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총론
주석 소개
레위기 주석 개관
레위기 최고의 주석
Jacob Milgrom, Leviticus 1-16 (Anchor Bible; New York: Doubleday, 1998).
________, Leviticus 17-22 (Anchor Bible; New York: Doubleday, 2000).
________, Leviticus 23-27 (Anchor Bible; New York: Doubleday, 2001).
________, Leviticus (Continental; Philadelphia: Ausburg Fortress, 2004). 요약본
레위기 학계의 히말라야 산이라고 할 수 있다. 87세(2010년)로 별세할 때까지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오경의 제의법에 헌신하고 산 학자가 자신의 평생의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 앞의 세 권의 레위기 주석이다. 총합 2688쪽으로 방대하다. 레위기와 관련된 내용이 거의 하나도 안 빠지고 다 망라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단순히 학적인 연구들의 집대성일 뿐 아니라 그의 일생의 업적들이 레위기 학계의 가장 중요한 연구들이었다. 이전의 연구들은 거의 다 그에게로 흘러들어갔고, 이후의 연구들은 그의 이 magnum opus와와의 싸움 없이는 새로운 연구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의 방대한 업적에 질리시는 분들은 네 번째의 주석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석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닌 것 같고, 위의 세 책의 내용을 문장을 발췌해서 요약하는 식으로 정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견해들의 요약판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 그러나 당연히 위의 세 권과는 비교가 안 된다. 네 번째 책을 읽으면 갈증만 심해질 뿐인 듯 하다.
G. J. Wenham, The Book of Leviticus (NICOT; Grand Rapids: Eerdmans, 1979).
Wenham의 글들은 항상 최고로 평가 받는다. 특히 그의 오경 주석들의 경우는 다 오경 각 책의 주석으로 가장 중요한 주석들로 평가된다. 참고로 그는 창세기, 레위기, 민수기의 주석을 썼다. 이 레위기는 그의 오경 주석들 중 가장 빨리 나온 것이다. 그의 이 주석은 오경 내에서도 특히 복잡하고 미묘한 레위기와 관련하여 굉장히 중요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 이후의 모든 복음주의 주석들은 내가 보기에는 Wenham 주석에 대한 토론서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복음주의의 레위기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이 책을 마스터해야만 한다. (현재 번역 중. 여러 가지 다른 일로 인해 진도는 좀 안 나가는 편이지만)
(전정진,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 2004년]은 Wenham의 책을 대중적으로 해설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Wenham의 주석을 읽는 것이 아주 좋은 공부 방법이 될 것이다.-반드시 읽을 것. 한국어로 된 것 중에 가장 정확한 책)
-내년 봄 학기 예상. 평생에 시간을 내어 집중적으로 공부할 것.
Mark Rooker, Leviticus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0).
Wenham 주석 이후의 복음주의 학계의 기여들과 보수적인 시각을 담은 레위기 주석으로 참고할 만하다. 요즘에는 이 책처럼 대놓고 모세저작권을 드러내는 책이 없다는 점에서 보수주의 학계에 귀감이 될 만 하다. 이 책의 상당히 큰 강점은 아주 명쾌하다는 것이다. 아마 번역된다면 목회자들이 상당히 좋아할 듯 하다.
Derek Tidball, The Message of Leviticus (Bible Speaks Today [BSK]; London: IVP Academic, 2005).
이 책을 읽고 느낀 첫 번째 소감은 Wenham 주석의 목회자용 요약판을 읽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마 Wenham 주석을 꼼꼼히 읽은 사람은 레위기 해석과 관련해서는 굳이 이 책을 읽고 싶어할 것 같지는 않으며,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레위기의 각 부분을 가지고 어떻게 신약과 연결시켜 읽고, 또 설교에 적용시킬 것이냐 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레위기로 설교하고 싶다면 이 책을 빼놓지 않기를 바란다.
-신약과의 연결고리
-각 부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앨런 로스, 거룩과 동행 (서울: 디모데, 2009) (Allen Ross, Holiness to the Lord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2]).-비추
학술적으로는 그다지 얻을 것은 없는 것 같다. 또 기본 분석이 그다지 좋은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설교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말 레위기를 제대로 설교하고자 한다면 Wenham을 한 번 제대로 공부하고, Tidball의 적용을 잘 살려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목회자로서 레위기 설교 분야의 레전드가 되지 않을까? 앨런 로스는 그 일이 가능해지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의미는 있는 것 같다. 워낙 쓸만한 레위기 주석이나 자료가 한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존 E. 하틀리, 레위기 (WBC; 서울: 솔로몬, 2005). (Leviticus [WBC 4: Dallas, Word Books, 1992]).-비평학 적인 요소가 강하다. 각 문제마다 역사적 연구를 잘 해 놓았다.
이 책은 복음주의 쪽 책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WBC 시리즈 중에서 가장 비평학적인 성향이 강한 책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 책은 레위기 각 본문에 대한 연구사를 위해서는 필독서이다. 저자 하틀리는 놀라울 정도로 방대한 문헌들을 놀랄 만큼 잘 정리해주고 있다.
레위기로 쓸만한 주석이 한국어로 번역된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책은 번역을 해놓았다는
점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학문적으로 레위기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꼭 읽기를 바라고, 목회를 하면서도 비평학적인 요소들 사이로 좋은 주석학적 분석을 얻고자 한다면 역시 상당히 좋은 책이다.
구약의 율법의 이해
-율법을 이해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간 부분에 깔려있는 철학이 정말 중요하다.
천박한 사람은
자유를 모든 법과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자유 속에서 강력한 법들의 법을 본다.
월트 휘트만(Walt Whitman)
from the “Notes Left Over: 18. Freedom”
-우리는 freedom from으로 보지만(죄로부터의 해방) 성경 전체에서 보면 freedom to(하나님의법)까지 보아야 한다.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종이라는 신분은 변하지 않는다.
Walt Whitman, “Freedom”의 전문(full text)
IT is not only true that most people entirely misunderstand Freedom, but I sometimes think I have not yet met one person who rightly understands it. The whole Universe is absolute Law. Freedom only opens entire activity and license under the law. To the degraded or undevelopt—and even to too many others—the thought of freedom is a thought of escaping from law—which, of course, is impossible. More precious than all worldly riches is Freedom—freedom from the painful constipation and poor narrowness of ecclesiasticism—freedom in manners, habiliments, furniture, from the silliness and tyranny of local fashions—entire freedom from party rings and mere conventions in Politics—and better than all, a general freedom of one’s-Self from the tyrannic domination of vices, habits, appetites, under which nearly every man of us, (often the greatest brawler for freedom,) is enslaved. Can we attain such enfranchisement—the true Democracy, and the height of it? While we are from birth to death the subjects of irresistible law, enclosing every movement and minute, we yet escape, by a paradox, into true free will. Strange as it may seem, we only attain to freedom by a knowledge of, and implicit obedience to, Law. Great—unspeakably great—is the Will! the free Soul of man! At its greatest, understanding and obeying the laws, it can then, and then only, maintain true liberty. For there is to the highest, that law as absolute as any—more absolute than any—the Law of Liberty. The shallow, as intimated, consider liberty a release from all law, from every constraint. The wise see in it, on the contrary, the potent Law of Laws, namely, the fusion and combination of the conscious will, or partial individual law, with those universal, eternal, unconscious ones, which run through all Time, pervade history, prove immortality, give moral purpose to the entire objective world, and the last dignity to human life.
-모든 시대를 관통하고, 역사에 항상 존재하고, 불멸성을 가진 법.
-율법은 내가 어길 수가 없는 법이다. 어기려면 죽음밖에 없다.
-율법은 하나님의 세상 운행 원리를 규례 형태로 담아 놓은 것
-레 18장-20장의 근친혼에 관한 법
-진짜로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정말로 구원받은 표징은 그의 행동이 정말 성경에서 요구 하는데로 불평하지 않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다.
23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24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마 23:23-24)
-예수님의 강조점, 궁극적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자
-의롭게,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행하지 않음
-하나님경외, 하나님을 사랑을 놓치고 있고, 문자만 가지고 살아감
-율법 조항에 빠져 조항 해석에 빠지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는 마 23:23-24가 율법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루살이를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행위는 율법의 작은 것들에 매달려서 율법의 더 큰 것, 즉 기본 정신(23절, 의, 인, 신, ta. baru,tera tou/ no,mou( th.n kri,sin kai. to. e;leoj kai. th.n pi,stin [미 6:8???])은 놓치는 것을 가리킨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율법의 작은 것과 큰 것, 즉 기본정신을 다 지키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23절 끝의 말씀처럼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2-13)
-하나님에 대한 감정적 관계를 요구한다.
-항상 하나님은 율법의 문자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중점을 본다.
-지친 사람들에게 싫으면 하지 마시고, 멈추어 서서, 안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진짜로 소명 받은 사람은 내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특별하다. 지금 이순간은 지쳐 있지만
-그러면서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 종에 대한 지극한 배려가 있다. 무한한 자유.
-절대 레위기의 법 조항 하나 하나가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정리: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
여호와 경외=도를 행함
여호와 사랑=규례 지킴
레위기 제목
* 레위기는 70인경과 라틴어 성경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 히브리어 제목은 봐이크라(arqyw)이다. 이 이름은 레위기 히브리어 본문의 첫 번째 단어를 따온 것이다.
레위기에 대한 편견들과 그에 대한 평가:
Þ “레위기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한 개의 진주를 품고 있는 쓰레기더미다”(J. E. Smith, The Pentateuch (2nd ed.) (Le). Joplin, Mo.: College Press Pub. Co, [1993], 레위기 서론 부분에서 어느 “냉소적인 분석가”의 말로 소개됨. 그가 누군지는 밝히고 있지 않음).
-많은 레위기 책들이 이러한 식으로 서론을 시작하고 있다.
Þ 위와 같지는 않더라도 레위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It is perhaps the most neglected of the neglected biblical books.” — Samuel E.
Balentine, Leviticus (Interpretation; Louisville, Ky.: John Knox Press, 2002), 1-2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 아래 참조).
레위기는 아마도 성경에서 무시 받은 책들 중에서 가장 무시 받은 책일 것이다. (Samuel E. Balentin, 레위기 [현대성서주석]).
레위기를 잘 안 읽는 이유: 한 세 가지 정도
(1) 이 모든 제의와 상징들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영적으로 도움되는 것을 얻기가 힘듬
(2) 레위기의 내용은 너무 진부해서 현재 우리의 신앙 생활에 적용할 사항들이 별로 없음
(3) 우리가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서 하나님에 대해 배우는 것들에 비해 레위기의 율법들은 너무 엄격하거나 너무 사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음(Smith, The Pentateuch, 같은 부분을 가지고 수정).
(4) MC[My Comment]: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구약의 제사법들과 음식법, 정결법 등이 신약에 와서 폐지되고,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
레위기에 대한 높은 평가
유대인 아이들은 한 때는 레위기부터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다(Bernard J. Bamberger, Leviticus (The Torah: A Modern Commentary, 5 vols.; New York: Union of American Hebrew Congregations, 1979), 3:xix..
레위기는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버려진 황무지 같지만 그 깊은 곳을 인내를 가지고 파본 사람들에게는 금광과 같다(Smith, The Pentateuch, 같은 부분).
윌리엄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의 말: “제의적인 요구라는 측면에서는 이 책의 내용들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 그러나 이 요구사항들의 바탕에 깔린 원칙들은 옛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재 시대에 여전히 유효하다”(William Hendriksen, Bible Survey, [Grand Rapids: Baker, 1947], p. 228.) (Smith, The Pentateuch, 같은 부분에서 재인용).
“창세기는 시작의 책이고, 출애굽기는 구속의 책이고, 레위기는 속죄의 책이자 거룩한 삶의 책이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망가진 것을 보고, 출애굽기에서는 인간의 구속함을 받은 것을 보며, 레위기에서는 정결하게 되고, 예배하며 섬기는 것을 본다”(Merrill F. Unger, The New Unger’s Bible Handbook [Chicago: Moody, 1984), 85.
“따라서 레위기는 드높은 탑과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 희생 제사 의식들을 통해 독자들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의 속죄의 죽음을 바라보게 해준다. 19세기의 한 탁월한 저술가는 레위기가 신약신학의 모판과 같다고 상당히 적절하게 잘 말해주었다. 왜냐하면 이 책 속에서 우리는 기독교신앙과 교리의 초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레위기를 이런 맥락에서 풀이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볼 때 그 자체로 충분히 면밀한 연구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 내가 보기에 히브리서는 레위기의 주석으로 아주 탁월하기 때문이다”(R. K. Harrison, Leviticu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ies; 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Press, 1980], 9).
레위기가 현재에도 가치 있는 이유
백스터(J. Sidlow Baxter)는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하였다.[1]
(1) 레위기는 옛 이스라엘이 어떤 성품을 가진 존재인지를 잘 드러낸 것 만큼이나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에게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 하나님의 성품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여전히 레위기는 가치가 있다.
-규례 자체가 하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는 책이다.
-각 제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에 집중해야 한다.
-레위기를 알레고리가 아니라 직설적인 방법을 끄집어 내고서도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다.
-카페 레위기 매일 성경 원고. 참조.
(2) 레위기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의 바탕에 깔린 기본적 원칙들을 상징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이 원칙들은 바뀌지 않았다. 레위기의 제사장 제도와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에 위해서 성취되었으며, 따라서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들이 드러내주고 있는 영적인 내용들은 영원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 이것들은 가치가 있다.
-어떤 식으로 섬길 것인가.
-섬기는 방식은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내면에 깔려있는 정신.
(3) 레위기는 율법의 규례들을 현대의 법들이 따라야 할 원리들은 어떤 것들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레위기는 재산권, 결혼과 이혼, 자본과 노동, 종교와 국가 등등의 수많은 사항들에 대한 법들이 바탕에 두어야 할 원리를 말해주고 있다.
è MC: 이 레위기의 원리들은 구약의 율법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역시 중요하다.
-그 바탕에 깔린 원리가 가장 중요하다.
(4) 레위기는 상징적이고 모형론적인 가르침들의 보물 창고이다. 신약의 위대한 주제들이 구약의 위대한 모형들을 통해서 생생하게 설명되어 있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는데, 레위기의 무엇을 이루었는가?
-레위기를 잘 아는 만큼 예수님에 대해 잘 알게 된다.
레위기의 문맥(아래의 배경과 약간 중복)
-레위기를 법전으로 생각함
-조항에 억매이게 됨
-구약의 율법도 레러티브다.
-성막 신학과 연결속에서 읽어야 한다.
* 레위기는 주변 문맥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레위기 1:1이다.
* 레위기는 시내산 본문(출 19장-민 10장)의 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본문에서 특히 출애굽기 25-40장과 민수기 1-9장의 성막 관련 본문이 아래의 도식처럼 레위기의 앞뒤를 감싸고 있다.
출애굽기 25-40장(성막) 민수기 1-9장(성막)
* 이 구조 속에서 레위기의 바로 앞에 나오는 출애굽기 40:34-38의 본문은 아주 중요하다.
(1) 34-35절에서 모세는 성막에 강력하게 임하신 “여호와의 영광”(크보드 아도나이, hwhy dwbk) 때문에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막 건설 이야기 본문(출 25-31; 35-40장)의마지막 문단인 이 문단을 성막 건설 이야기의 서론 역할을 하면서 이 출 40:34-38과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는 출 24:15-18과 비교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우선 이 두 본문의 유사점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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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4-35 |
그리고 구름이 그 산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물렀다. 모세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
그리고 구름이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을 채웠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구름이 그 위에 머물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을 채웠기 때문이다. |
- 이 두 본문 사이에는 “구름”, “여호와의 영광”, “덮다”, “머무르다” 등의 단어들이 완전히 일치한다.
- 이 두 본문에서 가장 커다란 차이는 시내산(출 24:15-18)의 경우는 모세가 여호와의 영광과 구름이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성막(40:34-35)의 경우는 모세가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 참고적으로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는 이어지는 레위기 1:1의 여호와의 부르심이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심으로써 시내산처럼 성막도 계시의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출 25:21, 22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모세가 회막 안으로 들어갔다는 추정의 증거
-하나님의 계시의 장소가 이동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심.
-시내산을 이어 받아서 성막으로,
-고정된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이동하시는 하나님
(2) 36-38절은 광야 시기 내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성막을 통한 교제와 동행을 아름답게 목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좋은 관계는 언제나 자동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출애굽기 32-34장의 황금 송아지 사건이 보여주듯이 죄는 언제든지 이 관계를 깨뜨릴 수가 있다. 바로 이런 깨지기 쉬운 관계를 보존하고, 깨졌을 때 회복시키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이다. 레위기 1:1의 여호와의 부르심은 바로 이 방법을 모세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한 부르심이다.
-성막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 우리와 함께하실 수 없는 분.
-접근 가능한 하나님과 접근 불가능한 하나님의 변증법 메시지
-황금 송아지 사건.: 죄를 지을 경우 하나님의 진노를 부여줌
-성막을 둘러싼 레위인의 손에 칼이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거룩성을 가지고 있을 때만.
-이스라엘 죄가 (출 33:3)창궐할 경우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출 3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진멸하시는 하나님은 가장 간단한 사건이다.
-하나님의 성막이 진 안에서 진 밖으로 나가심.
-영혼이 빠진 육신처럼 하나님이 없는 이스라엘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상대할 수 있는가?
-회막과 성막은 같은 것이다.(출 40: 2)“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하나님은 죄인과 한 순간도 함께할 수 없는데, 죄 지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레위기이다. //
레위기의 배경
1. 공간적 배경
첫 절인 레위기 1:1과 마지막 절인 레위기 27:34는 레위기의 공간적 배경이 출애굽기 19-40장과 동일함을 보여준다.
- 이 점은 또한 출애굽기 19:1-민 10:10의 내용이 시내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도 상응한다.
- 레위기 1:1은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불러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신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 이 점은 출애굽기 25:21-22; 33:9 등과 상응한다. 하나님은 시내 산의 회막에서 모세에게 레위기의 율법들을 주신 것이다.
2.시간적 배경
레위기의 시간적 배경의 시작점은 출애굽기 40:17이다. 이 구절은 성막이 출애굽 제 2 년 1월 1일에 세워진 것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의 시간적 배경의 총착점은 민수기 1:1이다. 이 구절은 인구조사가 출애굽 제 2 년 2월 1일에 지시된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레위기의 율법이 주어진 시간적 배경은 양자 사이의 한 달의 기간이다.
출애굽기 마지막 사건 |
레위기 (한 달의 기간) |
민수기 첫 사건 |
성막 건설 |
인구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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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년 1월 1일 |
제 2 년 2월 1일 |
레위기는 시간적으로 오경의 중심이며, 신학적으로도 중심이다(J. E. Smith, The Pentateuch (2nd ed.) (Le). Joplin, Mo.: College Press Pub. Co, [1993], 레위기 서론 부분에서 소개됨).
- 신학적인 중심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자.
레위기의 해석 방법: 알레고리 vs. 평이한 의미
하틀리(Hartley)의 주석은 레위기 주석의 역사를 상세하고 기술하고 있다. 주석사의 큰 해석의 두 갈래는 알레고리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과 본문의 평이한 의미(plain meaning)를 밝히려는 해석이다.
물론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레위기의 경우는 구약의 다른 어떤 책들보다 더 크게 알레고리적 해석이 지배했다. 반면에 근현대의 비평학적인 레위기 주석들은 본문의 평이한 의미를 밝히려는 쪽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들은 평이한 의미를 추구했다기 보다는 비평학적인 분석에 함몰되어버리고 말았다.
Wenham은 정경 본문의 평이한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밝히는데 가장 성공적인 학자들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평이한 의미를 신약의 본문들과 최대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독자들은 그의 주석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경 해석의 한 형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앞으로 레위기 주석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본문의 평이한 의미를 먼저 찾고, 그 평이한 의미가 신구약 사이에 연결고리로 작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모든 작업에 있어 될 수 있는 한 레위기 본문의 평이한 의미에 왜곡이 가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레위기의 가르침
출애굽기 19-40장이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에 대해서, 즉 “두려워 말고 두려워 하라”, 혹은 “접근가능한 하나님 대 접근불가능한 하나님”(an approachable God vs an unapproachable God)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레위기는 이 두 극점 사이의 연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레위기는 접근불가능한 하나님을 어떻게 접근가능한 하나님으로 섬기느냐 하는 숙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주고 있다.
à 이 해답은 제사(레 1-7장), 제사장(8-10장), 정결한 음식과 정결한 몸과 정결한 집을 통한 거룩의 유지(레 11-15장), 거룩한 삶(레 17-27장*) 등의 요소이다.
à 앞의 해결책들이 한계를 드러낼 때 마지막 처방은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의 의식이다.
à 전반부, 즉 레위기 1-10장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면 후반부, 즉 레위기 11-27장은 다가간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2]
레위기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성이다. 거룩한 하나님과 교재 가능한 유일한 백성은 거룩한 백성이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 거룩성의 유지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가르침이다.
Griffith Thomas는 레위기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정리한다.[3]
1. 큰 문제: 죄. 죄는 하나님과 닮지 않음(unlikeness to God), 하나님으로부터 멂(distance from God), 하나님에 대항해서 저질러진 잘못(wrong done against God) 등이다. 죄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교제로부터 배제를 당한다.
2. 큰 해결책: 제사. 드림(offering)과 제사(sacrifice)란 표현이 90번 이상 나온다. 피라는 단어와 생명이라는 단어로 상당히 자주 나온다. 또한 “하나님 앞”이라는 핵심어구도 60번 정도 나온다. 구속(redemption)이라는 사항이 이 책 전체의 열쇠이다. 구속은 대속, 전가(imputation), 사망을 통해서 성취된다. 무고한 짐승이 죄인의 사망의 죄값을 치른다. 사망으로부터의 구속은 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오직 피(생명)가 부어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3. 큰 힘: 제사장.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중개자를 통해서만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레위기를 읽는 중에 기독교인들은 자신에게 중재자, 즉 아론 및 아론의 가족들보다 뛰어난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속 깨닫게 된다. 이 필요는 예수에 의해서 충족되었다. 예수는 죄된 인간을 위해 단번에 영속적인 효력을 가진 피를 드리셨다.
4. 큰 계획: 속죄일. 매 년 한 번씩 대제사장은 제사장과 전 국가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지성소로 들어가야 했다. 광야로 보내진 염소는 죄의 제거를 상징했다.
5. 큰 가능성: 하나님에게로 다가감.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를 가질 수 있으며, 그 교제를 유지할 수 있다.
6. 큰 원칙: 거룩. 하나님의 거룩성은 그의 백성 편에서의 거룩성을 요구한다. “거룩”이라는 단어나 그와 동족어가 131번 정도 이 책에 등장한다.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단어는 “정결”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와 동족어, 그에 대한 대조어가 약 186번 나온다. 레위기는 (1) 정결한 음식(11장), (2) 정결한 육체(12:1-13:46); (3) 정결한 의복(13:47-59); (4) 정결한 집(14:33-57); (5) 정결한 접촉(15장); (6) 정결한 나라(16장) 등을 강조한다. 이 책의 이러한 본질을 강조하는 것은 레위기 19:2이다. “너희는 거룩하라.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거룩함이라”고 말한다.
7. 큰 특권: 하나님의 함께 하심. 사람이 이 책에 언급된 방식으로 하나님께 다가갈 때 그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더불어 그에 따르는 축복을 누린다.
레위기와 모형론
레위기의 내용에 담긴 모형론은 크게 네 가지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제사; (2) 절기; (3) 제사장 제도; (4) 대제사장.
아래의 주장은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와 모형론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들의 한 샘플이다(James Smith, Pentateuch: Old Testament Survey Series, 350-355). (MC: 여기에서는 하나의 샘플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며, 꼭 이런 식으로 모형론을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A. 제사.
레위기의 각 제사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으로 드린 제사의 어느 한 특징씩을 제시하고 있음.
(1) 번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헌신을 나타냄. 그의 제사는 향기로운 냄새였다(엡 5:2).
(2) 소제에는 그 어떤 부패적 요소(예를 들어 누룩)도 첨가될 수 없었다. 이 제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 완전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사는 흠향할만한 것이 되었다.
(3)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징했다. 에베소서 2:14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었다”.
(4) 속죄제는 죄가 피로 덮이고, 제거되고, 심판됨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의 속죄제라고 불리고 있다(고후 5:21; 벧전 2:24).
(5) 속건제는 벌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셨다(마 20:28).
B. 절기.
레위기는 총 19개의 절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중 최소한 9개의 절기가 어느 정도씩 모형론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매 주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의 영원한 안식일적 휴식을 내다본다(히 4:9).
(2) 매 년의 유월절의 양은 그리스도, 즉 기독교인들의 유월절을 묘사하고 있다(고전 5:7).
(3) 무교절은 신자들의 거룩한 삶을 시사하고 있다(고전 5:8).
(4) 매 년 첫 열매를 바치라는 요구(초실절)는 예수께서 모든 자는 자들의 첫 열매였음을 일깨워준다(고전 15:33).
(5) 칠칠절(오순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도래를 상기시킨다(행 2:4).
거룩한 일곱 째 달에는 세 절기가 모형론적 진리를 담고 있다:
(1) 이 해(? 달?)의 시작에 울리는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회집을 알린다(마 24:31).
(2) 속죄일은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천을 아름다운 상징을 통해 제시한다. 켈로그(Kellogg)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가 있다. “이사야서 35장과 메시야적 예언의 관계는 레위기 16장과 모세의 모든 모형들의 체계 사이의 관계가 같다. 이 장은 메시야에 대한 상징의 절정을 이루는 꽃이다”.
(3) 초막절(The Feast of Ingathering, Tabernacles)은 메시야 왕국에서의 예배를 묘사하고 있다(Zech 14:16–18).
제 50년 되는 해(희년)에는 온 나라에 해방이 선포된다. 복음의 시대는 자유와 회복으로 묘사되는데, 이 점이 바로 이 축하의 때의 한 부분이다(사 61:2; 눅 4:19).
C. 제사장 위임식(Priestly Consecration Service)
출애굽기 29장과 레위기 11장은 구약의 제사장 위임식의 8단계를 나열하고 있다. 각 단계는 신약의 만인제사장 제도에서의 위임식과 대응한다.
1.아론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출 29:4). 믿는 자들은 복음을 통하여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벧전 2:9).
2. 구약의 제사장 후보들은 물로 씻음을 받았다(레 8:6). 기독교의 제사장들은 세례로 씻음을 받았다(행 22:16; 히 10:22; 딛 3:5).
3. 씻음 후에 옷을 입는다(레 8:7–9). 세례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옷 입는다”(갈 3:27; 레 3:18; 롬 13:14).
4. 기름으로 임명하는 절차가 따라 온다(레 8:12). 신자들은 구약의 기름이 상징하는 것, 곧 성령의 선물을 주로부터 받는다(행 2:38;요일 2:20, 27; 4:13).
5.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옷에 피를 바른다(레 8:30).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마음도 예수의 피로 뿌림을 받는다(히 10:22).
6. 이 의식을 통해 아론의 아들들은 위임되었다. 달리 표현하면 거룩하게 되었다(출 29:21)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거룩한 백성이다(히 10:10).
7. 이제야 제사장 후보들은 희생제물을 먹을 수 있다(레 8:31). 신자들 역시 자신들의 속죄제물, 즉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할 수 있다(Believers too partake of their sin offering which is Christ) (히 13:10–12) (MC: 저자가 이 문구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분명하지 않음).
D. High Priesthood.
아론이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라는 점을 히브리서는 분명히 해주고 있다. 양자 사이의 유비(analogy) 중 몇 가지는 아래 도표에 나온다.
더 나은 제사장 |
|
대제사장 아론 |
대제사장 그리스도 |
사람 중에서 부름받음(출 28:1) |
사람의 부르심을 받음(Heb 5:4, 10)* |
미혹된 자들에게 연민(히 5:2) |
눈물로 기도(히 5:7) |
흠 없는 옷(레 16:4) |
흠 없는 인격(히 4:15) |
지상의 성막에 들어감(레 16:3) |
하늘의 성전에 들어감(히 6:19) |
1년에 한 번 들어감(레 16:2) |
한 번 들어감으로 영원한 효과(히 9:25) |
장막 너머로 들어감(레 16:12) |
장막을 찢음(히 10:20) |
자신의 죄를 위해 제사 드림(레 16:11)
|
오직 우리 죄를 위해서 제사 드림(히 7:27) |
동물의 피를 드림(레 16:15) |
자신의 피를 드림(히 9:12) |
표 출처: James Smith, The Pentateuch, p. 353, chart no. 29. * 이 항목은 Smith의 도표상으로는 좌측 칸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사람 중에서 부름을 받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이라고 수정해야 할 듯. 그러나 문제는 히 5:4은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에 “아론”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므로 구약의 대제사장과 신약의 대제사장 모두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신구약이 이 점에 동일한 것이다. |
레위기의 핵심적인 용어들의 이해
* 거룩/정결/부정(Wenham, Leviticus [1979], 26)
제사제도
성결케 함 정결케 함
거룩 정결 부정
더럽힘 욕되게함
죄와 악
성의 영역 속의 영역
거룩/정결/부정의 정리(알렉산더, 주제로 본 모세오경, 366-368)
(1) 거룩과 부정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상태이다. 반면에 정결은 중립적인 상태다.
(2) 거룩과 부정은 활동성이 있다. 즉 자신의 상태를 전이시킬 수 있다. 반면에 정결은 중립의 상태로 그 자체가 다른 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
구조
* 레위기는 크게 제사제도, 정결과 부정, 거룩에 대한 촉구 등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1-10장 제사제도
1-7장 제사제도
8-10장 첫 제사장 위임식
11-16장 정과 부정
11장 음식
12-15장 각종 부정으로부터의 정결
16장 속죄일
17-27장 성결법
17장 제사법
18-20장 백성 관련 법
18장 금지된 규례
19장 거룩으로의 부름
20장 사형에 해당하는 죄
21-22장 제사장 관련 법
23장 거룩한 절기
24장 추가적 규례
25장 안식년과 희년
26장 축복과 저주
27장 십일조와 서원
* 레위기의 구조에 대한 단서는 레 10:10-11]이 제공해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본문은 제사장의 사역의 중심적인 내용으로 세 가지 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1) 하나님 앞에 다가갈 자격을 갖추어야 함(레 1-7장, + 레 8-10장: 제사장의 임명) (레 10:1-2의 사건은 하나님 앞에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죽을 수도 있음을 하나의 대표적인 예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2) 거룩한 것과 속된 것(בֵּין הַקֹּדֶשׁ וּבֵין הַחֹל), 그리고 부정한 것과 정한 것(וּבֵין הַטָּמֵא וּבֵין הַטָּהוֹר)을 구분함(וּלֲהַבְדִּיל) (레 11-15; 16장은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쌓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는 것이다.)
(3) 모세를 통해 준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침(17-27장)
각론
레위기 1-10장의 구조
* 1-10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 1-7장은 구약의 5대 제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8-10장은 이스라엘의 첫 제사장 위임식을 담고 있다. 이 위임식 본문이 1-7장 뒤에 따라 나오는 이유는 위임식의 중심 자리를 각종 제사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사가 대한 이해가 없이는 위임식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 정리하자면,
1-7장 구약의 5대 제사
8-10장: 첫 제사장 위임식
레위기의 5대 제사(레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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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제사법과 죄사함에 대한 이해: 죄의 용서와 레위기
죄 사함의 문제를 다룰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해가 없는 신학은 진정한 의미의 신학이 아니다.
Ralph Smith, OT Theology, 308 (번역되어 있음, 랠프 스미스, 구약신학)
“Forgiveness is not the remission of a penalty; it is the restoration of a relationship”
- 이게 바로 황금 송아지 사건의 핵심이 아닌가? 33:15-16에서 모세가 한 말의 핵심은 바로 속죄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함께 하심, 즉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의 회복이 진정한 용서인 것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내가 죄의 용서에 대한 내용을 강의할 때 흔히 묻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느냐”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신학생이나 목회자, 평신도를 가리지 않고 상당수의 청중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 다윗의 예
- 속죄는 하나님의 주권의 문제이다. (욜 2:13-14; 암 5:15; 욘 3:8; 슥 2:3 등 울라이[ylwa], 미 요데아[[dwy ym])
W. A. Quanbeck(스미스, 구약신학, 366)
“이것은 희생제사가 하나님의 죄사함을 가져오는 물물교환식의 거래가 아니고, 희생제사가 효과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긍휼하심 속에서 희생제물을 예배자의 삶의 제물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하신 결과라는 사실을 강조해준다. 희생제사는 죄 사함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을 베푸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호소하는 것이다(Sacrifice is not the purchase of forgiveness but the claiming of God’s promise of mercy”(“Forgiveness”, 316; see Sakenfeld, “The Problem of Divine Forgiveness in Numbers 14”, 317-330).
죄 사함의 문제를 다룰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Þ 제사와 행위의 관계 문제
시 40:6-8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또한 50:9-15, 22-23; 51:16-17을 참고하라.
Þ 제사를 드려도 용서 받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다.
- 삼상 3:13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è 하나님께서 엘리 집의 제사나 예물의 효력을 거부하신 이유는 엘리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Gesenius’s Lexicon은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것으로 봄. 어찌 됐든 문맥상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거부하고, 그 관계를 조롱한 것은 사실[cf. 삼상 2:30])한 것과 그것을 엘리가 통제하지 못한 것이다.
è 여기에서 보듯이 제사가 자동적으로 속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속죄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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Þ 레위기의 5대 제사는 레 1-7장에 나온다. 이 본문은 표와 같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사법 I: 백성 중심 |
제사법 II: 제사장 중심 |
제사법 서론(1:1-2) 1. 번제(1장) 2. 소제(2장) 3. 화목제(3장) 4. 속죄제(4:1-5:13) 5. 속건제(5:14-6:7) |
1. 번제(6:8-13) 2. 소제(6:14-23) 3. 속죄제(6:24-30) 4. 속건제(7:1-7) 5. 화목제(7:11-36) 제사법 결론(7:37-38) |
제사법 I: 백성 중심(“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1:2; 4:2)
제사법 II: 제사장 중심(“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6:8, 25)
제사법 II의 예외: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23, 2. 이 두 문단은 백성이 제의법을 위반하는 것이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백성도 청중으로 언급
Þ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는 문구는 번제, 소제, 화목제에만 적용(레 1:9, 13, 17;
2:3; 3:5).
Þ 언약적인 제사법의 이해
(1) 제사제도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의 선물이다.
(2) 제사제도는 언약 당사자들간의 교제 혹은 친교를 포함하고 있다.
(3) 제사제도는 언약관계의 벌어진 틈을 메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점은 속죄(expiation)라는 신학 용어를 통해서 표현된다.
Þ 제사 실행상의 이해
각 제사를 다루기 전에 서론적으로 언급하자면 희생제물을 고르고, 제단 쪽으로 가져오고, 안수하고, 도살하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씻는 일 등은 전부 다 봉헌자의 일이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제단과 관련된 일에 국한된다. 성막의 뜰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번제단인데, 제사장은 이 거룩한 제단에서 하는 일만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 외의 나머지의 거의 모든 것은 봉헌자의 몫이다.
이러한 점은 제사에 있어서 제사장이 아닌 일반 백성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제사에서 거룩성의 문제 때문에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 이외의 모든 것은 일반 백성이 하는 것이다.
봉헌자의 능동적인 참여는 예배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으로 생각된다. 레위기식 제사가 현대의 교인들에게는 어떤 의의가 있을까?
Þ 제사법 해석시의 중요한 유의점(상당히 도발적 내용!!!, 학술 발표를 통해 확인 받아야 할 사항임. 논리적 토대는 물론 제공할 수 있음. 여러분도 한 번 같이 생각해봐요)
(1) 제사법에는 내러티브의 흐름상 문맥 속에서 이해해야 할 사항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제사법은 결코 제사장의 실제 제사 집전을 위한 매뉴얼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 개인적으로는 오경에 언급된 “여호와의 전쟁기”(민 21:14 등)와 같이 제사장들의 실제 제사에 대한 매뉴얼은 따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리고 오경에는 이스라엘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모세가 기록한 내용이 우리가 보고 있는 정경 본문의 내용과 같이 들어있지 않았을까?
(예) 1:7-8의 번제 절차에 대한 설명 중 제사장이 제단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진열하는 내용이 나온다.
레 6:8-13절(MT [마소라 본문의 약자] 6:1-6)은 제사장들이 항상 불을 피워 꺼지지 않게 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불은 항상 제단 위에 꺼지지 않게 유지되는 것이지 1장의 번제를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특히 6:12-13).
이 불이 왜 꺼지면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본문 속에 없다. 그러나 여러 중요한 학자들은 번제단의 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불이라고 생각한다(레 9:24).[4] 이 견해가 맞다면 레위기 1:7-8의 번제의 불에 대한 규례는 제사장들이 매 번제마다 실행했을 리가 없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 레위기의 첫 장의 첫 번째 제사인 번제에 대한 첫 단락에서 이 언급이 나오는가? 답은 바로 이게 제사 규례의 첫 항목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레 1:7-8은 제사장의 제사 매뉴얼의 번제에 대한 매뉴얼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2) 1-7장의 제사법은 구약의 모든 제사에 대한 상세한 목록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 경우 역시 구약의 제사가 정말로 제사장이 그 규례를 따라 실제 제사를 수행한 제사장 매뉴얼일 가능성은 별로 없는 듯 하다.
(예) 구약에서 가장 빈번히 드려진 제사들 중의 하나인 전제가 언급되지 않는다. 민 28:3-8 등의 상번제 등에서 전제는 소제와 더불어 항상 제사에 동반되었는데도 말이다.
(3) 입체적 해석(3D적 해석)이 필요할 수 있다.
- 그것은 제사제도는 각 제사와 세부 단원이 다면체의 한 부분처럼 다른 부분과의 관계 속에서 볼 때에만 이해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 즉 한 단원에서 빠진 내용은 다른 단원의 내용을 통해 보충되어야 한다. 어느 한 단원만을 보아서는 해당 제사 혹은 제물 봉헌의 사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예)
3장의 화목제 봉헌에 대한 기록에서 제물 가죽을 벗기고 조각을 내는 등의 사항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봉헌자가 당연히 이러한 일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런 사항은 1장의 번제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보충해야 한다.
1장의 소의 번제의 안수가 양의 번제에 안 나오는 점을 보라. 화목제 중 양이나 염소 제물을 바치는 규례(3:6-17, 특히 8, 13절)에서 보듯이 번제의 양이나 염소 제물의 경우에도 안수를 했을 가능성이 거의 100%다.
제사 해석시 유의점의 정리:
(1) 위의 사항들을 참고하면 어느 제사의 절차 중 언급이 안 된 사항은 비슷한 다른 제사에 대한 본문을 통해서 해당 사항을 보충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2) 반대로 어떤 사항이 명시적으로 언급된 경우에도 그것이 매 번 제사 때마다 실행에 옮겨진 사항이 아니라 그냥 레위기의 내러티브적 흐름 속에서 그냥 언급된 사항일 수 있다. 따라서 그 절차가 항상 실행되던 것인지 아닌지를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한다.
(3) 명시된 사항들이 다른 제사의 유사한 사항과 대조를 보일 경우 바로 이 점을 해당 제사의 중요한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제사의 특성 등에 대한 연구는 이런 사항에 기호해야 할 것이다.
[1] J. Sidlow Baxter, Explore the Book (Grand Rapids: Zondervan, 1960), 1:114-115.
[2] “If the first part of Leviticus told an Israelite how he might approach a holy God, the second part told him how he might maintain his relationship to the Lord.” J. E. Smith, The Pentateuch (2nd ed.; Joplin, Mo.: College Press Pub. Co, [1993]).
[3] Griffith Thomas, Through the Pentateuch (Grand Rapids: Eerdmans, 1951), 110.
[4] Milgrom, Leviticus 1-16, 388-389. 또한 이 견해에 대한 기타 학자들의 목록은Wenham, Leviticus, 119-120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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