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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l, 1822-1889)

예림의집 2014. 10. 22. 15:41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l, 1822-1889)

 

-구 자유주의의 대부

-헤르만, 하르낙, 칼 바르트, 불트만 등에 영향을 줌.

-초월적인 신학을 믿지 않는 계몽주의 시대

-레씽: 흉한 넓은 도랑(과학, 역사 <-----> 신학, 종교)

-주교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보수적인 영향과, 계몽주의적 영향을 동시에 받음.

-칸트의 도덕주의적 종교를 전락시킴, 헤겔의 철학적 종교 해석도 싫어했다.

-나름대로의 신학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발전시킴

-형의상학적인 이성은 근본적으로 믿을 것이 못되고, 역사적인 확실성, 사실성 등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찾자.

-정․반․합의 신학(헤겔)을 싫어함.

-하나님이 누구냐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본질을 알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이, 그 개념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때지자는 주장이다.

-주관주의, 심리주의, 개인주의로 종교를 전락시킴

 

*리츨은 프러시아 개신교의 주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면서 당시 슐라이어마허, 칸트, 헤겔, 바우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때는 이미 계몽주의 사상과 과학의 발달로 기독교는 점점 쇠퇴하고 있었을 때였다. 리츨은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있는 갈등은 지식에 있어서 ‘과학적’ 유형과 ‘종교적’ 유형이 있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 생겼다고 믿었다. 과학적 지식은 순수한 이론적 객관성을 근거로 추구되고 종교적 지식은 실재에 대한 가치 판단들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인식자의 궁극적인 성취를 위하여 사물이 가지고 있는 가치라는 측면에서 실재를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과학적 지식은 다만 사물의 존재 양식에 대한 것인 반면 종교적 지식은 ‘항상 사물이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들 속에서 인지할 수 있는 가치에 달려있다고 한다. 보통 가치라는 말의 의미는 윤리적인 것이지만 리츨에게는 단순히 윤리적인 것만 아니라 실재의 주어진 사실 혹은 관점으로 광범위하게 해석된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모든 신학적 교리는 기독교인의 삶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칸트가 주장했던 것처럼 ‘물자체’(things in themselves)는 우리가 모르고 오직 그것들이 우리와 연결됨에 따라 우리에게 윤리적, 실제적 의미를 부여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noumena <---> phenomena

*ought to(~해야만 한다)

-당위적 가치

-나무: 저 나무가 어떠해야만 하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가치라는 것은 일종의 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의미가 있다.

-사실은 칸트에서 나온 개념이다.

 

 

1) 하나님

그는 슐라이어마허처럼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혹은 결과 그리고 그 결과들에 부응하는 가치 판단들에 의해 그 존재 의미를 논한다. 이러한 주장에는 전통적 기독교의 신관은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자연과 도덕의 원리요 그의 근본적 성품은 모든 자를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인격이나 속성은 오직 우리를 통해서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리츨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학의 주된 긍정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그는 덧붙이기를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인격적이실 것과 ‘세속을 초월 하신 분(supramundane)’이기를 요구한다고 한다.

-신인 제한적 개념(limiting concept)

-하나님은 모든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모든 자를 구원하신다고 주장.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금 역사하시는 성령도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하나님에 대한 본질과 관계를 동시에 탐구해야 한다.

-리츨은 본질은 없고 관계만 있다.

 

2) 하나님 나라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가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선임을 파악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이신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이다. 이것 외에 ‘하나님 존재’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리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며 선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 자신의 최고 목표이며 선이다. 리츨은 영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에 선행하고 자연적인 것의 가치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삶이란 자연적인 영역을 영적인 것 밑에 놓는 여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다고 믿는다. 하나님 나라란 인간과 하나님의 공통적 도덕적 목적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랑의 동기와 상호적, 공통적 행위를 위한 사람들의 연합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리츨의 윤리관은 개인적이 아니라 집합적이요 미래 지향적이 아니라 현실적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윤리관은 ‘사회 복음’(social gospel)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이 현실화되고 우리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주장.

-리츨의 영적인 것은 가치, 자연과 영적인 세계를 잘 조화하고 세속적인 것에 메이지 않고 고차원적인 가치로 주장.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할 때 하나님은 율법적인 요소가 없다고 보아, 죄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3) 인간(죄론)

리츨은 인간의 도덕은 항상 개인적인 문제라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죄나 의가 다른 사람에게 전가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죄란 어떤 법적인 범주에서 생각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법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츨은 또한 죄를 자유의 오용 혹은 이기심으로 보고 죄는 자유와 도덕적 가치의 바른 관계를 방해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죄를 개인적 차원의 고의적인 그릇된 행위로 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기독교 신앙의 최고의 선이기 때문에 죄란 그 나라와 반대되는 것이다. ‘죄의 나라’ 곧 “죄악된 행위와 반응을 모두 망라한 것으로,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이기적인 경향을 전제하며 그것을 증폭시키는” 나라의 존재를 가정했다.

-죄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오용하여 다른 곳에 쓰는 것

-이기심

 

4)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성품(person)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그의 가치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기독론은 어떻게 그리스도가 나를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아는 것이 그를 아는 길이라는 것이다. 전통적 교리에서 그리스도가 영원전부터 선재하셨다고 가르치는 것은 헬라 철학의 영향이고 그러한 것은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원성, 신성 같은 것은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를 크게 벌어지게 하는 것이요 우리로 그를 본받는데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이란 윤리적 판단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가 신성하다는 타이틀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임무에 극도로 충성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의 신성을 고백하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고유하고 특별한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은 예수도 우리처럼 순간 순간 그의 의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이 전제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을 수 있고 우리도 그리스도의 신성의 특징을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의심이 가지만 구원의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충성하고,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주장

-예수님은 자신의 의를 유지하기에 무척이나 애를 썼으며, 우리도 그를 닮을 수 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면, 우리가 닮을 수 없다고 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한다.

 

5) 구원

구원이란 모든 사람에게 있는 도덕적 성숙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믿음이란 예수의 과거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현재, 즉 그가 오늘날 우리 안에서 성취한 도덕적 가치에 근거한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속했다는 정통교리를 부정한다. 구원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깊은 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것으로 본다. 리츨은 모든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사람 안에 내재하는 도덕적 가능성을 강조하는 보편적 구원을 말하고 있다.

-인간에 내제되어 있는 현실의 가능성

-아담의 죄의 전가는 도무지 믿을 것이 없다고 주장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의리에게 전가된다는 것도 못 믿는다.

-우리는 따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로워져야 구원이 이루어진다.

-개인적, 주관적

7) 평가

①리츨은 복음의 가치를 중요시 하지만 그 가치란 성경을 떠난 가치요 인간의 자율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복음이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가치란 없고 내가 그 복음을 판단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뿐이다.

-자율적인 가치를 강조

②그리스도의 가치를 인간과의 관계에서 말하지만,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모든 인류가 따를 가치가 주어질 수 있겠는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면 신적 가치가 있을 수 없다. 사람에 따라 좀 더 낫고 못하고가 있겠지만 모든 인류가 모든 세대를 걸쳐 따를 가치라면 분명히 다른 차원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가치라 할지라도 아무에게나 종교적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술라이어마허의 개포와 같은 주장

-예수는 우리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다.

-본질이 없는 가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③리츨 역시 칸트의 본체적/경험적 이원론에 빠져있다. 가치라는 세계가 바로 본체론적 세계에서 오는 그 무엇이다. 즉 칸트처럼 종교에 있어서 형이상학적 모습을 삭제하고 윤리적 모습으로 대체시킨 것이다. 물론 리츨은 종교의 가능성을 칸트보다 더 열어 놓았지만, 즉 하나님이 행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알려질 수 있다고 하였지만 칸트의 생각과 큰 차이는 없다고 하겠다.

④리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다. 단지 하나님의 내재성, 즉 인간과의 관계만을 강조한다. 비록 하나님의 초월성을 전제하지만 별 의미 없는 초월성이 되고 만다.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주는 가치가 있기 전에는 그 초월성은 의미가 없다. 나의 가치적 판단이 초월성인 것이다.

⑤그의 구원관은 은혜 보다는 행위가 강조되는 구원관이다. 이것은 구원이라기보다는 자아발견에 불과하다.

-주관적인 자기 성찰, 반성, 깨달음.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 programmatic(하나님의 계획)과 paradigmatic(범례적, 모범)

-나도 열심히 하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주장.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이 부여하신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오순절 사건: 갈보리 사건이 단회적인 것처럼 오술절 사건도 단회적이다.

⑥그의 신학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을 배제한다. 반틸이 지적하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간이 만든 우상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⑦제임스 리치몬드는 “어떤 점에서 리츨의 신학은 종교를 그 자체의 어떤 제한된 영역으로 후퇴하게 하고, ‘인간의 지식’이라는 보다 넓은 영역을 ‘비종교적(즉 세속적)’과학이나 철학에게로 내던져 버린 듯하다”라고 평가한다. 즉 리츨은 신학과 과학의 잘못된 이원론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세상과 중립영역을 찾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좁은 영역에 가두어버렸다.

⑧리츨의 신학은 19세기를 걸쳐 20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슐라이어마허 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큰 영향을 주었다 (빌헬름 헤르만과 아돌프 하르낙, 에른스트 트뢸취, 월터 라우덴부쉬 등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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