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율법과 복음 (Law & Gospel)

예림의집 2014. 10. 9. 20:01

 

제3장 율법과 복음 (Law & Gospel)

-존 버레이 참고

-복음을 은혜(Grace)로 대체할 수 있음

 

 

1. 문제의 제기

1) 현대 복음주의의 한 가지 (잘못된) 분위기

-율법과 은혜가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만 보고

-율법은 죽이는 것 (cf. 복음/은혜는 살리는 것)

-율법/계명 지킴은

①율법주의(legalism)에 가깝고,

②은혜 하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및 자발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

-율법이란 말만 나오면 거부감을 느낌

-율법주의가 잘못된 것이지 율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도 많은 곳에서 율법 자체는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2)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①율법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즉 의롭게도, 의로운 삶을 살게도, 영생을 얻는 방편도 되지 못한다.

-율법은 오직 정죄할 뿐

-이러한 일들은 은혜의 복음만이 할 수 있다.

②그러나 그렇다고 그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통해 오히려 그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루어내는 것이다.

-like in 롬 8:4, “율법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은혜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는 것

-율법에 대한 거부감의 형성이 문제이다.

 

2. “율법 아래 있지 않음”의 의미

가. 로마서 6:14

-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율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 여기서 바울이 대조시키는 것

: “(율)법 아래에” = 율법의 정죄 아래 = 죄의 지배 아래에 (ie, 죄의 종) = 믿기 전

율법 아래

은혜 아래

율법의 섭리 하에

노예로서의 삶

죄가 주장

믿기 전의 삶

복음의 은혜 가운데

아들로서의 삶

죄가 주장 못함

믿음 후의 삶

* 바울이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①우리가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②율법을 통해서는 의롭게 함도, 의로운 삶을 사는 것도 불가능하고

③오직 (그 율법의 정죄 하에서) 죄의 지배 아래 있을 수밖에 없고

④이러한 일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님의 구속자적 관점에서 서로를 대조시킴

-율법과 은혜를 반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안과 밖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가 임한 것이가를 말하려고 한 것이다.

 

나. 고린도전서 9:20-21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이 자신은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했는데, 그 “율법 아래에 있음”의 의미는?

-여기서 바울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존 머레이).

┎20절: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 = 모세 율법의 의식들을 지킬 필요가 없다

┖21절: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다 =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킬 의무 아래에 있다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할 때 모든 율법이 아니고 의식법을 말하는 것이다.

 

♣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의 관계

-구약의 율법이 그리스도 율법 안에 다 들어있다.

-요약되어 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구약의 율법에 이미 있었다(신 6:4-5; 30:6, 레 19:18).

-살인: 미워함(의미와 정신을 살림)

-간음: 음욕을 품음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는 것이다.

 

♣ 율법의 구분

① 시민법

-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 유지를 위해 당시 필요했던 것

-민사법, 재판법

② 의식법

-제사의식, 정결예식, 할례의식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모형, 그림자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다 성취됨

-사도행전 15장 10-11절, 28절

③ 도덕법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삶의 윤리적인 기준을 제시해 준다.

*시민법과 의식법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고 도덕법만 우리에게 해당된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7장 3-5항)

III. 일반적으로 도덕법이라고 불리우는 이 율법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미숙한 교회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식법(ceremonial laws)을 주셨다. 거기에는 몇 가지 모형적인 의식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부분적으로는 예배에 대한 것으로서,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서 베풀어질 은혜들, 그가 행하실 일들, 그가 받을 고난들, 그리고 그의 공로로 주어질 유익들을 예표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도덕적인 의무들에 대한 여러가지 교훈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의식법들은 지금 신약 시대에는 폐기되었다.

 

IV. 하나님께서는 정치적 집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가지 재판에 관한 율법들(judicial laws)을 주셨다. 그러나 그 재판법은 그 백성의 나라와 함께 시효가 만료되었으며, 따라서 그것의 일반 형평의 원리는 원용될 수 있겠으나, 지금은 다른 아무에게도 구속력이 없다.

 

V. 도덕법(the moral law)은 불신자들뿐만 아니라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토록 구속력이 있으므로 해서 그것에 복종케 한다. 그리고 그 법 안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그것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 때문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도덕법의 이같은 의무를 결코 폐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화시키신다.

 

* 간단히 말해서,

-고전 9장의 율법은 모세의 의식들(즉 의식법)을 말하는 것으로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맞게 이 법을 따라주거나 않거나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다”고 할 때는,

-이런 의식법을 제외한 도덕법에 대해선 지킬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지 않다: ①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롬 6장).

② 모세의 의식들(즉 의식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전 9장).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다: 그리스도[or 하나님]의 율법[or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3. 율법에 대한 개혁파적 이해의 한 특성

*개혁파 신학은,

-율법(특히 도덕적 율법)이 신자에게 여전히 필요한 것이며, 신자로서의 그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칼빈이 말하는 율법의 세 번째 용도(the 3rd use of the law)에 해당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도덕법’이라고 보면 되겠다.

-칼빈은 율법의 용도[기능] 중 이 세 번째 용도를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 칼빈

- “세 번째 용도는 율법의 주된 기능이며, 율법의 본래 목적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이 용도는 이미 하나님의 영이 그 마음 속에 거하시고 다스리시는 신자들에게 적용된다... 율법은 육신에 대해서 마치 게으르고 머뭇거리는 나귀를 때리는 채찍과도 같아서 육체를 일깨워 일하도록 만들어 준다. 영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직 육신의 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므로 율법은 계속적으로 그 사람을 찔러서 그로 하여금 나태하게 서 있지 못하게 만든다” (『기독교 강요』, 2.7.12).

- “어떤 무지한 사람들은 이 구별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모세의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고 율법의 두 돌판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이는 의문’(고후 3:7 참고)을 함의하고 있는 교훈을 붙드는 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악한 생각들을 우리의 머릿속에서 추방시켜 버리자! 왜냐하면 모세는 율법이 죄인들 가운데서는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지만, 성도들 가운데서는 더 낫고 탁월한 용도가 있다는 것을 훌륭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는 임종 즈음에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했다.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신 32:46-47)” (『기독교 강요』, 2.7.13).

 

♣ 율법의 세 가지 용도

1)죄 억제 기능

-벌을 받으리라는 공포심을 일으켜 일부 사람들을 억제하는 것

-억제된, 강요된 의

2) 정죄 기능

-하나님의 의를 밝히고 인간의 죄를 정죄함으로써 은총을 구하도록 함

-몽학 선생(갈 3장)

-지키려고 할수록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는 것

-인간은 전적 부폐로 가능성을 상실함

3) 선행 촉구 기능

-신자들을 훈계해서 선행을 촉구함. 신자들의 삶의 지침으로서의 역할

-가장 중요한 용도, 율법의 중심 목적에 더욱 가까운 것

 

*정리해 보면,

①은혜 밖에 있는 자들

-이들에겐 율법은 의롭게도, 의로운 삶을 살게 하지도 못한다.

-있다면 죄억제 기능 & 정죄(를 통해 그리스도께 이끄는) 기능

②은혜 안에 있는 자들

-이들에겐 율법은 신자로서 살아야 할 삶의 기준을 보여주고,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를 통해 이 율법을 굳게 세우게[성취하게] 된다.

③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 기쁨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시 119편: 율법을 향한 마음의 자세와 느낌

-주제: 율법(말씀)

☆Zeal의 열정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가면 갈수록, 주님의 말씀의 정직함, 탁월함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율법이 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편이다.

-노예가 아니라 아들(자녀)로서 율법은 사랑하는 아버지가 주신 것이고, 살리려고 주신 것이다.

-그의 계명은 무서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2-3).

-성경이 관점을 전환하라.

 

4. 대립됨과 대립되지 않음의 의미

가. 일반적 관점

- 위 a)와 b)를 통해 설명해 보면

┎위 a)의 관점에서는 율법과 은혜/복음은 대립되어 있는 반면

┖위 b)의 ” ” 의 관계는 대립적이지 않은 것이다.

 

- 이런 의미에서 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겠다.

┎a) 율법은: 은혜를 필요하게 만드는 역할 (의롭게 되고,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

┖b) 은혜는: 율법을 세우는 역할

 

나. 히스토리아 살루티스(Historia Salutis) & 오르도 살루티스(Ordo Salutis)의 관점

a) Historia Salutis의 관점에서 보면 율법과 은혜는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는 반면

(구원의 길: promise → law → fulfillment)

┖b) Ordo Salutis의 관점에서 보면 양자는 그런 관계에 있지 않다.

(구원의 길: faith only)

 

*Historia Salutis (첫 언약 속의 율법과 새 언약 속의 복음)

-히 8:7, 13

-고후 3:6

*b) Ordo Salutis

-모세언약[시내 언약]도 은혜 언약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시 119:161-168

-아래 “다”에 열거된 신약의 구절들

 

-다. 율법과 은혜가 대립되지 않음을 말하는 성경 구절들

1) 롬 3:31

2) 롬 7:12

3) 롬 13:9

4) 기타