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실천신학

구약 율법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예림의집 2016. 11. 8. 21:03

구약 율법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십계명(율법)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십자가를 연결할 수 있는가?
어떤 설교라도 십자가로 끝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연구 목적: 십자가 신학의 간점에서 율법 설교하는 법을 가르친다.

5:1절 21절.

1. 하나님께서 구속 받은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신다(6절 21절).
율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십자가로 끌고 갈 수 있는가?
구원 받은 후에도 십계명도 꼭(반드시) 지켜야 한다.
율법이 없다는 것은 십자가가 없다는 것이다.
주일날 교회 성도들이 안 나오면, 큰 일이 생기게 된다.
구원을 받았어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2. 십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했다(5절).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25절).
모세가 중보해주시기를 바랬다(5절, 27절).

3.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명을 받으며 이러한 태도를 보였는가?
하나님이 두려웠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계명이 너무 무거워 보였는가?
하나님이 두려워서였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히브리서에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울이 너무 엄중하고 무거워서, 지킬 수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
마음에 할례를 받음은 기쁨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율법 자체는 선한 것, 온전한 것.

4. 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좋으신 하나님이라 부른다.
6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구원의 하나님, 구속의 하나님이라는 뜻
그러므로, 십계명을 설교할 때 앞부분을 먼저 설교해야 한다.
구원의 은혜를 향유하는 사람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다.
애굽의 노예상태의 쓴 맛을 잃어버리고, 현재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구원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이기 때문에
율법이 두려워했던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10계명이 두려웠다.
애굽의 압재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를 잃어버린 상태.
초신자일 경우에는 항상 은혜요 감사였는데 은혜가 떨어져 버리면 담임목사가 두렵다.
목회자는 어떻게든지 성도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지속될 수 있을까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 버렸기 때문에, 구속에 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5.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좋아지면,
하나님을 자상하신 아버지로 부르게 되면 율법이 전혀 무겁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도리어 율법에 대한 기쁨이 생긴다.
신 6: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시편 1편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9편

6.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에 대하여 기뻐하게 될 수 있는가이다.
(1)율법은, 우리가 아무리 그 것의 속성과 효력을 조사하고 묵상해도,
하나님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못한다.
도리어 우리를 정죄로 이글 뿐이다(롬 8장 참고)
사도 바울의 고민
그리스도 없이 율법(구약)만을 공부하다 보면 은혜가 없어져 버린다.
복음이 없이 율법을 연구하다 보면 종교개혁적 입장에서 보면 한참 잘못된 것이다.
중세 유명론의 잘못: 우리 안에 율법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다.
그리스도 없이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다.

(2)우리를 하나님 사랑으로 인도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명상하고 본받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사랑으로 이끌림을 받는다(바렐라르, 새 경건 운동, 인문주의, 자유주의).
처음 신앙이 중요하다.
성화론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회할 때에 처음 예수 믿을 때를 때려줘야 한다.
성도들은 장로나 권사나 모두 어린아이다.
자꾸 올려드려야 한다. 이것은 아부가 아니라 성도가 연약하다.
직분을 받으면 마귀의 공격이 훨씬 심해진다.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
마귀는 연약한 장로, 권사들을 공격한다.
잘할 때, 첫 사랑, 처음 신앙을 제시해 준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까?
자유주의는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닮자고 한다.
그들은 인격적으로도 훌륭하다.
그들은 인격적인고, 낙관적인 인간관이 문제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다.
바르트, 불트만이 그들을 비평함. 케리그마(부활)를 신화화시킴.
역사적 시실로서의 십자가를 믿지 않음.
대부분이 인본주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 십자가와 부활이 함께 선포되고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신본주의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아야한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은 복음을 위해서.
그러나 이를 통해서만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믿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
피차 주고받은 사랑
하나님께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율법을 준수할 수 없다.
받은 것이 많다. 죄 용서(십자가를 통해서),
복음 설교를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일깨우기 위해서 해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다(아버지께 초점).
윤리가 실행되도록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이 변화된다.
십자가 설교를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고 잘하면 감격적 설교가 된다.
살리는 십자가 설교를 해야 한다. 가슴이 뜨거워져야 한다.
율법은 일점, 일획의 과감 없이 지켜져야 한다.
예수를 믿고 나서 아담의 본성은 그대로 있다.
우리는 여전히 율법을 못 지킬 상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

(3)그리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면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고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율법을 넉넉히 지킬 수 있다.
울법을 준수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십자가 즉 환난, 박해, 시험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전 15:57, 요일 5:4-5, 고후 2:14, 롬 8:35-39)
술람미 여인(아가서)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십자가(환난, 박해, 시험)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고 율법과 상관없이 살고 있다는 증거.
소금과 빛이 되라는 설교를 제대로 해야 한다.
멘투멘 수업이 굉장히 중요하다.
소금과 빛을 가르치기 전에 십자가를 가르쳐야 한다.
항상 우리는 싸워서 극복하고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고난은 없을 수 없다.
안셀름의 만족설

(4)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지켜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율법 자체를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어진다(롬 5:5).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면 율법을 기쁨을 준수하게 된다.
우리가 율법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은혜를 주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켜 드려야만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한 싸움.

7. 율법은 구속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사랑이심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은혜가 충만하지 않고는 율법 준수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은혜는 어떻게 받는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그를 믿을 때 죄 용서를 받는다.
죄용서를 받으면 우리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준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이를 준수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십자가를 지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야 한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승리하신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아버지 보좌 앞에 나아가 부르짖어야 한다(히 4:14-16).
그럴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넘치게 부어주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기쁨으로 지킬 수 있다.
십자가와 율법은 순환적인 설교가 되어야 한다.
구약의 율법을 설교할 때 마음, 십자가 사랑을 터치하라.
주님이, 성령이 도우시면 능히 할 수 있습니다.
하라 하지 말라는 율법이고, 해 주셨다는 복음이다.
십자가의 은혜에 부딪쳐 깨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
지금의 시대는 60, 70년대만큼 힘든 때가 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참 위로를 해야 한다.
너무 지쳐있고, 무력하고, 첫 사랑이 식어 있다.
다시 건축해야 한다.

-루터의 설교관 2010년 10월호 “목회와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