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기독론 시험 요점 정리

예림의집 2014. 10. 19. 22:39

 

기독론 시험 요점 정리

 

1. 소위 역사적 예수 연구와 주요한 상승 기독론 자들에 기독론 적으로 비판하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경험적 지식을 관념화 혹은 논리화하여 그의 존재와 경륜에 관한 계시를 추출하고 이로부터 궁극적인 신관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고자 하였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를 단지 역사적, 실존적으로 추구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계시의 자료일 뿐이다. 이들에게는 정통 기독론의 요체인 중보자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의 위격적 연합이 부정된다. 그들은 이방종교의 신화를 말하면서 예수의 신성뿐만 아니라 인성도 부인하였다. 왜냐하면 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며, 한때 신이 아니었던 사람은 신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성육신을 신성의 부정이거나 포기로 본 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허무한 케노시스 교리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성은 난도질당하였다. 이것은 중세의 유명론자들의 불가지론적 경향이 회의주의로 고착된 것이다. 그들의 예수에 대한 정의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의 죽음의 값을 치르고자 하심이 아니라 단지 인성을 최고로 발현한 모범을 제시할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의 신학이 더 이상 기독교 신학일 수 없는 논리적 한계가 들어난다.

상승 기독론자들은 슐라이엘마허의 주관주의와 헤겔의 범신론적 역사 진화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신학을 주장한다. 그들은 주님을 비신화화된 예수, 사람의 대표, 새 존재의 담지자, 미래의 사람, 인간의 운명이 완전히 실현된 유일한 최상의 경우로 파악한다. 또한 그들은 기능기독론을 주장한다. 그들은 성육신에 기초한 위격적 연합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통 기독론 교리를 헬라화된 교설로 여긴다. 또한 그들은 과학적 신학을 주장해서 비신화화 이론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주의는 경험 전의 진리를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정통 기독론 교리를 승리자 그리스도에 바탕을 둔 것으로 비판하고 궁극적으로 종교 혼합주의에 이른다. 그러나 구원자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것이지, 우리의 필요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해할 만하게 던져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경비평을 학문적 무기로 삼는다.

역사적 예수 연구와 상승 기독론은 결과적으로 성경을 부인하고,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며 나아가 예수를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그들은 종교 혼합주의로 빠져 하나님과도 멀어졌다. 결국 그들은 참된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그들의 비극은 영원하고 무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자신의 이성에 가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2.구원협약과 언약을 개혁주의 관점에서 논함?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축복을 주시기 원했지만 인간은 이를 거부하고 저주를 받았다. 일류의 첫 조상인 아담이 지은 죄는 그의 모든 후손에게 죄책과 타락으로 영원히 전가되게 되었다. 원죄 이제 인간의 힘으로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었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시어, 구원하고자 계획하셨는데 이를 구원협약이라 한다. 구원협약이란, 구원의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성자 예수님)이 참 인간이 되어서 그 죄를 담당하심으로 그 값을 치루시고, 이를 믿는 자는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는 내버려 두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구약을 통하여 인간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 신약을 통하여 이루시고, 전파하시고, 완성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없으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으신 인간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다시금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삼위 하나님 간에 약속하셨다. 창세전(영원 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실 것을 계획하셨는데 그 방법으로는 제 2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참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죄의 형벌을 대신 감당하시어 그 의를 이루시고 이루신 그 의를 인간에게 전가하심으로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유기(버려두심)를 하시려고 작정하셨다. 이를 구원협약이라 한다.

 

3.그리스도의 비하를 신인양성을 위격적 연합의 관점에서 논하라.

먼저 비하를 논하기 전에 위격적 연합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이는 2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양성 교리에 의한 것이다. 양성의 연합은 본성이 주체가 아니며 위격이 주체이다. 양성은 교통하지만 두 위격이 아니라 본성이 두 개라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예수님은 위격적 고난의 감수하셨다.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에 따라 고난을 당하셨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비하이다.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공로이다. 예수께서는 항상 양성으로 중보 하셨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인성에 따라서 하나님의 어머니라 부름이 합당하다. 위격적 연합에 비밀은 위격 자체에 있다. 취하심이 비우심이고, 비우심이 연합이고, 성육신이다.

그리스도의 비하는 자기를 비우신 허기와 자기를 낮추신 비기로 구분된다. 그리스도의 비하는 위격적 연합의 결과이다. 허기란 그리스도가 신적 위엄을 포기하고 종의 형상을 가진 것을 말한다. 비기는 그가 인간의 육체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여' 고난을 당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비하는 성육신, 사심, 고난당하심, 죽으심, 장사지내심이다. 어디에나 계신 분이 인간의 몸속에 태아로 한정되셨다. 모든 것의 창조주의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성으로 제한을 받으며 사셨다. 만왕의 왕이신 주께서 괴수들에게 고난을 당하셨다. 죄가 터럭만큼도 없으신 순전하신 예수께서 인류의 모슨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무덤에 장사되셨다. 이 모든 것이 비하인 것이다.

 

4.그리스도의 승귀를 신인양성 위격적 연합 관점 논하여라.

승귀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나님 우편에 앉으심과 재림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온전한 연합 가운데 이루어졌다. 신, 인 양성의 2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쓰고 높임을 받아서 저주를 깨고, 그 요구를 만족하여 통치하는 자리에 오르신 것을 말한다. 이 예수님의 양성은 예수님의 성육신 이후 계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서로 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으며, 분할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는다. 이것이 위격의 통일성이다.

한 인격 양성의 교리에 따라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육신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성취이며, 구원의 완성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육신적이며 동시에 영적이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삼중적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의 완성과 그 중보자의 나라가 유대인의 나라가 아닌 보편 국가였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적 통치권을 회복하셨음을 의미한다. 셋째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배한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은 문자적인 의미를 뛰어 넘어 그가 교회와 우주에 대한 지배권을 받으신 것과 그에 합당한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통치한다는 의미는 그가 교회를 통치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가 하나님의 우편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며 우리의 연약함을 지금도 감당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성령을 통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인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의미는 그가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승리에 대한 마지막 표지이다.

 

5. 그리스도 3중직 속죄론, 구속사적 구원론적 관점에 관하여 논하라?

첫째, 선지자직

그리스도의 직분 중 제일 먼저 강조되는 것은 선지자직이다. 선지자의 역할을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이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러나 그가 선지자보다 위대한 것은 그의 가르침은 단순히 언어적인 것을 넘어서 성육신, 속죄의 죽음, 부활, 승천 등 실제적이며, 구약의 여러 가지 예표를 이루는 완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 편의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분이셨다.

둘째, 제사장직

선지자와 제사장은 모두 하나님께 임명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여 백성에게 이야기 하는 반면,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는 역할을 한다. 즉 선지자가 윤리적, 영적인 의무, 책임, 특권을 강조했음에 비해, 제사장은 하나님께 올바로 나아가기 위한 요건인 의식의 준행을 강조했다. 예수님 역시 인간의 연약함을 감당하기 위해 대제사장직을 감당하였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제사장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제사장의 직분은 속죄와 대속의 직분이다. 구약의 제사에서 제사 때 드려지는 예물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 속죄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표적인 것이고, 그리스도에게 와서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유월절 어린양으로 묘사한다. 주님은 우리를 대표하여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그것은 그분의 기도와 죽으심이다.

셋째, 왕직

그리스도의 마지막 직분은 왕직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피조물의 통치자임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성육신 이후 그리스도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 땅을 다스린다. 그것은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믿는 자들을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역할을 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하고 있으며, 영적인 왕국이다. 이 왕국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 땅에 먼저 시작되어 있고, 지금도 진행단계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다스림은 주심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은사를 주심으로 우리를 다스리신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드리셨기 때문에 왕이시다. 왕과 제사장은 겨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