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실천신학

복지요결을 읽고

예림의집 2015. 7. 15. 17:09

복지요결을 읽고

    

 

 

처음 이 복지요결이라는 책? 혹은 자료를 구하고 나서 든 생각은 정말로 양이 많아서 과제하기 참으로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과제용 도서에 비하면 분량이 그렇게까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인쇄된 책으로 보는 것과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것은 그 압박되는 정도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내용도 전문적인 내용, 그것도 어설프게 배워서 아직은 낯설기만 한 사회복지 영역이었으니 그 부담은 더더욱 크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읽는데에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체가 정말로 편안하게 다가와서, 마치 먼저 이 길을 걸어본 사람이 후배들을 위해 차근차근 조언을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자료를 읽으면서 공감을 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겪어본, 그리고 앞으로도 겪게될 내 상황과 연관해서 볼 수 있었던게 컸던 것 같다. 내가 처음 사회복지에 분야를 접한 것은 아르바이트를 할 요량으로 시작했던 장애인 활동보조인 때였었는데, 활동보조인, 자립생활, 장애인 당사자, 자기결정권, 이런 이야기를 위주로 들어가면서 시작하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방향으로 관심이 가고 또 그러한 방향의 사회복지를 지지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자료를 보면서 당시에 들었던 내용이랑 연관되는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장기요양보험의 요양보호사와 복지용구와 관련된 일인데, 이런 일을 하다보니 사회 사업 분야를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수행하고 또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몇몇 단원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제부터는 그 단원들을 읽고 느낀 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사람과 사회 - 사람다움 사회다움에 관한 단원이었다. 이단원은 사실 첫머리부터 딱 눈에 들어와 박혔다. 앞쪽 부분에 있는것도 물론 영향을 주었겠지만 사람, 사람다움이라는 것이야말로 사회복지의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주 업무인 사회복지 영역에서 사람에 대해 잘 모른다면 어떻게 공부를 하고 또 현장에서 일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다움을 강조하면서 사람 그 자기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때문에 서평을 쓸 때 이부분만큼은 꼭 이야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딱딱한 말보다 사람답게 산다는 부드러운 말로 표현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 단원에서는 사람다움에 대해 이야기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다움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다움. 사람이 사람다움을 갖춰야 한다면 사회 역시 사회다움을 갖춰야 한다고 자료는 말하고 있다. 사실 사회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사회복지사가, 당사자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사회복지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약자도 포용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만한 여유, 그리고 그를 위해 자원을 전달해줄 수 있는 능력과 합의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복지가 샘솟아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복지라고 한다면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도록 이 자료는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나는 먼저 사람이 자율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가치에 따라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의료적 처치를 한다고 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동물에게도 충분히 베풀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오히려 물질적으로는 다소 모자라더라도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한편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 자신이 속한 사회 내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지니게 하는 것 또한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이건 생각해 냈다기 보다는 요양보호 일을 하면서 만난 어르신들을 보고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인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복지 대상이 될 정도의 노인들은 소외된 계층이다. 특히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의 경우 이제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역할은 부모로서의 역할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분들에게는 일거리가 주어져 있지 않다. 직업같은 의미나 소일거리 같은 일, 아니면 하다 못해 친구 사이에서나 모임 사이에서 주어지는 역할 같은 일조차도 기대되지도 주어지지도 않는다. 물론 기관에 따라 예외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갔던 곳들에서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때문에 그분들은 병의 경중에 관계없이 무기력해 보이셨고 의욕이 없어 보이셨다. 종종 가족들에게 더 매달려서 자주 보고싶다고 자주 찾아오라고 조르시는 경우나, 자식들이 자신을 버렸다고 절망하는 경우, 주변 어르신들을 감독하면서 마치 반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하시는 경우,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끊임없이 자신이 젊었을적 해왔던 일에 대해 늘어놓으시는 경우 등 조금이라도 남들에게 의미있기 위해서, 자신의 역할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었다. 만일 그분들에게 요양원 내에서 조그맣고 사소하게라도 적당한 역할을 부여한다면 그분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인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도 아니고 실행하기엔 위험부담이 크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의미에서는 요양원보다 집에서 생활하시는 복지대상자 어르신의 상황은 훨씬 나아보였다. 이웃, 주변 모임, 하다못해 교회나 주변 상인들과 교류하면서 나름의 역할을 부여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사람 만나는걸 좋아하고 모임에 활발하게 참여하시는 어르신들이 그렇지 않은 어르신보다 평균적으로 더 건강해 보이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보였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사회 내에서 부여받은 역할은 분명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사회복지에서의 사회의, 사회다운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역할과 가치를 부여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주변과의 관계를 만들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모든 구성원의 복지를 단독으로 책임져 줄 수 있을만한 역량을 지닌 사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어느정도 부분은 당사자와 당사자의 주변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당사자와 당사자를 연결해줄 수 있는 끈 역시 공짜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사회 구성원들은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끼리의 관계에 어느정도 이득이나 친분 여부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혼자서 아무런 역할 없이 혹은 역할이 희박한 채로 방치된 사회 구성원이 이런 이득이나 친분을 가질 수 있을까? 혹은 유지할 수 있을까? 별로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앞으로 내가 일을 하면서 이런 점을 고려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눈에 띈 단원은 사회사업 방법이었다. 이 단원의 핵심은 인사하고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고 감사하기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주 단순하게 단계를 적어놓으면서도 또 읽다보면 납득이 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강조한 것은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공감이 많이 갔다. 사회복지의 중요한 수단은, 자원과 수요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자원과 수요자 등에 대한 정보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물론 서류나 자료에서도 어느 정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정보는 손이 많이 가는데다가 그렇게까지 살아있는 정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정보의 출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람에게서 정보를 어떻게 끌어오느냐, 그것이야말로 관계형성을 두루 해두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인사하기는 이런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안면이 있다는 것은, 아니 안면을 만든다는 것은 TV광고와 같이, 이러한 사람 혹은 기관이 있다는 정보를 알릴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자원이나 수요자가 찾아올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꾸준하게 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매우 클 것이다. 앞으로 일을 하면서 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것은 이 다음의 묻고 의논하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묻고 의논하는 대상은 자원의 제공자나 동료 또한 될 수 있겠지만 결정적으로는 서비스 혜택을 받게 되는 당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외의 부분은 각 센터나 기관의 매뉴얼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당사자에게 물어서 정확한 욕구 파악을 하고 방법을 의논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실현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현실에 맞추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리 효율적이고 현실적이어도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고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서비스는 반쪽짜리밖에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앞에서 말했던 사람다움과도 연결되는데, 스스로가 스스로의 일을 결정하지 못하는데 그것을 사람답다고, 복지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뒤의 감사하기에서도 나오지만, 당사자와 함께,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면 심부름을 하는 형식으로 인사나 감사 등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 그것은 이 서비스의 주도적인 역할을 당사자가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당사자의 역량이 필요하고 하다못해 당사자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젊은 장애인의 경우, 아니면 한창 사회활동을 할 연령대의 수급자의 경우 주체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자신에게 제공되는 복지 서비스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이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아동이나 노인, 지적 장애인 같은 경우는 그러기가 힘들다. 내가 가장 자주 접하는 노인층의 예를 보자면, 그분들은 서비스의 내용을 설명할 때 알아서 잘 해주겠지 하면서 적당히 설명을 넘기고 일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분들에게 서비스 내용의 요소요소까지 다 숙지하도록 하는 것은 무리지만, 핵심적인 내용과 원리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도와드리고 또 잊지 않게 문서 등의 자료를 제시할 수 있는, 또 아동이나 지적 장애인의 경우 보호자나 필요에 따라서는 당사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의 역량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단원은 맨 마지막의 현실론 부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실제적인 사례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로 읽어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단원에 나와 있는 내용에 대해 그렇게까지 동의할 수는 없다. 물론 정신적인 부분과 지향하는 자세로서는 훌륭한 생각이지만, 과연 현실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이 일을 하면서 주체적인 입장에서 일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어떤 분야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 바랄 나위도 없고 이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는 그렇게까지 자율적인 입장에서 일을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사가 과연 매뉴얼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나마 기관 내, 센터 내의 매뉴얼이라면 조금 개선할 여력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많은 부분에서 국가가 틀을 딱딱 정해놓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거기서 얼마나 자유롭게 사회복지사가 이상을 추구하고 다른 방안을 간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한편으로는 매뉴얼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한계, 역량적인 한계가 찾아올 수가 있다. 한 사회복지사에게 주어진 역할이 많다면, 자신이 맡은 사업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업들의 일부까지 돕게 되는 의외로 흔한 경우에 처하면 어떨까? 그 상황에서 열심히 이상을 따를 수 있다면 물론 훌륭한 사람이겠지만, 많은 경우 그러지 못하고, 혹 노력한다 해도 번아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복지를 할 때 이런 분야에서 사업의 지속성이나 금전적 분야를 완전 무시할 수 있을까? 어찌어찌 자원을 추가로 발굴해서 조금이나마 연결한다고 해도 형평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꼭 현실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역할은 이상을 추구하고 현실을 고려하되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말로 쓰면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이상론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일을 해나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볼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아직은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자신에게 던져지고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해서 이 단원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복지요결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이 어떤 곳인지, 또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떤 것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는 자료였다. 지금은 과제를 위해 읽었지만 여기 담긴 내용들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질문하고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