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7. 주제별-통시적 방법(the Thematic-Dialectical Method)

예림의집 2014. 10. 11. 18:45

7. 주제별-통시적 방법(the Thematic-Dialectical Method)


우리는 통시적 방법과 그 이후에 나온 “전통 형성(formation-of-tradition)” 방법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둘은 각자 자기 방법론을 발전시켰지만, 모두 전승사(traditio-historical)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루려는 방법은 아이크롯트 방법 이후와 폰 라드 방법 이후에 나온 것이다. 이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이지만 이미 강력한 지지자들을 갖고 있다. 브루거만은 자기 생각에 구약신학이 처한 방법론적인 교착 상태를 풀려는 새로운 수렴현상이 최근의 구약신학에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변증법적이고(dialectical) 주제적인(thematic) 관계를 사용하는 구약(그리고 성경)신학에 나타나고 있다. 그는 특히 세 명의 대표적인 학자인 테린과 베스터만과 핸슨을 꼽는다. 이 세 학자들은 “윤리적/심리적(테린)”, “구원과 축복(베스터만)”, 그리고 “목적론적/우주론적(핸슨)”인 변증법적 관계를 지배적인 관점으로 설정한다. 각자가 변증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수렴점이, 그리고 각자가 다른 변증법적 틀을 사용함에 있어서 차이점이 명백히 들어난다. 먼저 테린의 접근을 살펴보자.

테린이 한평생 연구하여 발표한 역작은 “하나님 임재의 실재가 성경 신앙의 중심을 이룬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신적]임재 모티프가 일차적 이라고 주장하면서, 언약 모티프의 우월성뿐 아니라 교통 개념의 우월성에 대해서조차 도전하고 있다. 테런에게 있어서 “언약 의식과 이념은 더 기본적인 임재의 실재성에 의존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오직 히브리인의 임재신학만이…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개혁적인 선지자들과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시온의 시인들과 욥의 시인과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이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은 “신적 임재 모티프”가 역동적인 “일관성의 원리”가 되고 있으며, 혹은 구약 자체와 두 성경 사이에 연속성과 통일성을 주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는 분명히 정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고 “아리송하며 예측할 수 없으며” “성장과 전환”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성경신학”이 “초교파적인 성경신학의 서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로 통일시키면서도 역동적인 신적 임재의 원리가 “히브리 사상과 유대주의와 초기 기독교를 묶어주기 때문이다.”

테린은 폰 라드 이후에 한 권의 성경신학 책으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직통하였다. 그는 변증법적 교차법(dialectic cross-section)을 신약에 적용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신약에는 약 60쪽만 할애하였다. 이것은 구약신학에 신약보다 여섯 배나 더 많은 양을 할애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아브라함과 야곱에 대한 족장 전통들의 신학 다음에는 시내산 신현과 성전에서의 임재가 따라 나온다. 그 이후에 선지자들의 환상과 임재의 시들과 지혜신학을 다룬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안식일과 속죄일과 야웨의 날에 나타난 신현을 다룬다. 두 장을 신약에 할애해서 수태고지와 변화산상의 체험과 부활을 강조하는 “말씀으로서의 임재”와 “이름과 영광”을 다루고 있다.

테린의 주장은 강력하고 그가 이룬 성공은 놀랍다. 그는 임재의 주제를 추구하는 것이 “언약으로부터 임재로 강조점을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시대의 성경 신학자들을 사로잡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임재 주제가 주된 성경적 모티프라는 점에 있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주제가 구약성경에 나타난 믿음과 그것을 넘어 신약에 나타난 믿음의 부요하고 다양한 측면들을 다 포함할 수 있을 만큼 포괄성을 지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테린이 주장하는 포착하기 어려운 임재(the elusive presence)에 나타난 변증법적인 주장 자체가 이런 문제를 필연적으로 제기한다. 즉 그는 “윤리적인 것”과 “심미적인 것”을 두 축으로 역동적인 변증법적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그의 변증법에서 “윤리적” 차원은 역사적이고 언약적인 자료들을 다루며, “심미적” 차원은 지혜문학과 시편의 자료를 다룬다. 후자는 요구와 의무와 책임에는 관심이 없고, 주로 감정적이고, 신비적이며, 영적인 것을 다루거나, 혹은 단지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 이 영역은 하나님의 포착할 수 없는 임재의 역동적이고 통일시키는 원리로 묶어진다.

브루거만은 “섭리와 선택”의 변증법을 추구함으로써 테린의 제언을 따른다. 그는 이 변증법적 관계는 스스로 “중요한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브루거만은 자신의 설정한 범주가 베스터만과 테린과 헨슨이 제시한 이전의 변증법적 범주를 다 포함할 마늠 충분히 넓다고 생각하며, 테린이 주장한 포착하기 힘든 임재의 변증법과 주제는 너무나 협소하다고 비판한다. 사실 테린도 자신의 주제가 그렇게 포괄적이지 않으며, 특수 주제를 선택한 것임을 인정한다. 사실 그 어떤 변증법적 범주도 성경 내용을 다 담을 만큼 넓을 수 없다. 정리하자면, 단순 주제를 가지고 성경신학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두 개의 변증법적 축으로 하는 것도 도움은 되지만 너무나 방대한 성경 자료들을 다 포괄할 수는 없다.

보다 최근에 브루거만은 “섭리와 선택”의 양극적 변증법적 구도를 떠나, 보다 포괄적인 양극적 변증법으로 넘어가고 있다. 1985년에 출판된 두 개의 논문에서 그는 구약신학을 위한 새로운 제언을 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 주장한 바와 같이 여전히 “원래의 의미”를 찾는 서술적 방법론은 구약신학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양극 개념은 “문학의 중심적인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다. 먼저 “본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냐”를 찾는 것이 첫 축을 이루어 주면, 이것은 “본문 형성의 과정과 성격”에 연결된다. 이것의 강조점은 사회적 과정이 본문을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점에서 “논쟁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그의 이 개념은 갓월드의 사회학적-문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브루거만이 추구하는 두 번째 축은 “논쟁을 넘어가는 것(above the fray)”으로, 놀랍게도 그는 여기에서 차일즈의 “정경적 접근(canonical approach)”을 따르고 있다. 차일즈에 따르면 신학에 중요한 본문은 정경적 위치를 얻은 것이어야 하므로 “정경적 접근”이 가장 중요하다. 브루거만은 “나는 구약신앙이 합법적 구조뿐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는 구조를 다 만족시킬 수 있도록 양극 구조를 사용하고 있다”고 요약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구약신학은 그 당시의 ‘일반신학’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바로 그 신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여기에서 “일반신학”이란 특별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미스는 이 용어를 “고대 근동 아시아의 일반신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며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도 그 일부였다”고 한다.

브루거만은(스미스를 따라) 이 용어를 “고대 근동 아시아에 지배적인 종교가 주장하는 표준적인 가정들과 주장들의 총체로서 이스라엘 문학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논쟁 가운데”의 개념은 성경 본문을 형성한 사회적 힘들의 축을 반영한다. 이 힘은 고대 세계에 쓰여진 다른 책들을 만드는 데도 타나났었다. “논쟁 넘어”라는 개념은 본문의 정경적 형태를 가리키는 축으로서 현대 믿음의 공통체에 주어지는 신학적 의미를 뜻한다. “논쟁 안에”와 “논쟁 넘어”라는 양극 개념은 “원래 의미”와 “현재 의미”라는 대치를 새로운 형태로 제시한 것이다. 부르거만은 “구조의 합법성”의 축이 그와 대칭되는 “고통으 포옹하는 것”과 갈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 갈등은 “지속적이며 풀려지지 않았고 풀려질 수 없는 것”으로서 “모든 신실한 성경 신학에 생생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브루거만은 차일즈가 그의 구약신학을 출판하기 전에 이런 제시를 하였다. 그의 책에서 차일즈는 자신의 작품이 갓월드를 포함한 여러 다양한 접근들과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지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갓월드의 사회적 접근에 대해 차일즈는 의미 있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갓월드가 전통을 비신화화시키려는 방법을 써서 성경신학을 성경사회학으로 대치하려는 것은 고도의 축소작업을 한 것이다.” 차일즈가 볼 때, 갓월드의 방법 속에는 전통적인 계시 개념을 한치도 허용할 수가 없다. 이것은 갓월드가 “성경 본문을 본문 아래서 칼린 주도적인 사회적 현실에 대한 상징적인 반영”으로 보는 해석학적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회학적 현실을 자신의 “비평적 사회학적 분석으로 파헤쳐내려고 한다.” 성경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 역사를 깨고 들어오는 신적 실재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학적 해석은 “이 도극한 성경의 증거를 잠재우며” 이로써 “방대한 신학적 축소 작업”을 하게 만든다. 수직적 차원(the vertical dimension)이 수평적 차원(the horizontal)에 귀속되고 결국 “벙어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차일즈에게 있어서 “계시란 구약신학의 본질적 과제이다.” 우리는 이 장의 끝부분에서 차일즈의 “새로운 성경신학”을 다루려고 하므로 여기에서는 또 다른 양극의 변증법을 사용하는 한 구약신학의 거장을 보도록 하자.

하이델베르그의 교수 베스터만은 그가 오랫동안 마해온 자굼, 『구약신학』을 1978년에 출판하였다. 이 책은 아이크롯트, 프리젠, 폰 라드나 테린의 역작들과 비교해 볼 때 그렇게 방대하지 않지만 같은 무게를 갖고 있다.

베스터만의 책은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 1부는 “구약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는가?”는 제목으로 방법론에 대한 간략한 토론을 한 후, 역사(Geschichte), 하나님의 말씀, 인간의 반응, 상호관계의 가능성을 가진 하나님의 통일성을 차례로 다룬다.

베스터만은 구약신학을 구약 자체가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정리하고 전체로 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구약의 일부를 가장 중요하게 보거나 언약이나 선택이나 구원의 개념으로 전체를 해석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구약의 중심을 잡는 것은 구약 자체가 이런 중심 구조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약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모가 부활에 중심을 둔 신약과 다르다.

구약이 하나님에 대해 전체로 말하는 것을 다루려면, 구약이 일어난 역사를 말하고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서 베스터만은 폰 라드와 그의 전승사 방법을 명백하게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현장으로 파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이 인간의 반응 혹은 응답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폰 라드가 주장하는 “다시 말하는 원리(retelling)” 따를 필요가 없다. 따라서 구약은 수많은 행동과 말씀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주장(divine address)과 또한 말과 행동으로 증거되는 인간의 반응(man's response)이라는 변증법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역사는 하나님과 사람을 다 포함한다.

베스터만에 따르면 구약의 지혜문학은 “원래부터 그리고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약신학의 기본 구조에 들어올 수 없다. 구약 지혜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위치는 인간 창조와 이 세상에서 자기 길을 알고 찾는 능력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폰 라드는 지혜를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의 일부로 보았지만, 베스터만은 침멀리를 따라 지혜는 인간 창조의 틀 속에서 그 신학적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베스터만은 어떻게 “지혜”를 구약신학 속에 포함시킬까 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의 독일 선배들을 따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베스터만은 그의 구약신학에 지혜신학을 넣고 있지 않다.

두 번째 부분은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역사를 다룬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구원 활동의 의미와 과정과 요소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창조주와 창조와 축복을 다룬다. 그 다음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은총의 상호관계를, 특히 축복과 저주의 예언에서 다루고 있다.

묵시문학은 이사야 24~27장, 스가랴 1~8장과 12~14장, 이사야 66장, 요엘 2~4장과 다니엘서를 다루면서 잠깐 언급한다. 베스터만은 “묵시문학이 지혜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리하여 그는 폰 라드가 힘차게 주장하였던바 묵시문학은 지혜문학으로부터 바로 나왔다는 것을 한마디로 거부한다. 묵시문학은 “인간 역사가 이미 결정된 하나님의 계속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신학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구약 예언과는 대조적으로 묵시문학은 세계 역사를 태초 역사에 일치하는 우주적인 차원을 다루고 있다.

다섯째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변증법적인 측면을 다룬다. 사람의 반응은 기도와 찬양과 애통으로 나타난다. 말로 응답하는 것은 행동으로 응답하는 것과 함께 나타난다. 행동하는 응답은 계명과, 율법에 대한 순종과, 예배와, 신학적인 반성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스라엘의 신학적 반성에는 야위스트, 신명기사 학파와 제사장 학파의 신학적 역사 해석이 포함된다. 엘로히스트나 그의 신학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마지막 부분은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다시 역사서와 그리스도, 예언적 선포와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하나님 백성의 대답이란 주제들로 세분된다.

마지막 결론은 성경신학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전의 역사비평학적 연구와는 달리 “성경신학은 기독교 교회의 에큐메니칼 시대(ecumenical era)가 시작되도록 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다”고 주장한다. 베스터만은 신인 관계와 연관된 역사적 구조를 따라 제시된 성경신학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역사적 구조란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해 증거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바로 이 기초 위에 구약과 신약의 성경신학이 세워질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베스터만은 철저하게 양식비평을 시도하며 폰 라드의 전승사 방법의 일면을 따르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와 동시에 베스터만은 구약이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는 것(말하는 것) 속에 체계적 측면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폰 라드의 방법을 떠난다. 역사적 측면은 다양성을 주지만, 체계적 측면은 구약에 나타난 변함없는 증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우리가 테린과 베스터만의 작품을 비교해 볼 때, 먼저 테린은 그동안 구약신학계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던 언약의 주제에 심각한 도전을 던진 것을 볼 수 있다. 임재의 주제가 지배적인 구약의 모티프로 부상하여 언약의 주제를 밀어 내어버릴 수 있는지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베스터만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축복의 주제(theme of blessing)가 구원과 변증법적 관계를 갖고 있음을 보면서도, 자신은 “축복과 구원의 변증법적 발전에만 심취해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위의 두 책을 비교해 볼 때, 우리는 테린의 작품이 더욱 성공적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