향하게 되는데 그것은 ‘변화’이다. 예배란 예배자의 깨끗해지려는 변화이다. 성령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6) 예배에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① 예배에 단순성(simplicity)을 추구하라. 예배는 복잡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것과 같은 무게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예배는 단순한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고 마음을 여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는 고통의 시간이 아니다. 예배는 즐거운 시간이다. 예배는 예배자를 새롭게 회복시켜 주는 것(renewing)이며, 상쾌하게 기분을 복 돋우어 주는 것이며(invigorating), 건강을 유지하도록 치유해 주(therapeutic)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에게 마음을 열 때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단순하게 만들어진다. 예배는 고생하는 것이 아니고 압력(strain)이 아니다.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라.
② 배타적인 예배(exclusive worship)를 버려라. 예배는 사랑하고(loving) 행하는(doing)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과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예배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4:10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봉사, 전도, 가르치는 것보다도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예배를 놓치다가 교회를 ‘아차클럽’(bless-me club)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배에 배타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포괄적인 사람(inclusive)이 되어야 한다. 사탄은 예배드리는 것을 싫어하기에 배타적이기를 구한다. 예배에 부지런하지 않는 사람을 사탄은 찾아가 무너뜨린다.

결론
시편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편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요한복음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한 최고의 예배이다. 무절제하고 불규칙한 예배의 삶을 하나님께 굴복하고 복종하는 것(submit)이 예배이다. 절대적인 예배(unconditional worship)에 도전해야 한다.
시편 46: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에스겔 47: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예배하는 동안 하나님의 강은 흘러넘치게 된다. 갈라진 영혼과 상처와 무거운 짐들을 씻어주는 은혜의 강물이 예배에서 흘러넘치는 것이다. 예배는 살리고 소성하게 하는 축복을 허락하신다. 예배드리면 모든 것이 살아난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에 예배를 적용하는 것만이 가장 위대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예배의 기적을 체험하고 예배의 영광스러움을 경험해야 한다. 예배를 드리고 예배자가 되는 것만이 역동적인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